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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115. 개고기와 함께 시작된 한국의 민간 국제 외교

종교

지금 이 순간에도 수 천 만 마리의 한국 개들이 조선족들에 의해 도살되고 있다. 조선족은 한국에서 개고기를 가장 많이 소비한다. 개고기 장사로 부를 축전한다. 개 농장에서 일한 경력으로 영주권을 받는다

축적한 돈은 다시 중국으로 빼돌린다. 이 과정에서 우리 한국인이 얻는 이득은 무엇일까? 개고기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한다고? 남과 북이 개고기를 먹으면서 사이좋게 쎄쎄쎄? 여기서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이 지구에는 남과 북만 존재하지 않는다.


<모란시장 개도축업자 90%가 조선족, 동포타운신문, 2010년 8월 22일>

전 세계에는 개고기를 혐오하는 수많은 나라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나라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조선 왕조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말이다. 역사적으로 자유롭게 교역을 해야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안정적으로 교역을 하려면 군사력은 기본으로 갖추어야 한다. 군사력을 갖추려면? 돈이 든다. 돈을 벌려면? 교역을 해야 한다. 이 사이클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된다. 식민지 제국주의 시기 뿐만 아니라 황금(경제력), 군사력, 교역은 언제나 한 몸이었다


<점령지 한국에 들어온 미국 군인, 1945년 9월 8일>

교역을 하려면? 외교를 해야 한다. 잘 나가는 나라든 망쪼가 든 나라든 기본적으로 외교는 해야 한다. 조선은 500년 간 교역다운 교역을 하지 않은 나라였다. 나라 문을 걸어 잠갔고 오직 명나라와 교역했다

명나라가 망한 후에는 청나라가 유일한 교역 상대였다. 그런 이유로 조선 시대 지배층(양반)에게 외교란 대 중국 외교를 뜻했다. 조선족 뇌가 포맷되어 고구려가 중국이라고 믿는 것처럼 조선 시대 양반들도 조선은 중국이라고 믿었다


<반려견과 함께 사진을 찍은 케네디 대통령 일가, 1931년>

이 사람들이 그대로 일제 시대 조선 식민지 황국 신민을 거쳐 해방 후 한국인이 되었다. 뇌가 중국인으로 포맷된 채로 말이다. 조선 시대 양반 중 황국신민인 상태를 받아들인 사람은 친일파가 되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독립운동을 했다


친일파냐 독립운동이냐? 자유주의냐, 공산주의냐? 지지고 볶는 사이에 1945년 해방이 되었다. 남북이 갈리고 북한은 다시 공산주의 독재로 나라 문을 걸어 잠갔다. 북한은 조선 왕조와 마찬가지로 특정 국가와만 제한된 외교를 했다


<친미파 개신교 신자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케네디 대통령과 만나는데 성공한 박정희 대통령, 1961년>

중국, 소련 등 공산국가와만 말이다우리 자유 대한민국은 1948년 이후 혼자 힘으로 전 세계국가를 상대해야 했다. 운전면허 따고 도로 주행 없이 고속도로 탄 격이었다.  대형사고가 터질 수 있다. 당연히 외교와 무역을 국가가 제한했다. 

일제 시대는 물론 해방 후 1980년 대까지 한반도에서 외국에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은 선택받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런데 해외 여행 자유화 이전 외국을 (외국의 도움으로) 제 집 처럼 자유롭게 들락날락 거리던 집단이 있었다. 천주교와 개신교 지도자들이었다


<1961년 박정희 대통령이 케네디 대통령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한 친미파 기독교 중 한 명인 김활란 이대 총장, 1959년>

대한민국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한 이들은 한국의 개고기 식용 사실을 외국에 가장 적극적으로 알린 사람들이기도 하다. 특히 천주교 주교와 추기경 및 신부들은 개고기를 순교의 음식으로 여기며 자랑했다

공산주의자라는 의혹을 받기도 한 교황 비오 12세는 한국의 제사가 우상 숭배가 아니라고 인정해준 교황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제사는 무교에서 기원한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며느리가 음식을 장만하는 유교식 제사는 조선 시대 들어 가미된 형식으로 원래는 제사 때 차를 올렸다


<한국 제사를 인정해준 교황 비오 12세, 1922년>

그래서 차례라고 한다. , 천주교 교황님이 천주교에서 미신이라고 질색한 제사를 인정해줬어, 그럼 미신을 인정해준건가? 아니다. 개고기를 먹음으로써 한국 미신에 빅엿을 먹였다. 조선 시대 양반은 개가 조상신이라 절대 개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겉으로는 제사를 인정하고 지내면서 뒤로는 개고기를 신나게 먹으면? 열 받은 조상신이 오지 않아 결과적으로 제사 빨이 안 받게 된다. 이보다 완벽하게 더 한국 미신을 엿먹이는 방법은 없다. 조상 신 쫓는 주술적인 효과 외에도 한국 천주교의 정치적 성향 상 개고기는 먹을수록 좋았다. 


