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52. 개고기 먹인 조선, 마녀 사냥한 유럽

AnDant 2019. 3. 14. 12:00

조선 지배층은 오랑캐 청나라의 신하 나라가 것이 수치라며 자살을 한다는 난리를 쳤다그러나 청나라 사신이 오면 왕이 버선발로 달려가 맞은 것이 조선의 현실이었다

이런 표리부동 짓을 이유는 하나다체제 유지공자의 중국을 이어 받았다며 고려 이전의 역사를 지워버린 조선은 중국이 없다면 존재 의미가 없었다 

<청 사신을 맞이하는 조선 왕, 18세기l>

그러니 왕가끼리 통혼을 하자는 손을 내밀며 다가오는 청과 거리를 두며 명나라 황제 제사라도 몰래 지내야 했다. 잘못했다가는 애써 지워버린 고려 이전의 한민족의 역사가 되살아날 판이었다

이상은 살겠다, 반항하는 백성들을 찍어 누르는 수단으로도 소중화주의는 쓸만했다명나라까지 망했으니 이제 순수한 중국은 조선 하나 남았다는 것이 송시열이 주장한 소중화주의다

<고종이 즉위한 1863년의 조선 양반들>

소중화주의로 명나라는 중국, 조선은 작은 중국이라는 헛소리를 하며 전보다 강한 일당 독재를 했다독재를 하려면 사상 검열부터 한다. 조선이 망할 때까지 권력을 놓지 않은 이들도 사상을 검열했다.  

만약 자라도 기준에서 벗어난 글을 읽거나 쓰거나 지니고 있으면 죽였다. 본인도 죽고 친척, 친구도 죽고 가족 전체가 노예가 되었다. '()' 가장한 '()' 독재였다. 

<조선의 포청, 1900년>

왕들과 왕족들은 줄줄이 독살 당했고 유일 당에 반대하는 양반들은 숙청되었다. 그러는 동안 조선 백성들은 드라마 킹덤처럼 사람 고기를 먹어야 만큼 끔찍한 기아에 시달렸다

설상가상 17세기 조선에는 여름에 서리가 내리고 우박이 떨어졌다. 이때를소빙하기라고 한다소빙하기가 태양의 활동에 문제가 생겨 지구 전체 온도가 내려간 기상이변 시기를 말한다

시기 세계적으로 정권 교체가 일어나는 아주 혼란스러웠다굶주린 피지배층이 들고 일어나 왕조가 뒤집히는 것이다. 쫓겨나고 싶지 않은 (지배층)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조선처럼 독재를 하면 된다. 또는 민중의 분노의 방향을 바꾸면유럽의 마녀 사냥처럼 말이다. 흔히들 마녀 사냥이 중세 시대에만 자행된 아는데 그렇지 않다

<마녀 재판과 개, 1848년>

오히려 르네상스니 인본주의니 하던 16세기 말∼17세기에 가장 심했다마녀사냥은 분노한 민심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정치 행위였다주로 약한 여자(과부, 노처녀, 미녀) 고양이가 대상이었다

 

조선은 어땠을까? 개를 죽이라고 선동했다자칭 중국 조선 총독부인 조선 지배층은 굶주리고 분노한 백성들에게 약과 식량 삼아 개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했다

<마녀의 화형식, 1632년>

시베리아-알타이 샤먼을 믿어 동네마다 마을을 지켜주는 장승을 믿은 우리 조상들에게 말이다. 알타이 샤먼을 믿은 문화권에서는 개를 숭배한다. 개 숭배 사상이 날개달린 개를 신으로 믿는 신앙으로 발전했다.  

<개 머리를 한 새를 새긴 은제 접시, 인도, 7~8세기>

이 신앙은 다시 고대 종교로 이어졌다. 한민족은 조선 이전까지 신성한 개 신앙을 믿었다. 알타이 산 개 숭배 신앙의 영향으로 한국 무교에서는 절대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기독교 문화를 빼놓고 서양사를 논할 수 없듯, 무교를 빼놓고 한국 역사를 논할 수 없다. 무교는 한국 문화, 역사, 전통의 근간이었다.  조선 시대 마을마다 장승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조선 백성들이 보편적으로  장승의 힘을 믿었다는 소리다. 

 

<주술 인형, 조선, 20세기 초반>

장승의 힘을 믿는 한, 개고기는 먹을 수 었없다. 개고기를 먹으면 신이 화가 나 가버리거나 벌을 내린다는 것이 한국 무교의 기본 믿음이었다. 조선시대 저주 인형은 장희빈만 만든 게 아니었다.

아주 흔한 복수의 수단인 지푸라기 저주 인형을 만든 사람도 개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신이 열받아 저주 빨이 떨어질 수 있었다. 1900년까지도 조선 백성은 병에 걸리면 민간 처방인 주술을 했다.

<조선 시대의 민간요법, 1910년 이전>

이런 치료 용 주술을 하는 사람도 개고기를 먹으면 안 됐다. 신이 분노해 약빨이 안 받을 수 있었다. 산신은 우리 조상들이 믿은 대표적인 토속신 중 하나다.

개고기를 먹으면 산신제에 참석할 수 없었다. 산신제는 물론 장례, 제사, 돌잔치, 결혼식 등등 모든 행사에 가지 못했다. 산에 올라가거나 배를 타거나 하는 모든 위험을 동반한 일을 할 때 개고기는 먹으면 안 됐다.

<조선의 산신도, 1900~1925년>

개고기를 먹으면 신이 분노한다는 강력한 개고기 금기를 믿은 백성들에게 중국 전통인 개고기가 우리 전통이니 먹으라고 강요해야할 만큼 17세기 조선 상황은 끔찍했다. 

임진왜란 번에 조선 농지의 1/3 사라졌다얼마 받은 청나라가 쳐들어와 병자호란이 터졌고 이번에는 소빙하기가 닥친 것이다

<볏짚을 진 소와 농부, 조선, 1900년>

 

1699 통계를 보면 전국적으로  백 명이 굶었고 140여만 명이 굶어 죽었다1910 조선 말기 인구가 1300 정도라고 한다. 정말 많이 잡아 2천만 명이라 해도 10~14명에  명이 굶어 죽은 것이다

왕은 소를 잡아 먹어도 좋다는 특별 조칙을 내렸지만 이미 잡아먹을 있는 동물은 잡아 먹은 후였다개와 인육을 포함해서 말이다전쟁, 기아 다음 순서는 전염병이다

<조선의 고위 관리, 1900년>

전염병으로 한 번에 20만 명, 50만 명  죽는 해도 있었다. 17세기 조선은 그대로 생지옥이었다 상황에서 조선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송시열은 했을까아무 것도 안 했다. 

적한 현안을 처리해 함께 백성을 구제하자는 효종의 청을 번번이 거절했다. 그러면서 지들은 숯불에 소고기를 구워 먹으며 동안 개를 먹는다는 개념조차 없던 조선 백성들에게 개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