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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중세 유럽 예수님의 성체를 지킨 개

유럽사

개가 그려진 12세기 프랑스 십자가는 프랑스 왕족이 소장하던 예수님 Reliquary(성체함)을 장식한 십자가일 가능성이 높다. 성체함이란 예수님의 신체 일부를 보관하는 용기를 말한다. 


<유월절에 양 피로 개 집에 부적을 써주는 남자와 밥 먹는 개, 프랑스, 1160~1170년>

불교에서 부처님 사리를 신성시하며 사리함을 보석으로 치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세 천주교에서도 예수님 성체함을 숭배하며 아름답게 치장했다. 

천주교 국가의 귀족과 왕들은 성골함을 지키는 것을 성스러운 의무, 혹은 자신의 권위를 인정받는 표시 정도로 여겼다. 중세 유럽에서 "우리 집에 성체함 있어" 그랬다면 그 집은 왕을 배출하는 왕족이었다. 


<고려 시대 부처님 사리함, 국립중앙박물관>


이 말은 거꾸로 하면 성체함을 가지고 있다면 왕권을 이을 자격이 있다는 말이었다. 당연히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왕족들은 마치 미래의 왕좌를 찾듯, 보물찾기를 하듯 성체를 찾아 다녔다. 

애초 목적이 약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동로마 지역(특히 콘스탄티노플)과 예루살렘을 심하게 약탈한 십자군 기사단이 애타게 찾던 것이 예수님의 성체였다는 설이 있다. 


<거룩한 가시왕관 성체함, 프랑스, 1390년대>

세계적으로 히트한 『다빈치코드』는 예수님의 가족사를 둘러싼 천주교 내의 음모를 다룬 책이다. 사실 이 책은 벌써 1980년대 유럽을 휩쓴 『성혈과 성배』라는 책과 아주 비슷하다. 


<고대 페르시아 금장식 중 날개 달린 개, 기원전 5~4세기>

성혈은 예수님의 피를 의미한다. 이걸 예수님 후손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중세 유럽에서는 예수님 피 한 방울이 묻은 천 조각조차 예수님의 성체였다. 

중세 시대 성골함은 예수님 몸이 스쳐 지나갔을 법한 물건이라도 구해서 보석함을 만들어 장식한 것이다.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다. 


<성체함을 감싼 비단 직물 무늬 중 날개달린 개, 스페인, 12세기>

15세기 종교 개혁 이전까지 카톨릭 국가(구교)에서 만든 성체함에는 거의 대부분 '개'가 그려져 있었다. 10세기 북부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상아로 만든 성체함을 보자. 정면에 떡 하니 개 두 마리가 있다.

<개와 새가 그려진 성체함, 상아, 북부 이탈리아, 10세기>

개 위에는 새도 있다. 기독교가 정식으로 국교로 채택되기 전부터 로마에서는 이미 날개 달린 개 신앙을 믿고 있었다. 이는 고대 그리스-로마 지역을 다스리던 에트루리안과 관련 깊어 보인다. 


3세기 로마 제국의 대리석 관을 보면 황족일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가족들과 개가 지켜보고 있다. 또 아이의 대리석 석관 측면에는 날개 달린 개가 새겨져있다. 

<임종직전의 어린 소녀와 개가 그려진 대리석 석관, 로마, 200~220년>


개가 죽음이나 죽은 후 관을 지킨다는 개념은 에트루리안 시대부터 로마 제국 시대까지 지배층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니 10세기 북부 이탈리아 지역에서 예수님 성체함에 개와 새가 나타난 것도 그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에트루리안 비석 임종 순간, 로마, 기원전 490-470년>

그런데 11세기 이후 프랑스 왕조에서 만든 성체함에서는 거의 100퍼센트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개가 그려졌다. 그 중 일부가 유월절 개 집에 양 피 부적을 그려주는 모습이 그려진 십자가다.  


<임종직전의 어린 소녀가 그려진 대리석 석관 측면, 로마, 200~220년>

14세기 프랑스 발부아 왕조 가문에서 예수님의 가시나무 관 일부를 보관하기 위해(정확히는 가시 한 개) 특별히 제작한 성체함이다. 화려하기 그지 없는 성체함 뒷면을 보자. 