<60년대부터 외국인에게 한국에는 식용개가 따로 있다고 설명하고 다닌 고 김수환 추기경과 고 노기남 대주교>

해방 후 천주교가 적극적으로 앞장 선 농촌 계몽 운동, 노동 운동, 민주화 운동, 시민운동 등등은 누구와 연관이 깊다? 중국 공산당. 중국 공산당을 세운 마오쩌둥은 뭐를 먹는다? 개고기. 제사 신빨 죽이는 개고기와 중국 공산당의 개고기가 만났다

개고기와 개고기가 만났으니 한국 천주교가 개고기에 환장한 건 당연하다개신교도 사정은 비슷하다. 천주교처럼 확 좌경화 되었느냐, 서서히 좌경화 되었느냐 차이다. 1910년 조선 식민지 지배와 함께 조선에 당당히 입성한 미국식 개신교는 대체적으로 친일을 했다


<맥아더 장군과 쇼와 천왕, 1945년>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미국이 일본과 친했으니까. 무도회를 열어 왕궁의 불꽃놀이를 해 준 메이지 천황과 달리 고종은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딸과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을 묘지로 데려가 점심을 먹였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천주교와 달리 개신교는 빨갱이라면 치를 떨었지만 역시 점차 좌경화 되었다개신교 지도자 중에는 친일파에서 친미파로 전향한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부터 친미파였던 사람은 이승만 대통령 정도로 그 수가 매우 적었다.


<동물은 인간이 이용하라도록 신이 준 자원이라는 한국 카톨릭, 한국일보 2015년05월

개신교 지도자들은 천주교와 마찬가지로 개고기를 열심히 먹었다. 여기부터 한국 개들 역사가 단단히 꼬인 셈이다. 원래 개는 조상신이라 먹지 않는다고 한 조선 시대 양반들은 해방 후 친일파란 이름으로 찍 소리 못하고 살았다. 

신 운동이란 운동은 다 하고 민간 외교를 하고 다닌 천주교, 개신교,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득세를 했다. 1980년 대 이전까지 한국 외교를 담당한 민간 외교관들 중 상당수 역시 이들이었다. 그들이 개고기는 전통이라고 백 번 우긴 결과 개고기는 전통이라고 믿게 되었다. 


<500년 동안 세계 4대 문명 중 개고기 먹은 중국 문명과만 교류한 조선>

특히 고 김수환 추기경 등은 개고기는 한국 전통이고 식용개와 애완견은 따로 있다는 헛소리를 하고 다녔다. 500년 동안 중국만 상대하던 구 조선인 (현 한국인)은 몰랐지만 전 세계 4대 문명 중 개고기를 식량으로 먹은 문명은 중국 황하 문명이 유일했다

,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문명국가는 개고기를 극도로 혐오했다국제 외교 데뷔 초장부터 한국인은 스스로 혐오와 비난을 짊어지고 세계를 상대했던 것이다. 이 상황을 찍어 누른 사람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이다. 그들은 친일파 지식인, 천주교, 개신교, 운동권 세력의 열망과 달리 개고기를 금지했다.

 

114.교황님, 신부님이 개고기 좀 그만 먹게 해주세요!

종교

우리나라 개고기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계층이 1960년대 농촌 일꾼이다. 1960년 대 복날에 개고기를 먹은 주요 계층은 일부 천주교, 개신교 신자와 가난한 농촌 노동자들이었다. 이들 주역은 1960년대 농촌에서 만났다.    

