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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보드 게임으로 보는 신라인 청나라 조상설

유목사

청나라 황제 건륭제는 자기가 신라인의 후손이라고 했다. 여러 기록에 의하면 통일신라 멸망 후 신라인이 중국 북부로 이동해 발해가 있던 지역의 여진족을 통합해 금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후금을 세운 아골타, 12세기>

금나라가 망했다가 17세기 다시 후금을 세웠으니 바로 청나라다. 그렇다면 통일신라 시대까지 왕족만 키울 수 있던 삽살개와 청나라 황족만 키울 수 있던 사자개의 관계를 이런 식으로 연결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황실 개로 보는 통일신라와 금, 청의 관계>


기원전 14세기 키푸로스에서 신성한 개를 믿던 지배 세력이 스키타이와 흉노로 이동했고 흉노는 계속 갈라져 신라와 금, 청나라의 지배층이 되었다는 가설이다. 

모든 기마 유목민이 인종과 언어를 제외하고 같은 문화를 지녔다고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증명을 해보라고? 


<보드 게임을 하는 금나라 여인들, 12세기>

단서는 의외로 사소한 데 있을 수 있다. 보드 게임이다. 12세기 금나라 여인 두 명이 열심히 보드 게임을 하는 모습이 그려진 벽 타일이다. 

이 유물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 째, 금나라 여인들의 복식과 배경으로 보아 금나라 지배층은 상당히 발달한 문화를 누렸다는 사실이다.  

<흉노의 보드 게임 판과 말,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

적어도 고려와 조선이 욕한 것처럼 개가죽을 뒤집어 쓰고 토굴에 사는 야만인은 아니었다. 두 번 째, 몽골의 흉노 유적에서 발견된 보드 게임 유물로 보아 보드 게임은 적어도 1300년 동안 기마 유목민 사이에서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금나라가 신라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면 통일신라 지배층도 마찬가지로 보드 게임을 하고 놀았을 수 있다. 왜 보드 게임이 기마 유목민의 문화인가? 

<육박 게임을 하는 한나라 여인들, 1~2세기>

흉노와 비슷한 시기 한나라 유물을 보자. 아마도 왕실 여인인 듯한 두 여인이 육박 게임을 하고 있다. 육박은 전한 시대 이후 바둑이 유행하기 전까지 중국 대륙에서 즐긴 게임이다. 


한나라 인은 육박 게임을 하고 흉노인은 보드 게임을 했다. 왜 흉노 사람은 보드 게임을 하고 한나라 사람은 육박 게임을 했을까?   

<중국인이 즐긴 육박과 바둑놀이>

흉노 인이 말을 타고 생활했기 때문이다. 보드 게임은 언제든 탁탁 접어 상자에 넣어 들고 다닐 수 있다. 보통 상류층이 사용하는 바둑판은 귀한 나무에 옻칠을 하거나 옥으로 만들어 매우 무겁다. 

말에는 못 싣고 소가 끄는 수레에나 실어야 한다. 번거롭다. 그래서 기마 유목민이 보드 게임을 즐긴 것 같다. 당나라와 청나라는 기마 유목 왕조가 중국인을 지배한 경우다. 바둑과 보드 게임을 모두 즐겼을 가능성이 있다. 

<에도 시대 바둑판과 바둑알, 일본, 1800~1880년>

사실 보드 게임의 역사는 흉노 시기보다 더 오래되었다. 무려 기원전 13세기에서 11세기 사이 키푸로스에서 보드 게임 상자가 발견된 것이다. 

앞서 소개한 날개달린 개의 변형인 불새가 그려진 게임 상자가 그것이다. 영국 박물관에서 이 게임 상자를 펼쳐서 그려 보니 이렇게 생겼다. 흉노의 보드 판과 같다. 


<키푸로스에서 발견된 보드 게임 상자, 기원전1250~1050년>


키푸로스의 보드 게임판까지 따지면 금나라가 세워진 12세기 현재, 보드 게임의 역사는 무려 2500년이 넘는 것이다. 2500년 동안 기마 유목 문화가 유지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키푸로스에서 발견된 보드 게임 상자 조감도, 기원전 1250~1050년, 영국박물관>


키푸로스와 흉노, 금나라로 이어진 보드 게임의 이동을 지도로 그려보면 이렇게 된다. 보드 게임으로 대변되는 기마 유목 문화가 소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 한반도와 만주로 이어진 것이다. 


