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 동양은 전통적으로 중국을 뜻했다. 중국의 비단은 이미 로마 시대부터 유럽에 팔렸다. 중국 비단과 물건은 중앙 아시아 육로와 지중해를 통해 유럽으로 판매되었다.
그러다 인도를 알게 되었고 16세기 이후 일본도 알게 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이 만든 일본 도자기는 서양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당시 일본에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진출해 있었다.
<일본 우키요에(풍속화) 중 게이샤>
비싼 중국 도자기 대신 값싼 일본 도자기를 수입해 팔던 업자들은 도자기를 싼 일본산 포장지에 주목했다. 풍속화를 그림으로 그려 판화로 찍어 팔던 우키요에였다.
현재 서양에서 일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도 17세기 이후 유럽에 유입된 우키요에에서 왔다. 우키요에 역시 조선인 화가가 관련되었다는 설이 있다. 어쨌든 일본은 중국 상품의 대체 생산국으로 처음 유럽에 진출했다.
<일본의 우키요에(풍속화를 그린 판화)>
17세기 동인도 회사를 설립해 동양 시장을 선점한 네덜란드와 영국은 이 중요한 중국 시장을 지배할 수 없었다. 왜? 중국에는 중국 역사 상 가장 강력한 청나라가 버티고 있었다.
19세기 망조를 타기 전까지 청나라 황제들은 교역을 청하는(간을 보는) 영국이나 네덜란드 사신을 "옛다, 이거 하나 먹고 떨어져라"는 식으로 적당히 선물을 쥐어주며 무시했다.
<청나라에 살던 네덜란드 상인 부부 도자기, 청, 1750~1800년>
십자군 전쟁 일으키듯 확 엎어버리고 싶어도 아직 유럽에는 그 정도 힘이 없었다. 산업혁명 전까지 청나라가 제일 강했다. 그러니 깨갱하고 값싼 일본 도자기를 수입하거나 청나라 도자기를 흉내낸 도자기를 자체 생산할 수 밖에 없었다.
<일본 도자기 산지인 아리타, 아리타 관광협회 제공>
이시기 생겨난 도자기 공장들이 현재 유럽의 명품 도자기 브랜드가 되었다. 역시 이 시기 유럽으로 수출하던 일본의 조선인 도공 집단 거주촌은 일본의 유명 도자기 산지가 되었다.
<노란 티트레이 세트, 더비 공방, 영국, 1782~1800년>
청나라에 가서 간을 보던 네덜란드와 영국 상인들은 전통적인 지중해 항로와 중앙아시아 육로를 이용할 수 없었다. 그 원인도 로마 카톨릭 교황청에 있었다.
1492년 콜롬부스가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의 오더를 받아 인도를 찾아 헤매다 얼떨결에 남아메리카를 발견하기 이미 400년 전부터 서유럽(스페인, 프랑스, 영국)은 지중해 항로에 대한 통제권을 잃은 상태였다.
<스페인 세고비아 성당, 11세기이후 건축 추정>
11세기부터 시작된 십자군 전쟁, 15세기부터 시작된 서양 제국주의와 그에 대한 반발로 생긴 이슬람근본주의 모두 그 근본 원인을 따지고 보면 로마 카톨릭에 있었다. 로마 카톨릭은 시작부터가 이상했다.
로마가 기독교를 인정해주기 전 기독교 정통은 시리아 안티오크 교회였던 것 같다. 예수님이 태어난 예루살렘과 인접한 이 지역은 대대로 개 머리를 한 새 신화를 믿었다.
<암소를 탄 여신, 히타이트, 기원전 1600~1200년>
개가 신의 화신이거나 신 그 자체라고 믿은 시리아 교회에서는 당연히 개머리를 한 성인이 예수님을 구해주었다고 믿었다. 또한 마리아 숭배를 금지했으며 십자가 숭배를 거부하며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
개 머리를 한 성인 크리스터퍼 존재 자체를 없애는 대신 마리아 숭배를 하고(이 마저도 결국 개를 신성시한 고대 종교와 일치) 동물에게 영혼이 없다고 해석한 순간부터 로마 카톨릭 교황청은 변질된 것이다.
<암소를 태운 배와 물고기, 이집트 혹은 키푸로스 혹은 페키니아. 기원전 1340년-1200년>
콜롬부스가 아즈텍, 마야 원주민을 학살한 것도 카톨릭 교리에 따른 것이었다. 황인종은 인간이 아니었다. 이런 배타적인 성경 해석이 11세기 이후의 십자군 전쟁, 15세기 이후의 식민지배를 가능하게 했다.
십자군 전쟁과 식민지배는 결국 이슬람 제국을 침략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호의를 보였지만 점점 심해지는 유럽의 도발에 지친 이슬람 제국은 이슬람근본주의로 똘똘 뭉쳐 맞서 싸울 수 밖에 없었다.
<동로마 교회와 이슬람 제국을 공격한 십자군 기사>
한편 정통 시리아 안티오크 파 기독교를 파문한 기독교 로마 제국은 5세기까지 지속되다가 동, 서로 분열되었다. 동로마 제국은 비잔틴 제국으로 발전했고 서로마 제국은 로마 교황청의 지배를 받았다.
<로카 카톨릭에서 초대 교황이라고 믿는 성 베드로, 파리, 1689년>
이후 천 년 동안 서로마 제국(서유럽)은 암흑 시기에 빠진다. 왜 암흑 시기냐? 깜깜한 어둠 속에 갇힌 인간처럼 눈과 귀가 닫힌채 로마 카톨릭 교황청의 노예로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유럽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77. 사자왕 리처드의 뒤통수를 친 프랑스의 필립 2세 (0) | 2019.05.11 |
---|---|
76. 중세 유럽 예수님의 성체를 지킨 개 (0) | 2019.05.09 |
75. 중세 천주교 십자가에는 개가 있었다 (0) | 2019.05.07 |
74.거대한 체스판 같던 중세유럽, 개고기는? (0) | 2019.05.04 |
62. 영국 무적 함대가 마약을 판 이유 (3) (0) | 2019.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