1980년대까지 우리 사회에는 개고기 금기가 남아있었다. 개고기 금기는 산업화 이전인 1960년 대에는 더욱 강했다. 특히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이 정한 개고기 금지법이 강하게 남아 있던 시기였다


<개고기 금지법을 만든 이승만과 개 반 마리는 기본으로 먹은 노기남 대주교(친미파와 친일파), 1948년>

1920~1940년대 생 어르신 중에 복날 개고기를 먹었다고 한 분은 1960년대 시골 농촌에서 머슴을 살았다는 분이 유일했다. 2000년대 이후 쏟아진 복날 개고기를 먹는 전통에 대한 기사를 봐도 1960~1970년대 힘든 농촌 노동자들이 삼복더위에 영양보충을 위해 개고기를 먹었다는 내용이 많았다

개고기 역사에서 왜 1960년대 한국 농촌이 중요한가 하면 천주교, 개신교가 활발하게 농촌 선교 운동을 하던 시기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농촌 선교 운동은 농촌 계몽 운동과도 관련 깊다

<추기경 비서를 지낸 모 신부가 여름 수련회에서 개고기 먹은 일화, 2006년 5월>

농촌 선교 운동은 시골 구석구석에 세워진 개척 교회를 세우는 사업 외에도 여름 성경 학교 등의 놀이 선교로도 이루어졌다. 여름 방학에 집에서 심심해하던 아이들은 아직 교회에 다니지 않더라도 성당과 교회에서 주관하는 여름 수련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주로 시골로 떠나던 교회와 성당 수련회에서 뭘 했냐? 개를 잡아먹었다. 한국 천주교와 개신교는 전 세계 기독교 중 유일하게 개고기를 먹는 종교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천주교와 개신교가 정통 기독교에서 한참 벗어난 신흥 종교라고 할 수 있다


<1980년 여름에 개 8 마리를 먹은 노기남 대주교, 중앙일보, 1981년 1월 7일>

그렇다면 왜 한국 천주교와 개신교에서는 개를 잡아먹을까? 한국 무교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개고기를 먹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한국 기독교는 사상적으로 좌편향 된 경우가 많았다

한국 천주교와 개신교는 1910년 일본 식민지 지배와 동시에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되었다. 1911년에는 청 왕조가 무너졌고 1917년에는 소련이 공산화되었다


<국가 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천주교 수원 교구, 카톨릭평화신문, 2019년 8월 18일>

무슨 음모론이 아니라 한국 기독교 역사는 세계 공산화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은 유독 중국 공산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나라였다. 


천주교와 개신교 역시 중국 공산주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렇게 따지면 한국 천주교가 왜 유독 민주화 운동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도망친 개를 주인 집에 찾아가 잡아와 잡아서 먹은 성당 수련회, 2006년 5월>

정말 중국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았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천주교 신부님과 수녀님, 목사님들이 개고기를 아주 좋아한 것만은 사실이다

개고기 좋아하는 신부님수녀님목사님이 여름이면 애들을 모아서 산으로 들로 수련회를 떠났다애들한테 뭘 먹였을까? 개고기를 먹였다


<부산 마리아 수녀회에서 개고기 판매. 2011년>

어느 유명한 천주교 신부님은 여름 수련회에서 애들을 데리고 시골 장에 가 살아있는 개를 사서 끌고 온 다음 때려죽여서 먹은 이야기를 재미있는 추억이랍시고 떠들었다

장터에서 사온 개가 줄을 끊고 필사의 탈출을 했는데도 신부님은 여유만만 했다고 한다. 신부님의 예상대로 과연 도망친 개는 자신을 판 주인 아줌마 집에 돌아가 떨고 있었다. 신부님은 도망친 개를 다시 수련회 건물로 끌고 와 때려 죽여서 맛있게 먹었다. 


<개고기 전도사 수원교구 이성효 신부, 경인일보, 2011년 5월 16일>


애들이 뭘 배웠을까? 개신교회 수련회 모습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교회 수련회 건물이든 기도원 건물이든 그 곳에서는 개를 잡는다. 이게 1910년 이후 한국 기독교 여름 수련회의 모습이었다. 마침 시기도 여름 복날과 여름 성경 학교 시기가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

학생 여름 교회 수련회에서 개를 잡아먹은 일화는 개신교와 천주교 역사에 고이고이 남아 지금도 개신교와 천주교에서는 복날 개를 잡아먹는 걸 전통으로 여긴다


<한국 천주교 신부님의 개고기 식용 중단을 요구한 플랭카드, 오마이뉴스, 2008년11월 8일>

전통은 미국에서도 이어져 한국 교회 기도원에서 개를 잡아먹다가 걸려 전 미국인을 경악하게 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얼마나 많이 잡아먹었으면 미국에서 한국을 콕 찍어서 , 고양이 식용 금지 결의안이 통과되었나