<보드 게임으로 보는 기마 유목 문화의 이동 경로>


키푸로스의 게임 상자에 그려진 불새는 날개 달린 개다. 보드 게임의 이동 경로는 신성한 개를 믿는 신앙의 이동 경로와도 일치한다. 청나라 시조가 뜬금없이 왜 개가 자기 목숨을 구해줬다고 동네 방네 떠들고 다녔을까

<사자 개를 조각한 수정 인장, 청, 17세기>


보드 게임 문화권에서 날개 달린 개는 신의 대리인이나 신 그 자체 혹은 지상의 왕을 의미했다. 개 즉 하늘이 자신을 지상의 왕을 정했다고 소문낸 것이다. 신라와 청나라 황실에서 황실 개를 키운 이유다. 황실 개는 옥새였다. 


58. 백제는 일본을 지배했나? 만주는?

한국 속 유목사

임나일본부설, 한반도 일본 지배설은 별 의미 없다고 본다. 아마 당시 한반도와 일본을 지배한 계층은 기마 유목 왕조인 제 3의 세력이었을 것이다.  기마 유목 왕조의 국제 커넥션이 6~7세기 중국 선비족 왕조와 백제, 신라, 일본을 반가사유상으로 연결해주었을 수 있다. 

특유의 기마 유목 문화를 상징하는 것이 신성한 개를 믿는 관념이다. 신성한 개는 고대 중앙아시아 유목민이 믿은 알타이 샤먼 즉 텡그리 신앙에서 시작되었다. 

 <날개 달린 개 신앙과 한민족의 치우 신앙>


텡그리 신앙은 빛을 믿는 신앙이다. 빛의 종교에서 개는 신의 사자이거나 신 그 자체, 혹은 지상의 왕을 상징한다. 하늘에 있는 신이므로 개에게는 날개가 있다. 날개 달린 개는 곧 신이다. 날개 달린 신성한 개를 믿은 지역을 보자. 

중앙아시아 대륙으로 국한해서 봤을 때 고대 중국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포함된다. 이 고대 빛의 종교는 고대 4대 문명권에서 각자 다른 신앙으로 발전했다. 중국 황하 문명을 제외하고 말이다. 

<개와 개고기로 보는 세계 5대 문명권>

패권을 장악한 기마 유목 왕조에게는 왕조를 상징하는 신성한 개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집트, 인더스,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지배층에게도 신성한 개가 있었다. 그 신성한 개가 티베트탄 마스티프에서 유래되는 마스티프 계열의 사자 개다.

신라 왕조에서 왕족만 키울 수 있던 삽살개는 단군과 함께 제단에 모셔진 신성한 개였다. 그 신성한 삽살개를 일본 만주군은 개 가죽 군복으로 만들어 멸종시켰다. 그런데도 현재 한국인은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산수도깨비 문양 벽돌, 백제, 6세기 추정>

또 삽살개가 단군과 함께 할 정도로 신성했다는 사실과 신라 왕족들만 키울 수 있었다는 사실도 모른다.  삽살개든 뭐든 한국에 사는 모든 개는 언제든 때려잡아 먹을 수 있는 식자재라고 보기 때문이다. 심한 비약이라고?

애지중지 키우던 내 개를 이웃이 납치해 때려죽여 먹어도 고작 벌금 몇 푼만 내면 되는 되는 것이 현재 한국 실정이다. 신성한 개를 둘러싼 고대 기마 유목 왕조와 한반도, 일본의 역학 관계는 당나라가 멸망 하면서 깨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신라 시조 김알지의 탄생 설화>


신라 성골 시대가 막을 내리고 진골 시대를 연 통일신라가 국풍(신라 문화)를 버리고 화풍(중국 문화)를 따르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한반도의 중국화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망한 왕조의 왕족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낙랑과 마찬가지로 한국 고대사 학계는 고구려, 신라, 백제 영토가 정확히 어디인지조차 속 시원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백제 금동대향로, 국립부여박물관, 520~534년, 국보>

홍산문명권에서 고도로 발달된 청동기 유물이 발견되면서 고조선을 비롯한 고대 한국 왕조 영토에 만주가 포함됐을 가능성이 제기 되었지만 국뽕이라고 비난받았다.