<거룩한 가시유물 성체함 중 뒷면의 성 크리스토퍼, 프랑스, 1390년>


성인 미카엘과 성인 크리스토퍼가 있다. 성인 미카엘은 용을 죽이고 있다. 미카엘은 프랑스 국왕을 지키는 수호성인이었다. 중세 시대 용은 악마였다. 개가 용을 물리쳤다면 개는 성인이다. 


<악마를 죽이는 성인 미카엘, 1475~1500년>


성인 크리스토퍼는 고대 안티오크 교회에서 개 머리를 한 성인이었다. 개 머리를 한 성인이 아기 예수를 어깨에 메고 있는 모습이 성체함 뒷면에 그려진 것이다. 그러면 이 성체함에 보관되었다던 가시나무 관의 일부 (가시 한 개)는 어디에서 왔을까? 


<개 머리를 한 성인 크리스토퍼(기원전 3세기), 러시아 정교회, 17세기>

 

콘스탄티노플에서 왔다. 프랑스 왕 루이 9세는 1239년 십자군군대가 한창 약탈하던 콘스탄티노플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썼다고 추정되는 가시덤풀을 샀다.  

십자군 전쟁 중 가시나무 관을 사는데 성공한 루이 9세는 가시나무 관을 로마 교황청에 선물했다. 로마 교황청은 가시나무 관의 가시를 하나 하나 해체해서 프랑스 주요 왕족에게 하나씩 선물했다. 


<루이 9세의 가시나무 관 증정식과 해체식,1239년 추정, 1490년 발행>


보물로 화려하게 치장한 성체함을 만든 발부아 왕조의 조상도 그 때 가시 하나를 받는데 성공한 유력 왕족 중 한 명이었다. 가시나무관에서 가시를 해체하는 작업은 루이 9세기 지켜보는 가운데 로마 고위 성직자가 직접 주재했다.


<가시나무 성체함, 1170년> 


교황 혹은 추기경으로 추정되는 천주교 고위 성직자가 직접 가시나무 관 증정식과 해체식을 주재한 점과 이미 1170년에도 가시나무 관을 보관하기 위한 성체함이 있던 점으로 보아 예수님이 쓰신 가시나무 관은 반드시 찾아야 하는 성물이었던 것 같다.

75. 중세 천주교 십자가에는 개가 있었다

유럽사

교황이 짝지워주는대로 결혼을 했으니 지금도 모든 유럽 왕가는 친척이다. 국가 개념보다는 영지로 나눠지던 중세시대 제일 잘 나가던 친척은 지금으로 치면 프랑스, 이태리 왕가였다. 

<새(불 새 추정)와 개(불 개 추정)새겨진 타일, 스페인, 15~16세기>

좀 떨어지는 친척은 스페인 반도, 영국, 독일이었다. 스페인 반도는 일부 이슬람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영국과 독일은 프랑스에 비교하면 시골 촌구석이었다. 


<끝내 알프스 산을 넘지 못한 9세기 말더듬이 왕, 루도비쿠스 2세와 비만견>

프랑스, 이태리 사이에 낀 스위스는 지지리도 못 사는 친척이었다. 특히 넘어오기만 하면 준다는 이태리 왕위도 포기한 프랑스 왕이 있을 정도로 험난한 알프스 산간 지대에 사는 스위스인은 더 가난했다. 


<강아지 모양 배지, 15세기, 영국>

굶어죽지 않기 위해 그들은 치와와를 잡아먹은 아즈텍, 마야 문명 사람들처럼 알프스 눈 속에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해주던 세인트버나드라도 잡아먹어야 했다.

<스위스 사람들이 잡아 먹었을 세인트버나드의 인명구조 장면, 1831년>

19세기 파리, 특히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당시 파리에 개고기와 쥐고기를 파는 상점이 있었다는 이유로 유럽에서도 개고기를 먹는다고 하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멧돼지 공격하는 개가 그려진 메달, 프랑스, 1240-60년>


적어도 중세 유럽에서 개는 채찍으로 때려죽일 수는 있었어도 먹을 수는 없었다. 우리나라 천주교와 개신교는 멋대로 해석해 개고기를 먹어도 상관없다고 하지만 엄연히 성경에는 금지음식이다. 