농촌 계몽 운동은 도시의 지식인들이 복날이 낀 여름 한철 시골로 자원 봉사를 하러 와서 농사일을 돕고 농민과 농가 어린이들을 가르치던 운동이었다

<1961년 수원 대교구장은 프랑스외방선교회 신부에게 강제로 개고기를 먹였다,  평화신문, 2007년 3월 4일>

도시의 지식인들의 대표 단체가 대학생 농촌 동아리였다. 농촌 동아리 대학생들은 어린 농촌 아이들을 모아 놓고 데모할 때 부르는 노래 등을 가르쳤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학생 운동하던 애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1960년 학생 운동의 주요 내용이 뭘까? 친일파 반대, 미군 철수, 남북통일 등이다. 개고기 역사를 연구하는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내용이 친일파 반대, 미군 철수다. 그래, 백 번 양보해 친일파 증오하고 미군 주둔하는 거 반대할 수 있다


<친일 인명사전에 등록된 노기남 대주교, 오마이뉴스, 2009년 11월 11일>

나라를 일본 놈들에게 팔아먹고 주권 국가에 남의 나라가 주둔하는 건 기분 나쁘다. 기분 나쁜 건 감정이다. 외교는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안 망하고 버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해방 후 74년이 지난 지금까지 극단적인 반일을 하는 건 정상이 아니다마찬가지로 미군이 주둔해서 우리가 얻는 이득이 훨씬 큰데도 미군 철수를 외치는 건 우리나라를 위하는 게 아니다.


<노기남 대주교에게 친일을 허락한 교황 비오 12세는 공산주의자, 나치 혐의도 받았다>

우리나라를 위하는 게 아니면 어느 나라를 위하는 일인가중국을 위하는 일이다...중국 공산당을 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어쨌든 간에 우리가 일본과 미국과 싸우면 제일 이득을 보는 나라가 중국이다

한국인이면서 한국을 망치는 이런 일들을 일찍부터 사회 운동, 민주화 운동, 농촌 계몽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해 왔던 것이다복날 개고기 식용 문제도 마찬가지다

<개고기로 민족의 동질성 회복하자는 통일뉴스, 2015년9월 14일>

음식문화든 주거 문화든 한국인이라면 한국인을 위한 문화 발전에 힘써야 한다개고기를 먹어서 한국 국익에 도움 되는 것이 있다면 한 가지만이라도 알려주기 바란다

개고기로 민족 공통체 회복? 개고기로 한국, 중국(공산주의 독재), 북한(공산주의 독재) 동북아 개고기 경제 공통체 형성? 이게 좋은 건가? 공산주의 독재 국가와 하나 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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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왜 성모 마리아는 개를 안고 있었을까?

유럽사

한국 천주교는 천주교 역사 상 유일하게 개고기를 전통으로 인정하며 적극적으로 먹는 조직이다. 원래 천주교에서는 개를 신성하게 여겼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용과 싸우는 개가 그려진 메달 형태의 성체함, 프랑스, 1420년>

유럽사는 곧 기독교(천주교와 개신교역사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종교 개혁 이전의 천주교와 종교 개혁 후의 개신교를 설명하면서 유럽사도 함께 알아볼 것이다.

<개고기를 모두 금지하는 세계 5대 종교>

유럽사는 곧 이슬람사, 미국사와도 이어진다. 복잡다단한 이 역사들 속에서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개고기 안 먹는다. 한국 기독교만 먹는다.”


<성모마리아와 예수와 개, 1590년, 독일>

유럽 예술에서는 성모마리아와 개가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종교 개혁 전과 후 형식이 조금 달라진다. 종교 개혁 전에는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혹은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와 강아지 혹은 성모마리아와 개가 함께 묘사되었다.


<개를 안은 성모마리아 청동상, 14세기(처음에는 15세기로 알려졌으나 14세기), 프랑스>

이 성모마리아 상은 아예 개를 안고 있다. 어린 양이 아니라 당나라 황실 여인 신발을 물어뜯던 것처럼 작은 랩독이다. 심지어 이 사진을 자세히 보면 성모 마리아는 임신을 한 상태다


<개를 안은 마리아 청동상 측면, 14세기, 프랑스>

다른 방향 옆모습을 보면 옷 주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주름이 없는 쪽은 확실히 그렇다. 앞서 설명했듯 중세 시대는 카톨릭 독재시대였다. 그 날 입은 옷 색깔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잡혀가 화형을 당할 수 있을 정도로 엄격했다. 