정작 국뽕 한 사발 마신 건 중화사상을 발전시킨 고대 중국인인데 말이다. 분명한 것은 통일신라 영토가 고구려, 백제, 신라 땅을 합친 것보다 훨씬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고구려 땅은 그대로 발해가 가져갔다. 그럼 백제 영토는?

 <7세 통일신라 이후 국제 관계와 개에 대한 개념

663년 백제가 멸망하고 그 지배층은 어디로 갔을까? 의자왕과 삼천궁녀처럼 전부 다 물에 퐁당했을까? 나라를 잃으면 왕이 목을 잘리는 것은 중국 농경민적인 관점이다. 

말 타고 배 타고 이동하는 것이 업인 유목민은 여차하면 튈 수 있다. 백제의 경우 중국 대륙과 요서 지방, 일본을 연결하는 국제 교역 커넥션을 가지고 있었다. 기존의 국제 교역로를 따라 배 타고 도망쳤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매 사냥하는 거란 혹은 몽골 족, 9~10세기>

전 왕조의 모든 왕족을 다 잡아 죽일 수는 없었다는 얘기다. 전 왕족을 전멸시킨 것은 조선이 유일하다. 튈 놈은 튀고 남을 놈은 남고 잡힐 놈은 잡히는 것이 유목 왕조의 특성이다. 

도망치는 전 왕조의 왕족은 언제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 백제, 통일신라, 발해가 멸망한 후에도 끊임없이 왕조 부흥 운동을 일으킬 수 있었다. 전 왕조 부흥 운동을 일으키지 않은 건 고려가 유일했다. 왜? 이성계가 다 죽였으니까. 


<날개 달린 개와 피닉스 신앙 지역>

자, 그럼 어디로 튀었나? 우리 역사학계는 멸망한 백제인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을 지배했다는 가설은 신나게 떠든다. 그런데 중국 대륙이나 요서 지방으로 갔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또 입을 다문다. 

중국으로 튀어서 거기를 휘젖고 다녔을 가능성 자체가 국뽕이라는 것이다. 왜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중국만 나오면 국뽕이라는 이름으로 입을 틀어막는지 모르겠다. (중국 뽕을 말아 드셨나?)

<백제의 산수봉황무늬 벽돌, 6세기 추정>

백제 지배층이 중국 북부나 만주 지역으로 갔다면 그들은 그곳에서 기존 기마 유목 왕조와 합류하거나 또 다른 왕조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기존 왕조에 합류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결혼이다. 같은 기마 유목 왕족이니 적어도 결혼 상대는 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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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개고기 대신 로또 기원, 명나라 도교

종교

907년 당나라가 망하고 약 60년 동안 중국 대륙은 선비족 미친 고 씨 패밀리 가 날뛰던 남북조 시대보다 더 정신없었다.

북부와 남부로 나뉘어 북부에는 다섯 개 왕조가, 중국 남부에는 열 개 왕조가 들어서는 오대십국 시대가 된 것이다. 나라가 망했다 세워지는 혼란기였으니 중국 사람들은 다시 개고기를 먹었을까? 

<정원에서 노는 어미개와 강아지, 명, 15세기>

스위스 산간벽지 사람들처럼 정말 굶주린 사람들은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의 정서는 이미 몇 백 년 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당 왕조와 함께 경교와 마니교가 망했어도 아직 불교와 도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대십국 시대부터 청 왕조가 망하는 순간까지 중국 도교에서는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부자가 된다고 믿었다.

<오대십국 시대의 신선 유해섬, 청, 18~19세기>

개고기를 먹으면 죽어서 벌을 받는다고도 믿었다. 중국 도교 트렌드가 완전히 변해버린 것이다. 오대십국 시대 승상 유해섬은 벼슬을 때려 치고 수련을 해서 신선이 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도 그는 선계로 올라가지 않고 지상에 남아 백성을 구제했다. 생긴 게 두꺼비 같이 생겼는지 두꺼비 신선으로 불리는 그는 재복의 신이었다.