<하프스텐 성당 바닥 타일 중 개 문양,  영국, 14세기>

19세기 프랑스 파리는 18세기 마리 앙뜨와네트가 처형을 당한 이후 카톨릭은 힘을 상실한 상태였고 식량난을 겪고 있었다. 베네수엘라처럼 쥐고기, 사람고기까지 먹을 수 있었다. 

<개고기 고양이 고기를 파는 파리를 그린 삽화, 1801년>

알프스 산맥에서 개고기 먹은 사람들은...(돼지나 먹는다고 믿은 남아메리카 산 감자를 유럽에서 제일 처음 먹었을 정도이니) 불쌍하기도 하고 잡아 죽이고 싶었어도 잡으러 올라갈 수 없었을 것이다. 

레위기」 와 신명기에 의하면 개는 되새김질을 하지 않고 발가락도 여러 갈래라서 더럽다. 인간이 먹을 음식이 아니다. 

<예수 탄생 지켜보는 개들, 프랑스, 14세기>


구약 따위 안 믿는 천주교니 개고기를 먹어도 상관없을 거라고? 청결 문제를 떠나 중세 유럽 카톨릭 사회에서 개고기를 먹었다가 신성모독으로 화형을 당할 수도 있었다. 


중세 유럽에서 개는 예수 탄생을 지켜보는 증인이자 수호신이었다. 또 아기 예수와 성모마리아를 지켜주는 보호자이기도 했다. 초기 교회 중 안티오크 파가 믿은 개 머리를 한 성인과 정확히 같은 개념이다.  


<아기 예수를 멘 성 크리스토퍼 펜던트, 독일, 15세기>


엄청난 힘을 가진 개(신)가 나타나 어린 예수의 인생 여정을 지켜준다는 믿음을 로마-카톨릭은 달리 해석했다. 머리가 개인 인간이었다는 사실은 쏙 빼고 성인 크리스토퍼가 여행자를 지켜주는 성인이라고만 교육한 것이다  

<용을 공격하는 개가 그려진 메달, 프랑스, 1110-30년>


이렇게 해서 유럽에서 여행자의 수호신 성인 크리스토퍼는 어깨에 아기 예수를 둘러멘 모습으로 기운 센 천하장사로 묘사되게 되었다. 이 밖에도 중세 유럽에서 개는 무서운 용과 싸우는 용감한 수호자이기도 했다. 


<개가 그려진 십자가, 프랑스, 1160-1170년>


무엇보다 중세 유럽에서 개는 십자가에도 등장하는 신성한 존재였다. 12세기 프랑스 천주교 십자가에는 개가 그려져 있었다. 십자가 그림 중 오른쪽을 보자. 


<<개가 그려진 십자가, 프랑스, 1160-1170년>>

유대인이 이집트를 탈출한 출애굽기를 기념한 유월절 모습이다. 유월절은 유대교 기념일이지만 유럽 천주교에서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십자가 속 남자가 들고 있는 그릇 속 빨간 액체는 숫양 피다.

양 피로 집안 대문에 부적(글씨)를 쓰고 출애굽을 기념한다. 그런데 이 남자, 개 집 문설주에까지 양피 부적을 써주고 있다. 


<개를 안은 마리아 청동상, 프랑스, 14세기>

중국 『사기』에 의하면 고대 중국에서는 복날이면 개 피로 쓴 부적을 대문에 붙여 액운을 막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개 팔자는 참 극과 극이다.


<성 로크의 개, 프랑스, 1500년>

다친 순례자를 천사에게 인도하는 성인 로크의 개를 보면 개는 치유의 상징이기도 했다. 루크의 개는 항상 주둥이에 빵을 물고 있다. 천주교에서 빵은 곧 예수님의 신체다. 