<개를 안은 여자와 왕이 새겨진 거울케이스, 상아, 프랑스, 14세기,>

그런 중세 시대에 성모마리아가 개를 안고 있다는 것은 개와 성모마리아의 연관성을 카톨릭 교황청이 인정했다는 의미다. 개는 중세 시대 거울 케이스에도 자주 등장했다


<개들과 승마하는 여인이 새겨진 거울케이스, 상아, 14세기, 프랑스>

보통 구도는 비슷하다개를 안고 있는 여인과 그 여인을 에스코트 하는 듯한 남자가 있다. 중세 시대 피터지는 왕위 계승 싸움 속에서 교황이 인정하는 자만이 왕이 될 수 있었다.  


<개를 안은 여자와 남자가 새겨진 거울케이스, 상아, 프랑스, 14세기

개가 새겨진 성체함을 가진 일족은 우위를 차지했다. 여기까지 정리하자면 중세 시대 개가 예수님(신)과 지상의 왕을 상징한 것이다. 교황이 인정한 개의 신성성은 교황의 힘이 몰락한 종교 개혁 후 달라진다. 


<팔 모양 성체함 중 날개달린 개, 1230년,프랑스>

노골적으로 왕의 후견인임을 의미하던 개의 상징성은 친근함으로 바뀌었다. 왕의 대관식에 참여하던 개는 왕과 일상을 함께 하는 반려견으로 그려졌다. 개는 개지만 역할이 조금 달라졌진 것이다.

 

<1515년 즉위한 프랑수와 1세와 여동생 마가레트(여왕 마고) 1827~30년 작품, 영국>

마찬가지로 성모마리아와 개의 관계도 달라졌다. 아기 예수를 낳거나 어린 예수를 안은 성모마리아 발치에 개가 함께 하는 구도에서 점차 젊은 아가씨와 개 한 마리를 그리는 구도로 바뀌기도 했다


보통 그럴 경우 초상화 제목은 마리아일 경우가 많았다.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실제 여성의 초상화일수도 있고 성모 마리아의 마리아일 수도 있다.


<개를 안은 마리아, 영국,  1777년>

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 강아지는 너무 많이 알려진 카톨릭의 상징이라 아기 예수를 빼는 방식으로 카톨릭의 종교 색을 없앤 듯하다. 그렇다고 개신교와 동방정교회 등의 기독교에서 개를 무시한 것은 결코 아니다. 모든 기독교에서 개는 신성하다. 

 

<Marie Émilie Coignet de Courson와 개, 프랑스, 1769년>

그 이유가 나는 유럽 기독교 문화의 바탕이 된 에트루리안 문화에 있다고 본다. 에트루라인은 소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개 숭배 신앙을 유럽으로 이어준 아주 중요한 연결 고리다. 


<손에 뱀을 든 날개 달린 천사 혹은 악마, 에트루리안, 기원전425~400년>


중세 시대 성모마리아와 개를 새긴 거울 케이스를 다시 보자. 이와 비슷한 거울 케이스가 에트루리안 시대에도 있었다. 에트루리안 시기의 거울 케이스에도 개가 등장한다.


<신을 경배하는 개가 새겨진 거울 케이스, 에트루리안, 6세기 추정> 

기원전 6세기 경으로 추정되는 에트루리안 거울 케이스 중앙에는 신을 향해 뛰어오르는 개가 새겨져 있다. 그 옆에는 남자는 지팡이를 들고 있다. 지팡이를 든 남자? 성 크리스토퍼이다. 


<성 크리스토퍼를 조각한 성체함, 프랑스, 1375–1425년>

성 크리스토퍼는 보통 예수님를 어깨에 메고 지팡이를 든 모습으로 그려진다로마 로물루스 형제에 의해 지배되기 전 그리스와 로마 지역에 제국을 세운 에트루리안의 기원은 시프러스인 듯 하다


<날개 달린 개 신앙이 유럽에 유입된 과정>

나중에 그리스로마 신화를 설명하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 중 개와 함께 묘사되는 신은 모두 시프러스 섬에서 출신이다.  