<도교 팔선 한상자가 피리 부는 모습, 명, 16세기>

가난한 백성들에게 아무리 퍼 줘도 마르지 않는 엽전 꾸러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0세기 이후 중국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으면 유해섬이 모셔진 도교 사당에 가서 빌었다.

유해섬을 모신 도교 사당은 엽전을 벌었다. 풍류를 즐기며 살고 싶으면 음악의 신이자 피리의 신인 한상자에게 빌었다. 마치 그리스 신화 속 신들처럼 재복, 건강, 벼슬, 출산 등등 분야 별로 주요 신선들이 있었다.

<도교 팔신선나전칠기 쟁반, 명, 16세기>

천상의 제일 신은 옥황상제였다. 지옥의 신은  염라대왕이었다. 14세기 원나라에서 그린 시왕도(염라대왕 그림)를 보면 살아 생전 잡아먹은 짐승들이 염라대왕 앞에서 복수의 증언을 하는 장면이 있다.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기 전에 신선이 되어 하늘(신선 세계)로 올라가고 싶은 사람은 개고기는 먹으면 안 되었다. 신선이 되려면 술, 성 생활, 육식 모두 삼가야 했다.

<시왕도, 원, 14세기, 일본나라박물관>

 

음식을 먹지 않고 몸 안의 기로 사는 방법이 최상의 상태라고 믿었는데 개고기를 먹으면 기가 상해 그간 해 온 힘든 수련을 망친다고 절대 먹지 않았다.

참선을 중시한 중국 불교에서 채식을 강조하며 자극적인 맛이 나는 음식을 금지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개와 함께 오리, 잉어, 뱀 등도 절대 먹으면 안 됐다.


이 중 개고기는 신선 수련을 하는 도사 뿐 아니라 일반 백성도 절대 먹으면 안 됐다. 개고기를 먹으면 어떤 벌을 받게 되는지 벌점까지 정해져 있었다.

 

단순히 수련을 위해 먹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라 죽어서 벌을 받기 때문에 먹으면 안 된다고 한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도교 생명의 나무를 심는 신선세계의 일꾼들,  청, 17세기>

조로아스터교에서는 개를 죽이거나 먹으면 죽어서 벌을 받는다고 믿는다. 17세기 중국 명나라 시대 발간된 도교의 목판화를 보자. 신선 세계에 사는 신선들과 하늘을 나는 선녀가 있다.

가운데 일꾼들이 심는 나무는 생명의 나무다. 개 머리를 한 새를 믿는 빛의 종교에서는 예배를 볼 때 생명의 나무에게 빈다. 빛의 종교 ‘개머리를 한 새’가 말하는 종교가 중국 도교의 시작이라고 했다.

<마니교 예배 모습 중 광명왕국으로 가는 생명의 나무 8~9세기 이전 추정>

결국 돌고 돌아 제 자리로 온 것을 알 수 있다. 빛의 세계인 신선 세계도 까막눈인 일반 백성들이 알아듣기 쉽게 보다 쉽고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그려졌다.

신선세계에는 어떤 신들이 어떤 일을 하며 사는지, 신선들이 먹는 복숭아는 어떤 맛인지, 선녀가 얼마나 예쁜지 하는 내용이 적힌 것이 도교의 권선서였다.

<선녀를 태운 뱃사공 옥 조각, 청, 18세기>


어느 마을에 사는 아무개가 개를 잡아먹었는데 벌을 받아 비참하게 죽었다, 아무개는 잉어가 눈물을 흘리자 다시 놓아 줬는데 알고 보니 용왕님 아들이어서 떼돈을 벌었다, 뭐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권서서를 보면 마치 이야기책을 보는 거 같기도 하고 무협 소설을 보는 거 같기도 하다. 실제 무협 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전진교가 도교 교단인 걸 보면 중국 무협지는 도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사자개에 올라탄 서왕모, 명>


기연을 만나 내공을 얻고 수련을 해 육갑자의 공력이 생기다는 둥 날개 짓 한번으로 천리를 가는 봉황을 타고 하늘을 난다는 등의 도교적 요소가 잔뜩 들어있다. 

