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명나라 빨던 이성계 역할, 조선족 중국인 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143. 명나라 빨던 이성계 역할, 조선족 중국인

조선

이성계가 고려와 원나라에는 천하의 역적 놈이었지만 명나라 입장에서는 반대였다. 고려 우왕의 뒤통수를 친 위화도 회군은 명나라에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위화도가 어디냐? 바로 압록강 한 가운데 섬이다

바로 강을 건너면 요동 땅이었고 만약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뒤통수를 치고 돌아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명나라는 아직 건국된 지 20년 밖에 되지 않는 신생국가였다


<이성계가 우왕의 뒤통수를 친 위화도>


원나라 농민 출신 주원장은 황제로 등극하자마자 무시무시한 독재 정치를 펴며 기존의 건국 공신들을 거의 모두 학살했다. 친구고 자식이고 없었다. 그냥 뭐 막 죽였다

고대 중국의 도교 책을 모은 『구선활인심법이라는 책을 출판해 조선의 이황이 무술주(개고기 술)를 한국에 퍼트리도록 하는 빌미를 준 주권이 주원장 아들 중 하나였다




<이미 사라진 고대 중국의 개고기 술을 소개한 주권의 『구선활인심법』(위)과 이를 표절해 조선에 퍼트린 이황(아래)>


열 일곱 번째 아들인가 했던 주권은 반란을 일으키다 실패해 신선 선() 자를 쓰는 주선이라는 이름을 쓰며 은거했으나 주권의 아들이 다시 반란을 일으켜 일가가 몰살당하고 말았다.

아들들까지 몰살시킬 정도로 주원장은 내부 청소를 아주 깨끗이 했다. 과도한 숙청은 언제나 장단점이 있다. 실력자들을 다 쳐냈으니 내부적으로는 반란을 일으킬 놈들이 없어져 안정될 수 있다


<이성계가 포기한 요동 박물관에는 청 왕조 시대의 중국 모습이 남아 있다, 고소소번화도, , 1759>


그러나 외부적으로는 외적을 막아낼 인재()군들이 사라지니 필연적으로 군사력이 약해진다.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뒤통수를 치던 1388년이 딱 그랬다. 이 때 만약 이성계가 우왕의 지시대로 요동을 쳤다면 명나라는 크게 흔들렸을 것이다

여기에 만약 혈연관계로 묶인 북원 황실과 고려 왕실이 연합해 명나라를 쳤다면 중국까지 지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뒤통수를 쳤고 덕분에 고려 왕실은 몰살되게 된다


<원 제국 이전 고려는 송나라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불교와 도교의 영햘을 받은 송나라에서는 개고기 먹는 문화가 사라진 상태였다>


명나라도 건재할 수 있었다. 위화도 회군을 하는 시점을 전후 해서 조선 건국까지 일련의 거사에 이성계 일파가 명나라 사주를 받았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드는 이유다. 이성계 집안은 순수 고려인이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 이성계가 여진족이라는 설도 있다.


나는 이성계 집안이 여진족을 가장한 중국 한족일 수도 있다고 본다. 이성계 집안은 고려 시대 요동 지역을 장악한 무인 집안이었다. 고려는 조선을 제외한 모든 한민족 왕조가 그랬듯 매우 개방적인 왕조였다.


<아랍과도 교역한 고려의 배가 새겨진  황비창천명형 동경,  고려, 918~1392년


실력만 있다면 외국인도 벼슬을 받아 고려인이 될 수 있었다. 이성계 집안이 실은 원나라를 증오하던 중국 한족 가문이 아니었나 싶을 만큼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지나치게 명나라를 물고 빨았다

명나라는 조선을 말 잘 든는 오랑캐라고 부르며 멸시하는데도 이성계는 조선도 이제야 명나라가 되었다며 좋아했다이성계가 중국 한족이 아니라면 미친 거다. 이 때부터 조선은 명 황제의 허락을 받아야 왕과 왕세자를 책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림을 구경하는 고려 상류층과 마당에서 뛰노는 고려의 개. 건축 양식과 복식이 송나라와 유사하다>


명나라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가 아니었다. 말 잘 듣는 오랑캐인 조선이 요동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것은 조선이 북원(몽골)과 연합을 영구히 포기한다는 의미였다. 북쪽 국경과 서쪽 국경이 안전하다면 중원도 안전할 수 있었다

원은 더 이상 요동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몽골 고원을 기점으로 발전했다 명나라의 북쪽 국경 걱정을 덜어준 조선은 정말이지 이상한 왕조였다. 조선은 명나라가 되기 위해 그때까지 존재한 한민족의 모든 것을 지웠다


<고려 시대까지 복날에는 팥죽을 먹었지만 조선과 조선족의 힘으로 복날에는 개고기를 먹는 것으로 왜곡되었다>


고려 대까지 존재한 모든 역사는 사라졌다. 조선인 스스로 조상들의 역사와 문화를 지운 것이다그 대표적인 예가 복날 개고기다. 고려 대까지만 해도 복날 팥죽을 먹으며 액막이를 했다

조선 건국 후부터 개고기는 한국 전통이라고 왜곡하더니 조선 후기 들어 본격적으로 복날에는 고대 중국 풍습인 개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세뇌했다안타깝게도 명나라를 도운 이성계와 같은 역할을 현재 조선족이 담당하고 있다이성계와 마찬가지로 조선족도 출신이 불분명하다.


<특별법을 제정해 조선족 동포 이민청을 신설해달라고 요구하는 100만 조선족 중국인뉴데일리, 2017년 5월 8일>


들이 중국 한족인지 여진족의 후예인지 한국의 독립운동가인지 사실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현행 법 상 조선족은 194910월 이전 중국으로 간 한국동포를 뜻한다. 한국 같은 경우는 1970년대까지 호적과 족보가 정확하지 않았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중공은 더 하다. 아무도 그들이 진짜 한국동포인지 증명할 수 없지만 그들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처럼 당당히 한국 땅에 들어와 새로운 한국을 건설하고 있다. 복날 개고기가 한국인의 전통이라는 거짓말을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