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불법이나 사실 상 합법이 된 개소주는 개고기를 푹 고아 만든다. 퇴계 이황이 발명했다고 하는데 사실 신농 씨가 원조이다. 신농 씨가 누구냐고? 이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분이 안되는 존재가 바로 신농 씨다. 질겅질겅 씹고 있는 건 약초다.
신농 씨가 입으로 약초를 씹어 사람을 치료한 기록이 중국 한의서인 『신농본초』, 혹은 『본초』이다. 중국과 조선에 존재한 모든 개고기 약효 역시 이 『본초』에서 나왔다. 북한 김일성과 김정일이 먹은 황구도 이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신석기 시대 신농씨 조언에 따라 만들었다.
<개고기 만병통치설의 원조인 신농 씨>
신농 씨가 산 중국 황하 문명권에서는 개고기를 약으로 사용했다. 물론 신석기 시대 개고기를 약으로 사용한 건 황화 문명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황하 문명을 제외한 모든 문명에서 개를 약으로 먹는 행위는 모두 신의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황하 문명권의 개는 수많은 식 재료 중 하나였다. 우리 역사와 문화는 이 황하 문명과 상관없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 및 북방유목 문화와 관련이 깊다. 수메르 유물에서 발견된 씨름하는 모습은 고구려 벽화에서 씨름하는 모습과 동일하다. 또 이 모습은 흉노인이 씨름하는 모습과 동일하다.
<씨름하는 모습. 수메르 청동기 향로>
길가메쉬 서사시는 우리 무교의 기원이라고 하는 바리 공주 이야기와 서사 구조가 같다. 이 밖에도 우리는 수메르-바빌로니아 인과 마찬가지로 신성한 개를 믿은 신앙이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중국 황하 문명의 충실한 계승자를 자처하고 있다.
저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신농 씨가 쓴『신농본초』에 의하면 발기부전인 남자는 수캐 페니스를 먹으면 즉시 효과를 본다고 한다. 비아그라가 필요 없다. 『신농본초』에 의하면 불임인 여자는 개고기를 먹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와 흉노인이 씨름하는 모습>
이런 식으로 개 피, 개 오줌, 개 침, 개 똥 등등 개의 모든 부위와 개의 분비물은 신농 씨 표 의약품이 되었다. 이런 개고기 약효는 중국과 조선을 넘나 들며 시대와 저자, 책 제목만 바뀌어 계속해서 출판되었다. 100권의 개고기 약효를 적은 책이 있어도 원 출처는 신농 씨다.
간을 먹으면 간이 건강해지고 췌장을 먹으면 췌장이 건강해 진다는 신석기 고대 신앙을 철썩 같이 믿어서인지 아직도 한국 한의사들은 라디오에 출연해 개고기는 만명통치약이니 먹으라고 떠든다. 한국 보신탕집에서 수캐 페니스는 단골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청 왕조. 씨름 참관하는 황제 건륭제. 18세기>
그러나 그 약효의 원 출처는 어느 신석기 중국인이 남긴 『신농본초』 이다. 『동의보감』에 나온 개고기 약효 역시 원조는 신농씨다. 『본초』를 99% 카피한 책이니 당연한 일이다. 조상도 모르고 역사도 모르고 일단 급하니 베끼고 본 것이다.
왜 급했는지는 조선 시대를 설명하면서 다시 언급하겠다. 우리 민족이 개고기를 식용이나 약으로 먹은 진짜 기록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개고기에 대한 모든 기록과 책을 살펴본 결과 안동 장 씨가 남긴 『음식디미방』만이 진짜 자신들이 먹은 체험 요리법이었다.
<개소주를 표절한 이황>
안동 장 씨 집안은 우리나라 개소주의 원조인 퇴계 이황과 관련된 가문이다. 당, 송 대 이후 중국 대륙에서 사라진 고대 개고기 약효를 명나라 왕자 주권이 찾아내 『활인심법』이란 제목으로 출판했다. 이 책을 천 원짜리 지폐에 실릴 정도로 존경 받는 이황이 훔쳤다.
그러므로 개소주 원조도 이황이 아니라 신농 씨다. 조선 시대 정약용 형제도 개고기에 대한 기록을 남기긴 했다. 정약용 가문은 천주교를 믿었다. 우리나라 천주교는 전 세계 천주교 중 유일하게 개고기를 인정하는 종교이다. 천주교에서 개고기는 순교의 음식이다.