<거울 뒷면에 새겨진 에로스와 테우트라스 왕의 화해, 에트루리안, 기원전 4세기 추정>


에트루리안 지배층은 또한 터키(소아시아) 지역에서 믿은 낭두독(개 머리 깃발, 날개달린 개)을 믿었다. 낭두독은 지금의 터키와 당나라 시대 돌궐과 위그르에서 왕을 상징했다. 지상의 왕은 날개달린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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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주요 종교가 금지하는 개고기, 한국은 또 예외

종교

중국 일대일로는 걸리적 거리는 나라 없이(주로 미국) 중국에  안정적으로 에너지 공급을 하자는 중국의 국가 프로젝트다. 지도를 보면 대충 이렇다. 결국 패권 전쟁이다. 


누구와? 미국과. 역사를 통틀어 유통과 금(돈)을 장악하는 국가가 패권을 장악한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미국 진주만을 공격한 이유도 미국이 일본의 해상 수송로를 막아버리는 바람에 말라 죽을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중국 일대일로 참여 국가 이름, 조선일보, 2018년4월 19일>



그래서 일본에서는 (주로 우익) 아직도 자신들은 피해자라고 하는 것이다. 히로시마 원폭과 상관없이 "니들 미국이 석유수입만 안 막았으면 우린 너네 공격 안 했어." 이 논리다. 


유엔경제 제재에 궁지에 몰린 북한이 미국 하와이에 자살특공대를 날린다고 한 격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개고기 식용에는 중국의 유교(중화사상)이 아주 큰 영향을 끼쳤다.

 

<미국에 핵 미사일을 날리겠다고 한 북한,  예멘 민트프레스, 2018년 8월> 


중국 세력이 침투한 아시아 지역에는 개고기 식용 문화도 같이 들어갔고 중국 세력이 약해지면 개고기 식용 금지법이 생기는 패턴을 보였다. 


대표적인 예가 유교(조선 왕조)와 삼합회 자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아직도 중국 본토 못지 않게 중국 세력이 강한 지역으로 분류할 수 있다. 



<중국 일대일로에 참여한 국가, 조선일보, 2018년 4월 10일>


심하게 말해 아직 한국은 중국의 개고기 식민지다. 중국 일대일도에 참여한 국가들은 하나둘 발을 빼고 있고 개고기 식용 국가에서 개고기 금지국가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대일로 참여 국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 이슬람교(수니파)와 중국 자본(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이 강한 지역이다.




<중국 일대일로 관련 국가의 종교>


미얀마, 캄보디아는 불교 국가지만 전통적으로 중국의 영향을 아주 강하게 받은 지역이다. 개고기와 중국의 일대일로 관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세계 주요 5대 종교다.


개고기는 종교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은 음식이다. 전 세계 5대 종교 중 개고기를 먹는 종교는 없다. 천주교와 개신교는 개를 먹지 않는다.



<예수 탄생을 지켜보는 동방박사와 개, 네덜란드, 1520년>

 

성경에서 개는 불결한 존재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개는 금지음식으로 분류되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개 머리를 한 성자인 성 크리스토퍼의 영향이 있다고 본다.


<세계 5대 종교 별 개고기 식용 현황>


개는 어린 예수님을 구해준 성스러운 존재이다. 예수탄생을 지켜보는 동방박사 옆에 개가 그려지는 이유다. 성 크리스토퍼까지 얘기하자면 시리아 안티오크 파 얘기까지 해야 한다.  



여러 모로 피곤해지니 대충 "개고기는 먹지 마. 개는 인간의 친구니까" 정도로 넘어간 것 같다. 천주교에서 나온 개신교 역시 개고기는 먹지 않는다. 유럽의 천주교 선교사들이 침략한 지역에서는 개고기가 금지되었다. 


<두 마리 사자(개) 위에 앉은 부처, 북위,  5세기 후반~6세기>


멕시코, 필리핀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천주교와 개신교 교회가 앞장서서 개고기를 먹는 전 세계 유일의 국가다. 천주교 추기경과 신부들은 개고기를 전통음식으로 여긴다. 이슬람교에서 개는 악마의 화신이다. 



<이슬람 이민자에게 개 키우지 말라는 경고를 받은 영국 남자, 텔레그래프 지 2016년 6월14일>


이슬람교는 조로아스터를 믿은 페르시아를 멸망시키며 제국을 세웠다. 조로아스터교에서 개는 신이다. 이슬람교에서 개는 악마다. 개를 혐오하는 경향은 이슬람 원리주의, 극단주의가 심할수록 강해진다.