당·송을 지나 명나라가 되었어도 개고기는 먹지 않는 것이 중국 도교의 상식이었다. 최고 여신인 서왕모는 사자개 등에 올라탄 모습으로 그려졌다. 사자 개는 유목 왕조에서 옥새와도 같이 귀하게 여기던 티베트탄 마스티프다.

<재물의 신 조공명, 명, 1482년>

정확히 이 시기 중국 도교가 조선에 전해졌다. 명나라 조정에서 조선에 권선서 500권을 선물한 것이다. 개 새 종교를 돌고 돌아 받아들인 중국 도교가 조선에 수출된 셈이다.


개 새 종교를 직접 받아들인 고구려는 오랑캐라 하여 역사에서 지워버린 조선은 스스로 중국의 교화를 받아 짐승(오랑캐)에서 벗어나 인간 꼴을 갖췄다며 자학했다. 중국 도교를 따르는 모습은 더 기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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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아르미안의 네 딸들 속 '개 머리 새'

종교

여불위가 진시황 아버지라면 진시황도 흉노족일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문란한 성생활으로 악명 높은 진시황 엄마는 억울하다. 

왕성한 성생활을 통해 자손을 많이 남기는 것은 기마유목민의 미덕이었다. 그래서인지 진시황 시대 유물을 보면 티베트탄 마스티프 석상이 있다.

 <진 왕조 마스티프 석상>

사자개는 유목 왕조에게는 마치 옥새와도 같다 했다. 이런 개 석상이 중국 진왕조 유적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생뚱맞다.

 
진 왕조가 받은 석상이거나 과거 초나라 영토 안에 사자 개 석상을 가진 유목 왕족이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 어느 쪽이든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하자마자 만리장성을 쌓아 흉노를 열 받게 했다.

 <만리장성>

흉노를 막기 위해 쌓은 만리장성이 흉노의 침입을 더 초래했다. 그 전까지는 겨울이 되어 천랑성(늑대의별 혹은 개의 별)이 뜨면 풀이 얼어 죽어 양 떼가 굶주린 흉노족이 남쪽으로 이동했다.

양을 몰고 이동하다 보니 거기가 중원이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중원을 노리고 양떼를 몰고 내려왔는지 모르지만 흉노는 계절에 따라 초지를 이동하듯 중국을 침입했다.

 

 <청동기 개 머리 새  추정 장식, 한,  기원전 206~서기 220년>

그런데 어느 날 진시황이 장성을 쌓아 길을 딱 막아버린 것이다. 흉노는 만리장성 건설 후 더 기를 쓰고 중국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농사를 짓지 못한 중국인은 개와 사람을 잡아먹었다. 빛의 종교 ‘개 새’와 신성한 개에 대해 백날 떠들어 봐야 중국인들에게 전혀 먹히지 않은 이유다.
  

<청동기 도끼에 새겨진 개, 세베로오세티아 공화국, 기원전 11세기~7세기>

중국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달랐다. 빛의 종교에서 ‘개머리를 한 새’ 는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신이나 신의 대리인, 혹은 왕을 상징한다. 당연히 영원불멸한 존재다.

‘개 새’ 양식이 나타난 지역은 조로아스터교를 믿었거나 영향을 받았다는 의미다. 그 중 페르시아와 아라비아 지역에서는 불새라는 개념으로 토착화된다.

<날개 달린 남자와 불새가 새겨진 점토 문양, 아케메니아 페르시아 추정, 영국박물관>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라는 순정 만화를 보면 페르시아 제국에서는 영원불멸의 신인 불새를 믿는다. 실제 페르시아 바빌론에서 발견된 점토를 보면 개 새와 피닉스가 만난다.

고대 페르시아와 아라비아 지역에서 믿은 불새는 몇 백 년 혹은 몇 천 년에 한 번씩 인간들 앞에 나타났다가 불꽃 속으로 사라졌다.

 

죽었다 부활하니 영원불멸한 신이다. 조로아스터교의 ‘개 머리를 한 새’는 중앙아시아의 북방기마 유목민에게도 아주 중요한 신이었다.

흑해 연안은 중앙아시아 북방 기마 유목민에게 매우 중요한 장소다. 늑대 머리를 한 인간을 그린 암석화도 이 지역에서 출토되었다.