이처럼 중세 유럽에서 개가 십자가에 등장하고 성모 마리아가 개를 안고 있었다는 것은 개가 곧 신이라고 믿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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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아르미안의 네 딸들 속 '개 머리 새'

종교

여불위가 진시황 아버지라면 진시황도 흉노족일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문란한 성생활으로 악명 높은 진시황 엄마는 억울하다. 

왕성한 성생활을 통해 자손을 많이 남기는 것은 기마유목민의 미덕이었다. 그래서인지 진시황 시대 유물을 보면 티베트탄 마스티프 석상이 있다.

 <진 왕조 마스티프 석상>

사자개는 유목 왕조에게는 마치 옥새와도 같다 했다. 이런 개 석상이 중국 진왕조 유적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생뚱맞다.

 
진 왕조가 받은 석상이거나 과거 초나라 영토 안에 사자 개 석상을 가진 유목 왕족이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 어느 쪽이든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하자마자 만리장성을 쌓아 흉노를 열 받게 했다.

 <만리장성>

흉노를 막기 위해 쌓은 만리장성이 흉노의 침입을 더 초래했다. 그 전까지는 겨울이 되어 천랑성(늑대의별 혹은 개의 별)이 뜨면 풀이 얼어 죽어 양 떼가 굶주린 흉노족이 남쪽으로 이동했다.

양을 몰고 이동하다 보니 거기가 중원이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중원을 노리고 양떼를 몰고 내려왔는지 모르지만 흉노는 계절에 따라 초지를 이동하듯 중국을 침입했다.

 

 <청동기 개 머리 새  추정 장식, 한,  기원전 206~서기 220년>

그런데 어느 날 진시황이 장성을 쌓아 길을 딱 막아버린 것이다. 흉노는 만리장성 건설 후 더 기를 쓰고 중국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농사를 짓지 못한 중국인은 개와 사람을 잡아먹었다. 빛의 종교 ‘개 새’와 신성한 개에 대해 백날 떠들어 봐야 중국인들에게 전혀 먹히지 않은 이유다.
  

<청동기 도끼에 새겨진 개, 세베로오세티아 공화국, 기원전 11세기~7세기>

중국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달랐다. 빛의 종교에서 ‘개머리를 한 새’ 는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신이나 신의 대리인, 혹은 왕을 상징한다. 당연히 영원불멸한 존재다.

‘개 새’ 양식이 나타난 지역은 조로아스터교를 믿었거나 영향을 받았다는 의미다. 그 중 페르시아와 아라비아 지역에서는 불새라는 개념으로 토착화된다.

<날개 달린 남자와 불새가 새겨진 점토 문양, 아케메니아 페르시아 추정, 영국박물관>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라는 순정 만화를 보면 페르시아 제국에서는 영원불멸의 신인 불새를 믿는다. 실제 페르시아 바빌론에서 발견된 점토를 보면 개 새와 피닉스가 만난다.

고대 페르시아와 아라비아 지역에서 믿은 불새는 몇 백 년 혹은 몇 천 년에 한 번씩 인간들 앞에 나타났다가 불꽃 속으로 사라졌다.

 

죽었다 부활하니 영원불멸한 신이다. 조로아스터교의 ‘개 머리를 한 새’는 중앙아시아의 북방기마 유목민에게도 아주 중요한 신이었다.

흑해 연안은 중앙아시아 북방 기마 유목민에게 매우 중요한 장소다. 늑대 머리를 한 인간을 그린 암석화도 이 지역에서 출토되었다.

<기원전 11세기 개 문양 도끼 출토 지역과 조로아스터 출생 지역>

아마도 이 곳에서 기마 유목민의 모든 역사가 시작된 것 같다. 11세기 흑해 연안에서 출토된 청동기 유물에는 개가 새겨져 있다. 날개만 없다 뿐이지 개 머리 새와 같은 문양이다. 

개 머리를 한 새를 믿는 조로아스터교와 몽골의 전통 종교는 같았다. 같은 신을 믿었다. 조로아스터교의 최고 신인 아후라 마즈다(개 새)는 몽골의 최고 신인 호르마스트 텡게르다.