개를 만지는 것조차 꺼리는 이슬람교에서는 당연히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개고기를 먹으면 지옥에 간다고 믿는다. 어쩔 수 없이 먹은 경우 정상참작이 된다고 한다.  힌두교에서 개고기는 불가촉천민이나 먹는 음식이다.


<흰 개를 데리고 고행하는 인도의 수행자, 16세기


브라만 계급이 개고기를 먹으면 아주 복잡한 정화의식을 반드시 치러야 한다. 힌두교에서 불가촉천민은 인간이 아니다. 일부 불가촉천민이 개고기를 먹는다고 개고기가 전체 인도인이 먹는 음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교를 보자. 불교에서 개는 다음 생에 인간으로 태어날 동물이다. 인간과 마찬가지인 개고기는 불교에서 금지음식이다. 역시 한국 불교만은 예외다. 하지만 전 세계 주요 종교 모두 개고기를 금지한다. 



<개를 때리는 이슬람 남자,1224년>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수니파) 신도 수가 가장 많지만 한 해 수 백 만 마리의 개를 먹어치웠다. 화교 자본이 깊숙이 침투한 인도네시아에는 주로 중국인들이 불교, 도교, 유교를 믿는다. 이런 인도네시아가 개고기 금지를 선언했다. 


홍콩, 대만, 베트남 등 중국 영향을 많이 받는 국가들도 개고기 금지 선언을 하는 가운데 한국과 북한은 꿋꿋하게 개고기는 (중국 전통이지만 중국은 한반도와 동일시되므로) 전통이라고 주장하며 개고기를 먹고 있다. 


<예멘 반군이 북한산 미사일를 사용한다는 VOA, 2017>


북한은 중국 일대일로 참여국 중 하나인 예멘의 우방국이기도 하다. 2015년부터 내전 중인 예멘 후티 반군은 북한제 미사일로  사우디를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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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초기 기독교 교리 전쟁과 푸아그라

종교

313년 기독교 공인 후 로마 당국이 하나의 성경을 만들기로 하자 각 계파 간 교리 전쟁이 시작되었다. 특히 3세기 넘는 세월 동안 각자의 교리를 발전 시켜온 알렉산드리아 파와 안티오크 파가 심하게 싸웠다. 


이 중 알렉산드리아파가 이겼고 그 결과 유럽에서는 푸아그라 같은 음식이 발전했다. 알렉산드리아 파와 푸아그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알렉산드리아파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초기 로마 카톨릭 교리의 뼈대를 만든 인물이다. 

<거위에게 강제로 먹이를 먹여 간을 비대하게 만든 푸아그라>


안티오크 파는 성모 마리아를 부정했고 성상 숭배를 금지 했다. 지금의 천주교 성당에서 성모마리아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상을 제외하면 뭐가 남을까? 신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알렉산드리아 파와 안티오크 파의 차이는 끝도 없다. 


그런데 둘의 차이는 동물에 대한 관점 하나로도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거위를 고문해서 비대한 거위간을 먹어도 되느냐? 안 되느냐? 는 생명론의 차이다. 프랑스 푸아그라 요리가 생긴 것도 결국 따지고 보면 초기 교리 싸움  결과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된 성 아우구스티누스 초상, 6세기, 로마>

알렉산드리아파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죽이지 말라는 계율에 동물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다. 거위를 죽이든 말든 고문을 하든 말든 상관 없다는 얘기다. 이런 성경 해석을 기반으로 하는 생명론이 313년 이후 거의 2천 년 동안 유럽을 지배했다.   

로마 제국이 만든 로마 카톨릭에 의하면 동물은 제대로 된 생명체가 아니었다. 자연의 사다리 중 인간이 제일 위에 있고 동물은 밑바닥에 있었다. 신의 섭리에 의해 동물은 인간을 위해 노동하거나 고기와 (살육의) 즐거움을 안겨줄 의무가 있었다. 

<스콜라 철학의 대가, 토마스 아퀴나스>


동물은 그저 인간을 위해 태어난 존재였다13세기 카톨릭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동물에게는 이성이 없으므로 죽으면 영혼이 사라진다고 했다. 그러니 동물을 죽이는 죄책감 따위 가질 필요 없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당연히 유럽에서는 살아있는 거위 털을 뽑거나 살아있는 암퇘지 자궁에서 태아를 꺼내거나 작은 새의 눈알을 뽑고 무화과를 먹여 4배로 살을 찌운 후 최고급 술에 익사시켜서 먹는 잔인한 요리법이 발달했다.  


