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조선 시대 저주받은 음식이 복날 전통이라고?! 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98. 조선 시대 저주받은 음식이 복날 전통이라고?!

개고기 문제

신박한 개고기 업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2003년 조선족이 한국에 청산가리 개고기를 수출한 이유는 개고기가 불법이기 때문이었다. 넘치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따라가질 못하니 어쩔 수 없이 개고기를 밀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공급이 넘친 2012년 이후에도 여전히 중국산 개고기를 밀수입했는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개고기 업자 말에 의하면 한국에서 유통되는 중국산 개고기가 30%가 넘는다


<유통되는 개고기 중 30%가 밀수품, 오마이뉴스, 2012년 7월 27일>

2016년 모 동물보호단체의 발표에 의하면 한국에는 6000만 마리가 넘는 식용견이 가축이라는 명목으로 사육되고 있었다여기에 강아지 농장 개들까지 합치면 그 수는 7~8000만 마리가 될 수 있다

애견이라 불리는 개들은 팔리지 않고 재고가 되면 보신탕이 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진돗개마저 보신탕이 된다. 특히 순종 심사에서 탈락한 진돗개들은 도살되어 개고기가 된다.


<전통이라는 이유로 8천 만원 짜리 순종 진돗개를 잡아먹은 범죄가 2014년 세계 10대 뉴스에 선정됨, 노컷뉴스, 20041016>

이렇게 따지면 한국에는 개고기 수요가 넘친다. 전체 개고기 유통량의 30%나 따로 수입할 필요가 없다. 그냥 중국과 한국 사이의 해상 국경이 뻥 뚫렸고 마약, 금괴, 밀항자 등 불법을 저지르는 핑계로 개고기를 대는 게 아닌가 의심된다.

2003년은 아직 '농림부 개 가축 고시'가 통과되기 전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1만 마리 이상 키우는 개 농장 사업가가 나타나기 전이었다. 개고기 수요는 넘치는 데 공급이 딸리니 중국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다는 그들의 논리는 통했다.

<제주도를 통해 밀수되어 모란시장으로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는 트럭 속 개들, 오마이뉴스, 2012년 7월 27일 >


대다수 언론은 중국산 청산가리 개고기 수입에 대해 침묵했는데 인터넷 여론만은 개고기 합법화 논리를 시종 주장했다. 개고기가 불법이라 국가에서 관리를 안 하니 이 기회에 개고기 합법화해서 모든 과정을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거의 모든 언론과 지식인은 뭘 했느냐? 청산가리 개고기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대신 개고기는 한국 전통음식이라는 기존 주장을 더 가열차게 펼쳤다. 이미 2001년 '개고기 불간섭 선언'까지 나온 마당이었다. (https://yangsunne.tistory.com/25)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보신탕으로 도살되는 그레이트 피레니즈와 리트리버, 중앙일보, 2012년 10월 11일>

개고기가 우리민족의 전통이라는 주장을 보면 중국, 조선족, 북한, 한국(언론과 정치인, 지식인)이 얼마나 쿵짝이 잘 맞는지 알 수 있다그 대표적인 주장이 복날 보신탕이다. 

한국의 경우 복날 보신탕이 전통이라는 주장은 1997년 이후에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 복날 보신탕을 먹는 것은 고대 중국 한족의 전통으로 우리 민족과는 상관이 없다


<무덤 화상석 부엌 그림 중 개, 한, 2세기>

공자는 우리 조상이 아니다. 전직 고려인을 중국인으로 만들고자 한 것이 조선 왕조였다. 조선 왕조는 중국 명나라를 부모의 나라로 섬겼다


명나라가 망한 후는 순수한 중국 정신은 조선이 계승했다고 떠들었다송시열 등이 주장한 소중화주의다. 여기서 따져봐야 할 것은 과연 조선 백성들이 복날이면 신나게 개고기를 먹었냐는 것이다


<16~20개의 경매장을 거치는 번식장 강아지의 유통경로, 시사IN, 2006년 9월 2일>

신나게 너도 나도 즐겁게, 대대손손 먹었어야 전통이라 할 수 있다. 괴롭게 죽지 못해 먹었다면 전통이 아니다. 전족과 같은 타파해야 할 악습이다. 조선 왕조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완전히 분리되는 정책을 폈다

양반은 백성을 수탈하다 못해 노예상태로 만들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그 정도가 심해졌다. 조선 백성들의 생활수준은 지금의 북한 주민들과 다를 바 없었다


<혈통심사에서 탈락한 진도개는 마리 당 6만 원에 보신탕이 됨, MBC, 2007년 7월 12일>

똑같이 쇄국을 했고 똑같이 독재를 했다. 그리고 똑같이 백성들이 수 백 만 명씩 굶어죽었다. 너무 가난하고 미개한 상태라 약이라고는 신석기 시대 수준밖에 쓸 수 없었다. 그게 동의보감이다

북한과 조선족이 성경처럼 추앙하는 동의보감99%는 중국 신인 신농이 썼다는 신농을 그대로 베꼈다. 다시 나온다.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존재가 썼다는 신농이 쓴 본초거기에 개고기가 약이라고 나온다.

<드라마 허준, 1999~2000년>

그런데 조선 백성은 북한 주민들과 달리 무턱대고 개고기를 약으로 먹을 수 없었다. 아무리 상위 10% 양반이 중국은 조선이라고 주장해도 피지배층은 그대로 전직 고려 백성이었다. 고려인은 개를 사랑하고 추앙했다.  

주인놈이 아무리 개고기가 식량이고 약이라고 다그쳐도 노비조차 개고기를 선뜻 먹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개고기는 저주받은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불교와 무교는 조선 백성들 삶의 모든 것이었다

<제주도를 통해 밀수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도 '식용개 트럭' 속 그레니트 피레니즈,  오마이뉴스, 2012년 7월 27일>

유교라는 옷을 입은 조선 양반들의 속살도 실은 불교와 무교였다. 불교와 무교에서 개고기는 저주받은 음식이다. 조선 시대 개고기를 먹으면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다.

산신제, 마을제사에 참석할 수 없었다. 제사, 잔치 등 경조사에도 참석을 못했다. 아이가 태어난 집에도 갈 수 없었다. 계속 개고기를 먹었다가는 인간 관계 파탄 날 수 있었다. 


<2010년 제주도에는 55곳의 보신탕 집 운영, 제주의소리, 2010년 7월 9일>

뱃사람은 배를 타지 못했고 심마니는 산에 들어가지 못했다. 무당은 당연히 신을 모실 수 없었다지금도 무당은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런데 현재 제주도에서는 개고기 소비량이 폭증하고 있다. 제주도는 섬인데 어찌된 일일까? 

1911년 이후 중국인이 가는 곳에는 반드시 개고기 집이 있다. 제주도에는 많은 중국인이 무비자로 들어와 있다. 제주도가 중국화 되면서 개고기 집이 성업하고 있는 것이다. 개고기를 가장한 중국의 문화 침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