<불새가 그려진 직물 일부, 위그르 지역, 8~9세기>

조로아스터는 몽골의 서쪽 지역에서 태어났다. 선비족, 고구려, 돌궐, 위그르 등이 '개 새'(주작)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이유다.

한 집안 신이었다가 갈라져 저 쪽으로 가더니 세련된 ‘개 새’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돌궐과 위그르에서는 ‘개 새’를 왕의 깃발로 사용했다. 그게 늑대 머리 깃발이다.

<불새와 함께 하는 부처 입상, 북위, 471년>

왜 뜬금없이 늑대 머리를 깃발로 사용했을까? 깃발이 휘날리는 모습이 마치 날개 달린 개(늑대)같다. 투르크의 늑대 머리 깃발은 현재 터키로 이어지고 있다.

스키타이, 흉노, 돌궐, 위그르, 몽골 등이 기록을 남기지 않은데 비해 소아시아와 이란으로 진출한 기마 유목민은 조로아스터교와 ‘개 새’라는 형태로 만들어 유물을 남긴 것이다.

<개 머리 성인 크리스토퍼, 19세기>

로마 제국 시대 시리아에서 예수를 구해준 성 크리스터퍼가 왜 개 머리를 하고 있는지 이제 이해가 된다. 소아시아 지역 최고 토착 신인 ‘개 새’가 아기 예수를 구해줬다고 나름 풀어서 설명한 것이다.

‘개 새’로 표현되는 치열한 권력 투쟁도 시리아 바로 앞 바다에 있는 키푸로스 섬의 역사를 봐도 알 수 있다. 그리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태어난 키푸로스는 현재 터키계와 그리스 계로 분단된 상태다.

<마스티프와 황소 청동기 조각, 키푸로스, 기원전 1340~1200년>

현대도 이렇게 피터지는데 고대에는 더했을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지중해 교역의 중심지인 만큼 키푸로스를 차지하려는 세력들이 많았다.

히타이트, 앗시리아, 이집트, 그리스, 로마 등 지중해 패권을 차지한 국가는 반드시 키푸로스를 차지했다. 마치 중앙아시아 비단길에 위치한 호탄과 쿠차 왕국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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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개 머리를 한 기독교 성인 크리스토퍼

종교

당나라는 양귀비가 죽은 후에도 장장 152년이나 유지되었다당나라는 위그르가 망하는 바람에 같이 망했다유목 왕조가 원래 같이 일어났다 꺼지듯 망하는 특징이긴 하다


위그르가 망한 이유는 채식이다황당하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그렇다마니교가 채식을 했기 때문이다. 엘리트 기마 무사들이 채식을 하게 되면서 살생을 하지 않았다. 위그르 군사력이 약해진 것이다

<고창 왕국, 중국 풍 옷을 입은 위그르 왕자, 9~12세기>


이것도 따지고 보면 위그르가 너무 살아서 그렇게 아닌가 싶다아즈텍-마야 문명의 보물을 쓸어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인플레이션으로 휘청인 것 처럼 말이다. 유목민에게는 고기가 흔하고 곡식이 귀하다


나라에 돈이 많으니 곡식이 넘쳤을 것이다비잔틴 제국 사신 말에 의하면 돌궐 왕의 천막은 온통 황금으로 장식되었. 위그르가 믿은 마니교에 대해 설명하자면 예수 탄생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초기 기독교 성지, 하면 시리아 안티오크였다


<17세기의 안티오크>


지금은 터키 끝에 속한 안티오크는 고대 시리아 수도였다. 당연히 터키와 시리아는 오랜 앙숙이다로마 제국은 동서로 길게 위치했 로마와 로마는 문화역사정치 모든 달랐다특히 기독교의 경우 원조는 로마의 동쪽이었다.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 안티오크알렉산드리아 등이 있는데  안티오크는 기원전 67 로마에 정복 당하기 전까지 앗시리아스키타이페르시아그리스의 영향권에 있었다구약을 믿는 유대교는 동로마 지역에 존재한 수많은 토착 종교 하나였다


<기원전 1세기~기원후 7세기 로마와 페르시아 지도>


예수 탄생 이후 유대교와는 달리 신약을 믿는 기독교가 생겼다예루살렘과 인접한 이들 지역에는 예수 사후에도 관련된 기록과 증언이 생생하게 존재했다증언과 기록을 근거로 저마다 정통성을 주장하는 교회가 생겼다


대표적으로 시리아의 안티오크 파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파가 있었다. 초기 기독교 중심 도시들을 로마가 지배 하기 시작하면서 무시무시한 박해도 시작되었다로마인들은 이교도인을 현지에서 바로 죽이지 않았다. 