<눈알이 뽑히고 강제로 4배로 살이 찌는 프랑스 촉새 오르톨랑>


만약 "참새만한 새 눈알을 뽑아 작은 비둘기만하게 살찌우는 것은 명백한 동물 학대다! 거위도 생명이고, 돼지도 생명이다!"고 항의 했다가는 이단으로 몰려 화형을 당할 수도 있었다. 동물 학대란 개념 조차 없었다. 


동물은 사랑을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고양이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마녀로 몰린 이유 중 하나다.  14세기 중세가 끝난 후에도 이런 생명론은 여전히 유럽에서 유효했다. 17세기 위대한 철학자 데카르트는 개가 죽을 때까지 채찍질을 했다. 


개가 지르는 비명은 아파서 내는 소리가 아니라 기계에서 내는 삐끄덕 소리 소음 같은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데카르트가 싸이코패스라 개를 때려죽인 게 아니었다. 


심지어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의 이론에 의하면 동물은 일종의 물건 같은 거라 고통을 느낄 수 없다. 일본 군이 생체실험을 한 논리적 근거기도 했다. 고통, 행복, 두려움 등은 인간만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그들은 믿었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


알렉산드리아파의 아우구스티누스 식 성경 해석은 19세기 인종론으로도 이어졌다. 흑인종과 황인종은 인간이 아니었다. 동물과 인간의 중간 쯤에 위치한 진화가 덜 된 존재였다이 인종론이 유럽인들을 잔인한 제국주의자로 만들었다.  


하나님이 인간(유럽인)에게 이 세계를 지배할 권리를 주셨으니 당연히 유색인종은 유럽인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할 의무가 있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신의 섭리이자 유럽의 상식이었다.  


<로마 카톨릭에서 보는 생명의 사다리>


로마 카톨릭 신부들이 신의 뜻이라고 외치며 잔인한 제국주의 식민 지배의 앞잡이가 된 이유이다. 스페인을 비롯해 전 세계 어디든 달려가 신의 말씀을 전하던 로마 카톨릭은 17세기 조선에도 전해졌다.  


생명론에 관해서만 보자면 한국 천주교는 여전히 17세기 유럽인과 같은 의식 수준에 머물러 있다. 성경에 나오는 금지 식품 조항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며 전 세계 천주교 중 유일하게 개를 먹는다. 

 

<17세기 유럽의 생명론 수준에 머문 2015년 한국 천주교 인사>


아직도 동물은 물건이며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아 개고기를 즐기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연례 행사처럼 개를 때려죽일 때 내는 비명 소리도 삐걱거리는 기계음이라고 믿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역사에 만약이란 단어는 필요 없지만 만약 그 때 안티오크 파가 이겼다면 인류 역사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또 만약 그 때 아우구스티누스가 마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을 하지 않았더라면 인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특히 프랑스 신부에게 개고기를 먹인다는 한국의  모 지역 카톨릭 신부, 2011년>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인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 안의 기독교 교리에 의문을 느껴 더 훌륭한 종교인 기독교로 개종했다. 마니교 안의 기독교란 안티오크파 기독교다. 안티오크 파는 채식을 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채식, 이 한 단어로 모든 상황이 설명된다. 얼마 전 수 백 마리의 개들을 잔인하게 도살한 대형 동물보호단체 대표가 검찰에 고발되었다. 어이 없게도 그녀는 아주 엄격한 채식주의자였다. 


<해마다 모 지역에서 직접 개를 때려잡는다는 일부 한국 천주교 본부 사람들. 사진 : 한겨레>


채식을 한다는 것이 반드시 동물을 죽이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마니교는 '죽이지 말라'는 계율을 철저히 지킨 것 같다. 전 마니교(안티오크 파 신자) 신자 아우구스티누스가 굳이 '죽이지 말라'는 성경에 동물은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콕 집어 말한 것을 보면 말이다. 


죽이지 말라는 안티오크 파와 죽여도 된다는 알렉산드리아 파가 싸웠다. 황제의 명령에 의해 당장 성경을 만들어야 하는 로마 당국 입맛에는 누구 말이 더 맞았을까? 당시 로마 사람들은 콜로세움에서 사람과 동물을 죽이는 걸 최대 오락거리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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