<이황이 표지갈이 출판한 주권의 활인심법. 국립중앙도서관>
그런데 현대 중국 한의학에서는 개고기를 약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약과 장비가 발달한 지금은 개고기를 약으로 사용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오직, 한국 한의학에서만 아직도 개고기를 약으로 취급한다. 앞서 살펴봤듯이 대한한의사협회는 '개고기 불간섭 선언'에 참여했다.
<명 왕조 화가인 곽허가 그린 신농 씨. 1503년>
원조는 버린 고대 개고기 비법을 아류인 한국만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황하 문명 이후 개고기를 식량과 약으로 먹은 중국은 파사구 즉 페르시아 개가 역사에 등장하는 시기(북방유목왕조 지배기)부터 개고기식용이 사라진다.
개고기 기피 현상은 수행 중심 도교와 불교가 전해진 당, 송 대에 들어서 더 심해져 개고기 식용 행위가 강력하게 비난받게 된다. 대략 이 시기부터 중국 대륙에서 개고기를 먹는 사람은 가장 가난하고 비천한 계층으로 한정된다.
<송 왕조. 자유로이 활보하는 개. 청명상하도. 1120년>
몽골 족이 지배한 원 왕조 시대 출판된 한의서( 『본초』)에는 개고기 약효를 소개하면서 주석을 달았다. 집도 지키고 영리한 개를 왜 먹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명, 청 시대에도 이어졌다. 명나라 황자 주권이 고대 개소주 약효를 찾아내 책으로 남기긴 했지만 일반 중국인이 먹던 음식은 아니었다.
중국에서 개고기를 약으로 먹고 식량으로 먹은 시기는 춘추전국시대, 진 왕조, 한 왕조 시대 뿐이었다. 특히 청 왕조는 시조가 신라의 후손임을 자처하며 개가 생명의 은인이니 죽이지 말라고 했다. 청 왕조 타도를 외친 중국 공산당과 대만 국민당이 개를 대량 학살하며 개고기를 적극적으로 먹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청 왕조. 고소번화도 중 개. 1759년 >
그들에게 개는 타도해야 할 청 왕조의 상징으로 보였을 것이다. 개를 먹는다는 개념 자체가 없던 조선에 중국 한족의 개고기가 도입되는 과정 역시 매우 독재적이었다. 조선은 허용된 책과 글만 볼 수 있었다. 국가 차원에서 모든 기록을 철저히 관리했다.
한 글자라도 허락받지 못한 글자를 가지고 있다가 걸리는 날에는 삼족이 몰살 당했다. 문(文)의 독재이다. 이런 문의 독재 속에 조선 왕조는 중국 한의서와 도교서 중 송 대 이전 발행된 책만 수입했다. 개고기가 약으로 사용되던 시기이다.
<티베트탄 마스티프와 유전자가 동일한 삽살개. 조선. 김두량. 1743년>
이미 중국 명 왕조에서는 개를 가축이 아닌 동물로 취급하고 있었지만 굳이 공자 맹자 따져가며 춘추전국 시대와 한나라, 양나라 시대 고사만을 넣은 한의서와 도교서를 조선에 배포시킨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사라져 버린 중국 한족의 개고기 전통은 조선에서 이어지게 된다. 개고기 사대주의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이런 현상은 심해졌다. 특히 조선 후기에 들어서서는 마치 정신병에 걸린 것처럼 소중화 사상을 주장했다. 이미 사라져버린 명나라를 그리며 고대 중국이 조선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한 나라 유물 속 농사 짓는 신농 씨>
진정한 리플리 증후군이다. 이런 이유로 조선 시대 지배층은 주구장창 신석기 시대 중국인이 먹던 개고기를 우리 전통의 음식이자 약이라고 주장하며 굶어죽는 백성들에게 약이자 식량으로 먹으라고 강요했다. 황구가 몸에 제일 좋다는 청동기 시대 중국 한족 기록을 믿은 김일성 일가가 황구만 먹는 이유이다.
하지만 조선 이전에 한민족에게는 개를 먹는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개를 먹는 것은 강력한 금기였다. 개를 먹으면 불길하고 재수없다고 믿었다. 우리 민족에게 개는 죽음과 관련된 신성한 존재였다. 이 금기는 북방기마 유목문화인 알타이 샤먼에서 유래했다. 개고기 약효를 남긴 신농 씨는 중국 농사의 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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