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과 대만 등 아시아의 경우 삼합회와 개고기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세력이 강할 때는 개고기식용 문화가 발달했다가 삼합회가 세력이 약해지는 시기에 맞춰 개고기가 금지되는 것이다.
홍콩을 보자. 홍콩은 1950년대 초기부터 삼합회와 함께 발전했다. 삼합회의 각 조직이 아예 홍콩 구역을 나누어 통치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다. 그러다 1970년대 후반 대대적인 홍콩 정부의(영국) 단속으로 활동이 위축되었다.
<경찰과 삼합회 소속 스파이들의 액션 영화 무간도>
영화 무간도는 경찰과 삼합회가 각자 파견한 스파이들의 싸움을 그렸다. 70년대 이후 홍콩 사정이 정확히 그랬다. 삼합회인지 경찰인지 검찰인지 소속이 헷갈렸다.
검찰과 경찰의 3분의 1이 삼합회 조직원이거나 끄나풀이었다고 한다. 하나 둘 정체가 까발려지자 홍콩 삼합회는 아예 사업을 합법화하려 했다.
<아편전쟁 당시 아편장사들이 챙겼을 청나라 은괴>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음지로 숨기에는 조직 자금이 천문학적 규모였을 것이다. 아편전쟁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마늘밭에 묻어 둔 돈은 청나라 은괴일 수도 있었다. 삼합회가 택한 사업은 영화 사업이었다.
대략 이 시기부터 삼합회는 물리적 조직이 아니라 삼합회 자금을 의미한다. 삼합회 자금이 투자한 후 지배하는 식이다. 쩐주(원래 돈 주인)을 알기 어려운 투자 회사와 달리 홍콩 영화의 경우 깡패가 돈을 댄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홍콩 영화의 상징, 영웅본색>
한 때 홍콩 영화 붐을 일으키며 삼합회는 잘 나가나 싶었지만 결국 삼합회는 홍콩 정부의 끈질긴 단속과 홍콩 내부의 반발로 인해 홍콩을 떠나야 했다. 그들이(삼합회 자금) 이사간 곳은 옛 동료가 사는 대만이었다.
홍콩의 경우 개고기 집이 많았다. 홍콩의 개고기 시장은 정부와 국민이 따로 국밥처럼 놀았다. 홍콩인(중국인)은 개고기는 전통이라며 먹고 홍콩 정부(영국)는 개고기를 금지하지는 않았지만 못 마땅해했다.
<삼합회의 이동과 개고기 금지 순서>
그렇게 이중적으로 발달하던 홍콩 개고기 시장은 하필 삼합회가 쇠퇴한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완전히 법으로 금지되었다. 당시 홍콩에서는 전격적인 개고기 금지 법안 통과를 두고 반발이 아주 심했다.
연일 TV시사 토론에서는 개고기 금지법안 찬반 의견을 가진 인사가 나와 싸웠다. 전통을 중시하는 홍콩인들은 심하게 반발했지만 홍콩 정부(영국)는 전격적으로 개고기 금지 법안을 강행했다.
그렇다면 홍콩 삼합회가 이사간 대만은 어떨까? 대만은 섬이다. 하와이나 태평양 여러 섬들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고립된 섬에서는 전통적으로 개를 식량 삼아 잡아먹는다.
<사냥하는 남자와 개를 조각한 청마노, 시프러스, 기원전 500~480년>
고기와 식량이 부족한 고대 중국인이 개고기를 먹은 이유와 같은 이유다. 인간은 배가 고프면 개든 사람이든 잡아먹는다. 고대 시프러스에게 개를 안 잡아먹은 건 교역을 해 풍요로운 섬이었기 때문이다.
태평양 섬에 사는 식인종이 개를 잡아먹는 건 당연하다. 배고픈 그들은 사람 고기도 먹고 개고기도 먹고 개 이빨로 신의 얼굴도 장식했다.
<개 이빨을 박아넣은 하와이의 전통신, 18세기>
하와이와 달리 대만에서는 개를 잡아먹은 흔적이 없다. 산과 들이 있을 정도로 큰 섬이어서 그런지 그들은 사냥을 했다. 토사구팽(사냥이 끝나면 개를 잡아먹는다)은 가끔 사냥을 하는 중국인이나 쓰는 말이다.
