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양반들은 왜 멀쩡한 도로를 갈아엎고 가게 문을 닫게 했을까? 왜 뜬금없이 청동기 시대 공자를 물고 빨았을까? 미쳐서? 이기적이어서? 나름 치밀한 정치 전략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지랭이 천 것 한나라 유방이 나라를 통치하기 위해 공자의 유교를 국가 정책으로 만들었다. 조선도 빈약한 통치 기반을 대체할 새 시스템이 필요했고 2000년 전 학문인 유교를 새 국가 시스템으로 삼았다.
<소로 짐을 운반하던 조선의 마을 풍경, 1900년>
그게 조선의 비극이었다. 이동수단만 봐도 1500년 전 고구려 수레가 조선 가마보다는 발달된 것처럼 보인다. 2000년 묵은 학설로 개혁을 하고자 했으니 초장부터 망조가 든 것이다.
역사를 통틀어 동·서양을 불문하고 지배층은 피지배층과 괴리된 삶을 산다. 신라 땅 어느 구석에 살던 아낙은 신라 성골 여인이 사용한 황금 귀걸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줄도 모르고 평생을 살다 늙어 죽었을 것이다.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 신라, 국보, 5~6세기>
하지만 조선 지배층은 삶 뿐 아니라 문화와 정신까지 피지배층과 다른 문화를 지향했다. 시작부터 조선 백성(전 고려 백성)과 철저히 분리된 정치 전략을 짠 후 고려 백성을 농경민족으로 만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조선은 일개 장군이 왕의 명령을 어기고 쿠데타를 일으켜 세운 나라였다. 정통성이 부족한 조선은 전 고려 백성을 대상으로 독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조선에서 죄인을 고문하는 모습, 1910년>
북한의 5호담당제는 조선 말기 백성을 감시하기 위한 오가작통법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다. 오가작통법은 다섯 가구 중 한 가구라도 죄를 지으면 다섯 가구 모두를 처벌하는 연좌제다.
한민족 역사 상 조선 같은 왕조는 없었다. 조선의 모든 것이 이질적이었다. 조선의 모든 고대 왕조는 하늘(텡그리, 단군)의 명을 받아 민심을 얻어 왕조를 세웠다.
<13세기 주자학을 연구한 안향의 초상, 조선, 16세기>
왕조를 세우면 아량을 베풀어 전 왕조의 왕족을 살려주었다. 왕족이면 귀족으로 만들어 새 왕조의 왕족과 결혼을 시키는 융화책을 썼다. 조선은 얄짤 없었다.
조선은 반만년 역사 속에 전 왕조의 왕족을 몰살시킨 최초의 국가였다. 저 배를 타면 살려준다는 말을 믿은 고려 왕씨 패밀리가 모두 배에 타자 배를 침몰시켜 버렸다. 깔끔하다.
<정도전의 스승이자 고려 말 성리학을 들여온 이색>
자, 이 꼴을 짐승을 죽이는 방법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비폭력주의로 살던 고려 백성들이 봤다 치자.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왕이 된 이 성계가 누군지 이름이나 들어봤을까?
“하늘의 뜻을 받은 자가 새 왕조를 열어야 하는 법이거늘 쟤는 뭐가 저리 구려서 왕 씨의 씨까지 말리나?” 싶었을 거다.
고려 백성의 민심을 얻을 수 없던 조선은 고려의 모든 것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의 뜻을 못 얻었으니 하늘을 없애는 방법을 썼다.
단군(텡그리)를 없앤 것이다. 조선 지배층은 단군이 중국의 교화를 받아 간신히 짐승 꼴을 면했다고 하며 단군의 위패를 없애고 기자 능을 세웠다.
<중국의 교화를 받았다는 단군 기자의 능, 1945년>
그러면서 내세운 것이 고려 말 일개 신진 학문의 하나였던 성리학이었다. 조선 개국은 수 천 년 동안 기마 유목 민족으로 살아온 한민족이 농경민족(의 탈을 쓴 여진족)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
조선은 고대 중국 내부를 단속하기 위한 선전·선동인 중화사상을 이용해 조선 판 문(文)의 독재를 했다.
<청자 용 모란무늬 합과 받침대, 고려, 13세기>
조선의 독재는 ‘개 숭(배하는) 파’인 한민족을 공식적으로 ‘개 먹(는) 파’로 만들만큼 강력했다. 13세기 고려청자 중 용과 모란무늬가 있는 합을 보면 손잡이가 강아지 모양으로 되어 있다.
고려 시대 청자는 주로 왕실에서 사용했다. 14세기 고려 말 불화를 봐도 지옥의 구원자인 지장보살 앞에 삽살개가 있다. 고려인도 개가 죽음과 관련된 신성한 존재라고 믿은 것이다.
<지장보살도 속 청삽살, 고려, 14세기>
조선은 마치 1911년 중국 청나라가 망한 후 중국 대륙을 차지한 모택동이 중국 인민에게 개고기를 먹게 한 것처럼 조선 백성들에게 개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했다.
왜? 공자가 개고기를 먹었고 개고기는 선비의 음식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공자는 당시 반드시 개고기를 먹어야만 했던 선비 계급이었다. 왕, 귀족 다음으로 선비였다.
<고대 중국에서 선비가 개고기로 제사 지내는 모습>
제 3 계급인 선비가 조선에서 귀족 계급이 되면서 개고기도 신성해졌다. 신으로 섬긴 공자가 먹었기 때문이다. 조선은 정치·경제·종교 모든 면에서 오직 유교 경전만을 따랐다. 당연히 도교와 의학도 그래야했다.
왜 조선은 당시 명나라 조정에서 하사한 도교의 『권선서』에 중 개고기는 먹지 말라고 한 내용은 삭제하고 출판해야했을까? 당 왕조 이후 변해버린 중국 도교를 조선은 인정할 수 없던 것이다.
<동의보감>
공자는 개고기를 먹으라고 했는데 명나라에서는 먹지 말라고 했으니 명나라가 오염된 거였다. 그러니 검열 후 삭제. 참고로 조선에서는 단 한 글자라도 잘못된 글자를 가지고 있다가는 가족이 몰살을 당했다.
개 피, 개 머리뼈, 개 뇌, 개 젖, 개 이빨, 개 심장, 개 신장, 개 간, 개 쓸개, 개의 네 발굽, 담석 등 개의 모든 부위가 약이라는 내용은 1611년 조선의 『동의보감』에 그대로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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