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청이 서유럽을 통치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일종의 체스 게임이었다. 퀸(여왕)만 잡으면 되었다. 교황에게는 모든 카톨릭 국가(서유럽)의 황제 임명권이 있었다.
왕과 왕족의 결혼을 최종 허락하는 것도 교황이었다. 통치자의 결혼은 정치였다. 흉노 왕조 및 신라 황실에 왕족과 왕비족이 있던 것과 같은 시스템이다.
<뒤마의 소설 삼총사 속 악인인 추기경, 1849년>
카톨릭(서유럽) 국가의 왕권을 장악한 교황청을 중심으로 거대한 피라미드 계급사회인 봉건제가 형성되었다. 교황청이 각 나라에 파견한 추기경은 왕을 견제하거나 혹은 왕을 능가하는 권력을 가졌다.
뒤마의 소설 '삼총사'에 등장하는 음흉한 적은 추기경이다. 교황청의 지배를 받은 중세유럽에서는 거의 모든 것에 상징과 의미가 있었다. 그에 따라 이단이 결정되었다.
<유럽에서 마녀를 고문하고 태워 죽이는 판화, 1598년>
이단일 경우 불태워죽여 그 존재를 완전히 없애야 했다. 잔인한 마녀사냥을 중세유럽인들이 당연하다고 여긴 이유다.
기사도의 낭만으로 백날 포장해봐야 중세시대에는 그 날 아침 입은 옷 색깔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잡혀가 죽을 수도 있었다.
<12세기 초 중국 송나라 백성들 모습, 청명상하도>
중세 시대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가 없었다. 인간은 오직 신(교황)에게 속한 존재였다. 종교라는 이름의 독재였다. 당연히 발전이 없었다.
그리스-로마 시대 이룩한 찬란한 문명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스 문화는 다행히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으로 페르시아 지역에 전해지면서 이슬람 제국으로 이어졌다.
<12세기 이슬람 제국(지금의 이란) 백성들의 생활 상>
우리나라로 치면 삼국시대부터 조선 초에 해당하는 중세 시기 유럽과 중국의 생활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떼로 굶어죽다가 사람고기, 개고기를 먹던 중국은 그래도 7세기 당나라 시대 이후에는 먹고 살만해졌다.
중세 유럽의 생활 수준은 이슬람 제국과 비교해도 형편없었다. 유럽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상, 하수 시설도 없었고 난방 시설도 없었다.
이슬람 제국에 있던 화장실과 목욕탕 시설을 목격한 십자군 기사단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중세 유럽에서 난방은 상상할 수 없었다.
<조선 시대 왕실 산지기, 모리스 쿠랑, 1900년>
어느 시대든 연료(주로 나무)는 비쌌다. 조선만 해도 산은 왕실이나 양반들 소유인 경우가 많았다. 왕실 소유 산에서 나무를 베거나 열매를 채취하거나 사냥을 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일본 에도시대에는 무로마치 시대부터 이어온 유서깊은 귀족 가문이 막부 성에서 사용할 나무와 숯을 공급하는 산을 관리했다.
<에도 시대 막부의 산지기인 카와무라 종가, 출처:시즈오카 관광협회>
유럽에서는 왕실이나 귀족 소유 산에서 나뭇가지 하나만 꺾어도 사형을 당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지금도 남의 산에 들어가 살면서 '나는 자연인이다'를 찍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총으로 쏴 죽이거나 고소하지 않는다. "음. 저 사람이 내 산에서 숨어 사는군. 눌러 살지만 않으면 좋으련만..." 이 정도다.
<귀족의 상징, 벽난로, 프랑스, 15~16세기>
유럽인이 건너가 세운 미국에서는 개인 소유 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뜯었다가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 이런 이유도 포함해 유럽에서는 서민 난방이 발달하지 못했다.
벽난로는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땔감은 산을 가진 귀족이 아니고는 구할 수 없었다. 당연히 백성은 난방을 못했고 집에는 굴뚝이 없었다.
신데렐라는 재투성이 아가씨라는 뜻이다. 집에 굴뚝이 있던 신데렐라는 최소한 부자집 귀족 아가씨였다. 산업 혁명 이전까지 거의 대다수 유럽 평민은 굴뚝 없는 한 칸짜리 움막에서 살았다.
<벽난로 앞에서 감자 요리하는 여인, 네덜란드, 빈센트 반 고흐, 1885년>
집안에서 음식을 만드니 벽과 천정이 숯검댕이였다. 겨울이면 얼어 죽는 사람들 천지였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얼어 죽은 네로와 파트라슈를 보고 사람들이 그리 크게 놀라지 않은 이유다.
이런 와중에 귀족들은 장원에서 생산한 거의 모든 수확물을 가져갔다. 영주는 초야권을 행사하며 농민들의 딸을 강간했다. 초야권은 장원에 속한 농민이 결혼을 할 경우 영주가 먼저 신부와 첫날밤을 보내는 제도다.
<신데렐라의 책 표지 속 개, c.s.Evans, 런던, 1919년>
거대한 체스 판 같은 중세 유럽 봉건제도 하에서 영주는 또 왕의 지배를 받았다. 왕은 다시 교황의 통제를 받았다. 천 년 이상 지속된 이런 상황에서 교황청은 면죄부를 팔았다.
살인을 저질러도 돈만 내면 죄가 없어지는 것이다. 봉건제 하에서 돈이 있는 사람들은 주로 귀족이다. 귀족들의 악행과 전횡은 조선 말기를 능가했다.
<중세 시대 체스 두는 귀족 여인과 개, 1821년 작품>
성경은 오직 라틴어를 구사하는 성직자만 읽고, 해석하고, 발행할 수 있었다. 라틴어가 아닌 성경을 성직자가 아닌 자가 읽고, 해석하고 보급한다면 죽였다.
조선 시대 양반들만 글(한문)을 독점하며 대다수 백성들은 문맹인 상태인 것과 비슷했다. 백성이 무식할 수록 다스리기 편하다. 조선 시대와 달리 귀족들도 반드시 글을 알 필요가 없었다.
<선서하는 15세기 프랑스 왕 루이 11세>
중세시대에는 왕이나 귀족조차 글을 모르는 무식쟁이가 태반이었다. 어쩌다 똑똑하게 태어난 농민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카톨릭 사제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와 개, 네덜란드, 1430~1445년>
이런 봉건제에 반발하면 파문을 당하거나 심하면 이단으로 몰려 화형을 당했다. 21세기 대표적인 독재국가 북한에서는 개고기가 김일성의 음식이자 전통음식이다.
그러나 북한과 비슷하게 종교 독재를 한 중세 유럽에서 개고기는 음식이 아니었다. 기독교가 생긴 예루살렘에서 개를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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