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킹덤 속 사람들은 왜 인육을 먹었나? 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46. 킹덤 속 사람들은 왜 인육을 먹었나?

조선

명나라 도교를 수입한 조선은 개고기를 먹으라는 공자의 말을 곧이 곧대로 따랐다. 부모의 나라였지만 공자를 신으로 모신 입장에서 개고기 문제 만큼은 명나라가 틀린 것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틀린 건 조선이었다. 춘추전국 시대 선비는 평민과 귀족 사이에 낀 중인 같은 신분이었다. 그런 선비가 붕당을 만드는 건 처형을 당할 만큼 큰 중죄였다. 중국 역사를 통틀어 선비가 당을 만든 예는 없었다. 

<소학을 든 조선 양반 어린이, 1904>

선비가 권력의 장악한 예가 없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조선 역시 16세기 명종 대까지만 해도 사사로이 당을 만들면 처형을 당했다. 명종의 조카 중에서도 어미가 천한 선조가 왕이 되면서 그 금기가 깨졌다. 

조선은 유교 역사 상 최초로 선비질로 붕당을 만든 나라였다. 남송의 '절함도'는 왕에게 충언을 올리는 강직한 충신을 그린 그림이다. 조선은 충언을 올리는 정도가 아니라 붕당정치를 통해 신하가 왕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갔다. 

<난간이 부러져라 꽉 잡고 버티며 간언을 올렸다는 절함도, 남송, 12~13세기>


일본은 조선이 붕당 정치로 망했다고 비웃었다. 그래서인지 붕당정치를 비난하면 친일파라고 욕을 한다. 일본은 적이고 적이 비난한 건 사실 좋은 것이니 결론적으로 붕당정치가 옳다는 논리다. 

이런 극단적인 흑백논리와 이분법적 말장난이 조선을 망쳤다고 생각한다. 조선은 참으로 기이한 왕조였다. 드라마 킹덤에서는 중국 도교에서 추구하는 불로불사를 대하는 조선 지배층과 백성들의 견해 차를 잘 보여준다. 

<김홍도의 풍속도첩 중 신선들 조선, 19~20세기 초>

늙은 왕(핫바지 선조)을 살리고 싶은 어린 왕비와 장인(실권자)은 죽은 왕을 좀비로 만들었고 좀비가 된 왕은 젊은 의원을 잡아 먹었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고향으로 운반된 의원의 시신을  동네 사람들이 사이좋게 요리해 먹고 다들 좀비가 되었다. 

<정선의 독서여가, 조선, 18세기>

그러면 왜 동래 사람들은 친하게 지내던 의원의 시체를 끓여먹었을까? 킹덤은 선조 아들 광해군과 인목대비가 정권 싸움을 하던 17세기를 배경으로 한 듯 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연달아 겪은 17세기 이후 조선이 망하는 순간까지도 조선 백성들은 대부분 굶었다. 

<신윤복의 뱃놀이, 조선, 18세기>

어느 정도로 굶었느냐? 현종 실록을 보자. 한 번에 수 십에서 수 백 만 명이 굶어죽었다는 기록이 끝도 없이 등장한다. 현종은 당시 실권자인 송시열에게 함께 국사를 논의해 백성들을 구제하자고 청한다. 

송시열은 몸이 아프다, 늙은 부모를 섬겨야 한다, 등등 오만가지 핑계를 대며 왕을 생까며 말을 듣지 않았다. 요즘 말로 하면 무기한 국회 파행이다. 사표 받고 쉬게 하면 되지 않느냐고? 

<송시열(1607-1689)

그 순간 조정을 장악한 송시열 파가 모두 파업을 하는 수가 있었다. 요즘 말로 치면 총 파업이다. 철도 파업, 택시 파업, 자동차 파업 등 부분 파업이 아니라 전국 총 파업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왕이 계속 청 즉, 부탁을 했고 송시열은 거절을 했다는 점이다. 송시열이 거절하면? 현종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이게 주종관계처럼 보이는가? 현종은 그냥 핫바지다. 

<김홍도 풍속도첩 중 서화 감상, 조선, 19~20세기 초>

멀쩡한 왕인 광해군을 몰아내고 현종 할아버지인 인조를 왕으로 만든 순간부터 조선 왕권은 반정파에게 있었다. 그러니까 조선 실권도 송시열에게 있었다. 송시열도 나름 바빴을 것이다. 

반정파는 또 반정파 대로 대비 장례식 복장을 일 년을 입네, 삼 년을 입네로 싸우면서 조선이 망하는 순간까지 치열하게 권력을 두고 싸웠다. 이게 붕당정치였다. 일본이 욕 했으니까 붕당정치가 실은 합리적인 정치 체제였다고? 웃기지 말자. 

<해방 후 인구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

해방 직후 조선 인구가 2000~2500만 명이었다. 조선 말 인구가 2000만 명이라고 한다면 송시열로 상징되는 조선의 권력자들이 권력투쟁을 하는 동안 조선 백성은 한 번 기근으로 열 명에 두 세 명이 죽어 나갔다. 

수 백 만 명의 백성들이 시체를 끓여 먹다가 좀비가 되거나 굶어 죽을 때  조선 양반들은 하루에 다섯 끼를 먹었다. 한 입이라도 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먹고 토했다는 로마 귀족도 아니고 하루에 다섯 끼를 찾아 먹으며 온갖 식도락을 즐겼다. 

<조선 양반이 하루5끼 먹었다 기사, 동아일보, 2019년2월11일>

머리가 제대로 박힌 지배층이라면 먼저 백성이 있은 후에 자신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굶어 죽는 백성들 옆에서 하루 다섯 끼를 먹으며 화로에 소고기를 구워 먹으면 그게 목구멍으로 넘어갈까? 참고로 조선에는 소도살금지법이 있었다. 


조선 시대 양반은 복날이면 경치 좋은 곳을 찾아 민어탕을 먹으며 백성들에게는 보신탕이나 먹으라고 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니 신석기 시대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신농’이 쓴 개고기 약효를 앞다투어 출판했다. 그 중 제일이 허준의 동의보감』이다. 

<신윤복, 연당야유도, 조선, 18세기>

공자가 먹었고 한나라 유방이 먹었으니 조선인도 개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주장한 조선 시대 양반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정약용 같은 천주교를 믿은 양반은 개고기를 먹었다. 이황처럼 중국 책을 그대로 표절한 양반도 개고기를 먹었다. 

그러나 양반 대부분은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양반은 조선의 지배자였다. 역사를 통틀어 고기를 풍족하게 먹는 인간들은 개고기를 안 먹는다. 기마 유목민이 개고기를 안 먹는 건 양고기가 주식이기 때문이다. 춘추전국 시대에도 돈 많은  왕과 귀족은 소나 돼지를 먹었다. 

<김홍도의 풍속도첩 중 새참, 조선, 19~20세기 초>

개고기는 공자 같은 선비 나부랑이나 유방 같은 가난한 농민이나 먹었다. 조선 시대가 되자 선비 나부랑이가 왕을 능가하는 귀족이 되었고 그들은 개고기 대신 숯을 넣은 화로에 소고기를 구워 먹었다. 

열 중 서넛이 굶어 죽는 상황을 개선하기는 커녕 개고기나 먹으라고 한 조선의 역사에서 우리는 뭘 배워야 할까? 개고기는 복날 가난한 백성들이 먹던 전통 음식이라고? 그거 누가 먹게 만들었는데? 21세기에도 선비들의 말장난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