<안티오크의 성 이그나티우스, 17세기>


굳이 이탈리아 로마까지 끌고 와 콜로세움 사자 먹이로 던져 주어 죽였콜로세움 살육 파티가 당시 로마 시민들이 가장 즐기던 놀이였다


로마로 끌려와 사자에 물어 뜯겨 죽은 기독교도 중에는 108 순교한 이그나티우스도 포함되어 있었다안티오크 주교인 그는 ‘카톨릭 교회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이다. 


아기 예수를 업고 강을 건넌 것으로 추앙받는 크리스토퍼도 시리아에서(안티오크 추정순교했다그런데 성 크리스토퍼는 머리를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대체  신성한 성인 머리가 개인지 종교학자와 역사학자는 설명을 하지 못한다. 티오크는 현재 터키 땅이다. 터키와 고대 시리아가 속한 아나톨리아 반도는 투르크가 지배했다. 왕이 늑대 머리 깃발을 휘날리던 그 투르크


<개 머리 성인 성 크리스토퍼, 러시아, 17세기>


중앙아시아 기마 유목민이 인종과 시대만 다를 뿐 문화가 같다고 했다. 적어도 스키타이 시절부터 아나톨리아 반도에서는 텡그리와 신성한 (늑대신앙을 믿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개 머리를 한 인간은 이 지역에서 고대부터 믿어온 늑대 인간과도 일치한다. 그가 선택받은 인간의 (텡그리)이라는 뜻이다그래서인지 로마 카톨릭이 이상 지배한 중세 유럽에서는 크리스토퍼가 철저하게 지워진다


<성 크리스토퍼, 독일, 14세기>


중세가 끝나가는 14~15세기가 돼서야 조금씩 흔적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나마  머리를 모습이 아니고 아기 예수를 어깨에  인간 모습이다반면 안티오크 파를 계승한 동방교회 에서는 때때로 머리를 모습 그대로 그려진다


카톨릭 교회라는 단어의 창시자와 아기 예수를 구한 성인이 안티오크 출신이라는 점에서 안티오크 파가 가지는 자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313년 로마 제국 황제가 느닷없이 기독교를 국교로 공표하면서 안티오크 파는 쫄딱 망한


<안티오크 파 주교를 파문한 로마 카톨릭의 제 3차 공의회>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안티오크 파를 이단으로 규정해 파문한 것이다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하나로 통일하고자 했다. 하나의 성경, 하나의 교리로 만들자는 것이다. 취지는 좋았으나 결과는 무시무시했다


로마 제국 멸망 동안 모든 유럽인은 오직 로마 카톨릭 교회가 정한대로 살아야했다조금이라도 규정을 어기면 죽었다로마 카톨릭 교단에서는 주로 불에 태워 죽였다


<스위스의 마녀 화형식, 16세기>


313년을 시작으로 거의 동안 중세의 암흑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모든 종교는 권력과 밀접하다고 했다. 백성들의 신앙심만 강하다면 종교 지도부 관리하면 되기 때문이다그런데 정작 로마 당국은 기독교에 대해  몰랐다


지리적으로 발흥지와 너 멀었고 국교가 되기 바로 전날까지도 기독교는 이단이었다로마에서는 계파 기독교 수장들을 불러 통일된 교리(성경) 만들라고 지시했당연히  기독교 계파  교리 싸움이 벌어졌다.


313년 기독교 공인, 개 머리 성인, 마니교, 성 이그나티우스, 성 크리스토퍼, 안티오크, 안티오크의 아그나티우스, 위그르, 카톨릭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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