<기원전 11세기 개 문양 도끼 출토 지역과 조로아스터 출생 지역>

아마도 이 곳에서 기마 유목민의 모든 역사가 시작된 것 같다. 11세기 흑해 연안에서 출토된 청동기 유물에는 개가 새겨져 있다. 날개만 없다 뿐이지 개 머리 새와 같은 문양이다. 

개 머리를 한 새를 믿는 조로아스터교와 몽골의 전통 종교는 같았다. 같은 신을 믿었다. 조로아스터교의 최고 신인 아후라 마즈다(개 새)는 몽골의 최고 신인 호르마스트 텡게르다.

<불새가 그려진 직물 일부, 위그르 지역, 8~9세기>

조로아스터는 몽골의 서쪽 지역에서 태어났다. 선비족, 고구려, 돌궐, 위그르 등이 '개 새'(주작)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이유다.

한 집안 신이었다가 갈라져 저 쪽으로 가더니 세련된 ‘개 새’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돌궐과 위그르에서는 ‘개 새’를 왕의 깃발로 사용했다. 그게 늑대 머리 깃발이다.

<불새와 함께 하는 부처 입상, 북위, 471년>

왜 뜬금없이 늑대 머리를 깃발로 사용했을까? 깃발이 휘날리는 모습이 마치 날개 달린 개(늑대)같다. 투르크의 늑대 머리 깃발은 현재 터키로 이어지고 있다.

스키타이, 흉노, 돌궐, 위그르, 몽골 등이 기록을 남기지 않은데 비해 소아시아와 이란으로 진출한 기마 유목민은 조로아스터교와 ‘개 새’라는 형태로 만들어 유물을 남긴 것이다.

<개 머리 성인 크리스토퍼, 19세기>

로마 제국 시대 시리아에서 예수를 구해준 성 크리스터퍼가 왜 개 머리를 하고 있는지 이제 이해가 된다. 소아시아 지역 최고 토착 신인 ‘개 새’가 아기 예수를 구해줬다고 나름 풀어서 설명한 것이다.

‘개 새’로 표현되는 치열한 권력 투쟁도 시리아 바로 앞 바다에 있는 키푸로스 섬의 역사를 봐도 알 수 있다. 그리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태어난 키푸로스는 현재 터키계와 그리스 계로 분단된 상태다.

<마스티프와 황소 청동기 조각, 키푸로스, 기원전 1340~1200년>

현대도 이렇게 피터지는데 고대에는 더했을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지중해 교역의 중심지인 만큼 키푸로스를 차지하려는 세력들이 많았다.

히타이트, 앗시리아, 이집트, 그리스, 로마 등 지중해 패권을 차지한 국가는 반드시 키푸로스를 차지했다. 마치 중앙아시아 비단길에 위치한 호탄과 쿠차 왕국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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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신라가 일본에 개고기를 수출했다고?

한국 속 유목사

2001 개고기 불간섭 선언 이후 한겨레, 오마이뉴스, 중앙일보, MBC 언론이 하나가 되어 주장한 것처럼 우리 조상이 농경민이라면 신라 토우 인형에게는 고대 애니미즘적 의미밖에 부여할 없다


다복을 기원하는 고대 토속 신앙의 상징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신라가 유목 왕조였다면 실제 신라의 문화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행위는 신성한 혈통을 계승하기 위한 신성한 의식이었다. 유목민의 도덕은 농경민과 달랐다


<지난 천 년 간 가장 위대한 인물로 뽑힌 칭기즈칸>


유목민은 일상이 전쟁이었다. 약탈혼도 흔했다. 태어난 아이를 두고 애가 맞아?”라고 따지는 불가능했다. 칭기즈칸 아들 이름은 주치다. 손님이라는 뜻이다. 칭기즈칸 부인이 납치당한 기간에 생긴 아이였다. 


