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138. 개 먹는 민주화 운동과 미국 교포 사회의 좌경화

AnDant 2019. 10. 19. 12:39

이상하게도 한국 민주화 운동 세력은 개고기에 호의적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개고기는 우리 전통이라고 주장한다. 그 결과를 우리는 지금 보고 있다. 김일성은 위인이라고 찬양하고 중공 건국 70주년 축하 행사를 당당히 여는 것이 현재 한국의 현실이다.   

또 그들은 기본적으로 반 제국주의를 주장한다. 반 제국주의란 일본과 미국, 서양 강대국에 반대하는 것이다. 모두 개고기를 반대하는 국가들이다. 따라서 독립운동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혹은 그 후손들은 개고기가 한국 전통이라고 믿는다.


<김정은 찬양한 대학생 단체가 미군철수를 외치며 미대사관저에 침입하고 있다, 조선일보, 2019년 10월 19일>


그래서인지 한국의 민주화 운동, 노동운동, 학생 운동, 종교 운동 등의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개고기 식용에 호의적이다. 조선족에 호의적이다. 조선족이 한국 독립운동사를 대표한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독립운동을 하는 건 좋다. 하지만 일제에게 독립을 하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분열되었다. 조선으로 돌아갈 것인가? 새로운 조선이 될 것인가새로운 조선은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개고기 안 먹으면 변절하기 쉽다는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지주 백기완, 초이스경제, 2014년>


새로운 조선이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따라야 한다는 쪽은 이승만 계열 독립운동단체였다. 중국식 공산주의가 되어야한다는 쪽이 중국 공산당 계열 독립운동단체였다 

중국식 공산주의 주도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한 곳이 중국 만주였다. 이들이 조선족 독립운동가들이다. 조선족 독립운동가들은 개고기를 전통이자 공산주의의 상징으로 여기며 열심히 먹었다. 조선족 독립운동가들은 조선이 곧 중국이라고 믿었다.


 <한국은 중국 일부라는 중화사상은 1921년 이후 중국 공산화 운동이 되었다>


1954년 이승만 정권에서 개고기를 금지한 이유는 개고기로 대변되는 한국인의 정체성과 역사 왜곡 문제를 정확히 인지했기 때문이다. 1921년 이후 중국식 독립운동가들이 개고기를 열심히 먹으며 개고기는 전통, 개고기는 전통이라고 노래를 부른 이유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을 중국인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중국 공산당이 되었기 때문에 한국도 한국 공산당이 되어야 한다. 북한은 중국 공산당의 의도에 충실히 따라 김일성 주도로 개고기를 민족 음식으로 받아들였지만 남한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까지 개고기를 금지했다.


<독재자의 탄압으로 80년대 보신탕을 못 먹어 서러웠다는 기사, 한겨레21, 2002년 7월>


공통적으로 이들은 강력한 반공정책을 펴며 한국 내 중국 세력 확장을 경계했다. 이에 반대한 세력들은? 음지에서 열심히 개고기를 먹었다. 민주화 운동, 노동 운동, 학생 운동, 천주교, 일부 개신교 세력이 개를 때려잡아 먹는 행위는 결국 중국 공산화 운동이었다.  

그리고 중국 공산화 운동은 현재 성공단계에 있다. 1980년대까지 전무하던 차이나 타운 숫자가 전국적으로 수 십 개에에 이른다. 미국, 캐나다의 차이나타운과 달리 한국 차이나타운에는 반드시 개고기 시장이 존재한다.


<대림동 차이나 타운 >


한국 차이나타운은 조선족이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족은 제사에도 개고기를 올리고 추석날에도 개고기를 먹는다. 조선족이 사는 곳에는 반드시 개고기 집이 있다. 


그러면 왜 이 꼴이 되었는가? 왜 한국은 개고기 천국, 조선족 천국이 됐는가? 미국 교포 사회가 원흉이다. '한국의 조선족 천국 = 개고기 천국'이고 그 뒤에는 미국 교포 사회의 좌경화가 있다. 한국의 공산화에는? 중국 공산당이 있다. 


<중국공산당이 개고기로 한민족의 역사를 지배하는 매커니즘 > 


종전 후 그 많던 공산주의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한국 땅 어디선가에서 장장 60년 넘게 살고 있었다. 우리 곁에서 우리 이웃으로 말이다. 뭘 하고 살았나? 사회 각계 각층에서 끊임없이 독재에 반대해 민주화 운동을 했다. 

1954년 이후 외국의 천주교 신부와 미국 개신교 목사가 각각 한국에 입국했다. 이들은 학생운동가와 노동운동가를 지도하며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가 되었다. 외국인 천주교 신부는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을 만들었고 개신교 목사는 한국 노동운동의 스승이 되었다. 


<개 식용은 중국 공산화 운동 한국전쟁 후 개고기 적화 과정>


그들의 제자들은? 개를 때려잡아 먹으며 민주화 운동을 했다. 장장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말이다. 서울대학교 출신 차종환은 박정희 독재 정부에 항거하다 해직된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몰몬교 신자인 그는 마침내 미국 한인 사회의 대표 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뭘 했나? 미국 동포 사회 대표 자격으로 청와대를 방문해 전두환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그가 한 요구는 '재외동포법 제정'이었다. 


<1921년부터 1980년 대까지 한국의 좌파 운동과 개고기 전통론>


그렇다. 바로 지금 조선족을 한국의 특권층으로 만들어 준 재외동포법은 차종환이 만들었다. 수 십년 미국 교민 사회의 숙원인 이중국적을 포기하면서까지 말이다. 차종환이 만든 제외동포법은 철저히 조선족을위한 법이었다. 

모양새로 보면 한국에 조선족을 풀어놓은 재외동포법을 미국 교민이 만든 셈이지만 실상을 따지고 보면 중국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은 전 한국 공산주의자가 중국인인 조선족을 한국에 집단 거주시키는 법안을 만든 것이다. 


<위조 여권 사용 및 불법을 저지른 조선족 추방에 항의해 7번째 무기한 단식을 한 서경석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2013년 5월 20일>


쿵짝쿵짝 뒤에서 말이다. 차종환은 전세계에 퍼져 사는 한국인의 특징이 '개고기'라고 했다. 중국공산당이 정의한 대로 한국인을 정의한 것이다. 자, 급한대로 재외동포법은 만들어졌다. 

이제 문제는 한국에 떼거지로 들어온 조선족이 어떻게 정착해서 밥을 벌어먹고 살 것인가였다. 정착을 하려면? 비자가 필요하다. 밥을 먹고 살려면? 돈이 필요하다. 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미국 교민사회가 나섰다. 누가? 서경석 목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