사냥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사냥개를 잡아먹지 않는다. 사냥개가 똘똘할수록 먹을 게 늘어나니 사냥개를 보호한다. 남겨진 유물로 추정해보면 대만 원주민은 개와 사냥을 하거나 개와 함께 다정한 시간을 보냈다.
<사냥하는 나이지리아 사냥와 개>
개 먹는 개념이 없던 대만을 국민당과 삼합회가 점령해 고대 중국의 개고기 식용 관습을 이식한 것이다. 대만의 새로운 지배자인 중국인들은 개고기가 전통이라고 떠들며 신나게 먹었다.
대만 삼합회도 신나게 잘 나갔다. 1949년 대만에 정착한 삼합회는 초대 정부의 요직을 삼합회 조직원들이 차지했을 정도로 대만 정부는 밀접했다.
<대만 원주민의 사슴사냥, 1750년>
홍콩처럼 경찰과 검찰을 매수할 필요 없이 대만 계 삼합회는 우아하게 정부를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삼합회 두목을 클럽 버닝썬에 데리고 다닐 정도로 파워가 쎈 린 사모는 대만에서 함부로 이름도 부르지 못할 존재라고 한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돈이 너무 많아 돈 욕심이 없다던 린사모 만큼이나 대만에서 잘 나가던 삼합회는 다시 짐을 싸야 했다. 국민당 정부가 독재를 하던 대만에 1998년 최초의 민주 선거가 치뤄지면서 국민당 독재도 끝난 것이다.
50년 넘게 이어지던 호시절은 가고 삼합회에 대한 대만 정부의 제재가 시작된 것이다. 홍콩과 마찬가지로 삼합회에 대한 제제와 함께 강력한 동물 보호법도 제정되었다.
<남편이 대만 총리급이라는 린사모, 중앙일보, 2019년 3월 24일>
개고기금지법을 실행할 당시 대만에서도 강력한 국민적 반발이 있었다. 하지만 대만의 민주 정부는 대만의 동물보호단체가 충분히 자랑스러워 할만큼 의연하게 개고기 금지법을 밀어붙였다.
현재 대만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업주뿐 아니라 먹는 소비자까지 체포할 수 있도록 동물보호법을 더욱 강화하려 하고 있다. 홍콩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삼합회 세력이 약해지자 대만에서도 개고기가 금지된 것이다.
<대만 삼합회 죽련방이 2018년 507만 명분 마약 반입 기사>
자, 입지가 약해진 삼합회(삼합회 자금)는 어디로 갔을까? 중국 본토로 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과 관련 있다.
삼합회의 자금 규모가 워낙 커서 어지간한 GDP를 가진 나라가 아니고서는 지하로 숨어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다. 삼합회의 자금을 굴려도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나라가 잘 살아야 삼합회가 이사를 갈 수 있는 것이다.
<중국 흑사회 두목 한국 서울에서 검거, 2013년>
당시 중국은 공산주의 정부 하에 자본주의 경제 정책을 추진하며 전 세계로부터 투자를 받고 있었다. 한국도 물론 노태우 정부 당시 중국과 수교했다. 중국으로 흘러 들어간 막대한 국제 투자금 속에 삼합회 자금도 끼어 들어갔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자금은 조심해서 받아야 한다. 멀쩡한 투자금이 알고보면 삼합회 자금일 수 있다. 린사모는 소리소문없이 한국에서 300억 대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금을 굴리고 있었다.
<중국 흑사회와 조선족 연변 흑사파의 관계, 시사저널, 2008년>
중국 본토로 진출한 삼합회는 흑사회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듯 하다. 삼합회와 중국 흑사뢰를 분리해서 보기도 하고 같은 조직으로 보기도 한다. 중국어로 흑사회는 범죄 조직, 즉 삼합회를 의미한다.
중국 흑사회의 경우 그 아래 조직만 만 개 이상이라고 한다. 그 만 개의 조직 중 하나가 조선족 조직폭력배인 연변 흑사회일 수 있다. 그 연변 흑사회가 한국의 개고기 시장과 관련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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