조선 시대처럼 정절을 잃었다고 여자를 죽이고 열녀문을 세워댔다가는 가문이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귀한 늑대 피를 이어받은 초원의 왕족이라면 더욱 그랬다그래서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따지기 전에 누가 애를 낳았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수렵도 속 고구려 기마 무사와 개>


부족이 있으면 반드시 왕비 부족이 있는 이유다. 농경민족적 관점에서 보면 용납할 없겠지만 신라는 유목 왕조였다. 신라 아니라 고구려, 백제  지배층은 유목 민족이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왕조가 들어서기  땅에 살았던 원주민은 반농반유목민이거나 농경민이었을 것이다. 신석기 한반도 유적에서 뼈와 돼지 뼈가 발견된것으로 보아  한반도 사람들은 중국 한족처럼 개를 키워 잡아먹을 있다


<경기도 출토 돌도끼, 신석기 시대,국립중앙박물관>


그러나 청동기와 철기 시대가 되면서 북방에서 쓸고 내려온 사람들, 즉 고구려, 백제, 신라의 지배층은 중앙아시아의 기마 유목민이었다. 스키타이 이래 모든 기마 유목 국가에서 지배층은 말을 타고 전쟁을 하며 노예 계층은 농사를 지었다


돌로 농기구로 농사를 짓던 사람들 눈에는 청동기 무기를 지닌 기마 무사가 전쟁의 신으로 보였을 것이다. 압도적인 군사적 열세에 신석기 농경민은 피지배계층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청동 도끼. 흉노, 기원전 13~10세기>


흉노, 고구려에도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존재했다노예층이었다. 지배층은 말타는 무사였다. 말과 개는 세트다. 권력을 동원해야 지을 수 있는 고구려 고분에는 기마 무사와 함께 하는 개가 그려져 있다


 개가 저승가서 먹을 개고기라는 헛소리가 마치 정설처럼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한나라 한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키자 고구려가 건국되었다. 고구려 군대 이름은 ‘다물’이다. 옛 땅인 고조선을 찾는다는 뜻이다. 


고구려의 원수인 한무제 눈에는 고구려 무덤 속 개가 도시락처럼 보였겠지만 고구려 고분 주인은 기마 유목민이었다. 들은 반려견이 저승에서 자신들을 지켜주는 보호자라고 여겼다. 


기원전 1세기 경상남도 늑도에서 인간과 나란히 묻힌 무덤이 발견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늑도는 고대 무역항이었다유목민은 육로든 해로든 무역을 한다


<늑도에서 발견된 개 무덤 속  뼈, 한국일보 2016.07.27>


중앙아시아 초원에서는 말을 타고 해상에서는 배를 탄다. 신라의 해상왕 장보고가 해상 무역로를 장악할 수 있던 이유다. 청동기 시대 이후 지배층이 바뀌었고 고구려, 백제, 신라는 모두 개숭(배하는)파였다. 


늑대의 피를 받고 신성한 개를 키우는 지배자 앞에서 전처럼 개를 잡아먹을  있을까앞서 신라 왕실은 성골 시대까지 모계 사회였다가 성골 시대가 끝나면서 부계 사회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신라의 유목 전통이 사라지고 중국화가 시작된 것이다


<개고기를 식량과 약으로 먹은 한나라 무제>


신라 왕조는 거의 동안 유지되었다고려까지 따지면 거의 오백년 세월 동안 지배층인 유목 왕조가 지킨  전통을 따랐다. 기마 유목민에게 개는 반려견일 뿐 아니라 죽음을 안내하는 영물이다. 절대 먹어서는 된다


개고기 금기는 동안 우리 민족의 전통으로 전해졌다. 천 세월이다로마 기독교를 제외하고 서양문화를 없듯이 알타이 샤먼을 제외하고 한국문화를 논할 없다. 적어도 신라 천 년 동안 개고기는 먹을 수 없었다. 


<이승만 시대 존재한 개고기 금지법>


역사적 사실이 이런데도 우리 학계와 언론은 마치 뇌수술을 당한 사람처럼 신라에서 개고기를 먹었다는 말만 반복한다. 신라가 일본과 당에 개를 수출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 주장의 근거다. 


개는 먹는 외에 다른 용도가 없기 때문에 개를 배에 태워 보낸 신선한 개고기를 배달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해가 되는가? 단지 개가 배를 탔기  때문에 배의 종착지에서는 개고기를 먹었다는 논리다. 하도 어이가 없어 신라, , 일본, 대표를 모아놓고 삼자 대면을 해야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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