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

106 공산주의자 김원봉은 개고기를 먹었을까?

AnDant 2019. 8. 1. 13:37

엄청난 제작비에 비해 처참한 시청률로 끝난 드라마 이몽의 주인공은 김원봉이다. 김원봉은 영화 암살에서 독립군의 막후 실세로 나온 조선의열단의단장이기도 하다. 원봉, 원봉, 김 원봉은 과연 누구인가

대관절 누구기에 영화며 드라마며 줄줄이 그를 찬양하는가? 김원봉을 알면 조선족의 뿌리와 해외 동포들이 어째서 친북, 친 중국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는지, 어째서 독립운동가들이 공산주의 운동을 했는지에 대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2~3%의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이몽의 주인공 김원봉, MBC, 2019>

여기에 더해 친일파와 민족주의자들이 해방 후 어째서 극단적인 친미주의자가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은 개를 잡아 먹었다. 중국 공산당과 연결된 북한, 조선족, 재외 동포들이 개고기를 민족의 정체성으로 믿는 이유다. 

모든 건 공산주의 혁명과 관련 있다. 개고기 식용은 공산주의 혁명 과업 달성이었다. 왜 그런지 김원봉을 통해 설명하겠다. 1905년 시어도어 루즈벨트 딸의 조선 방문단에는 루즈벨트 차기 대통령이 된 윌리엄 태프트도 끼어 있었다고 했다. 


<앨리스 양과 태프트 무관을 잘 대접했다고 한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메이지 천황의 친서, 1905년 11월 11>

차기 대선 주자가 군관 자격으로 수행단에 껴서 온 사실을 고종이 알았는지 몰랐는지 몰라도 20세기 초반 한반도는 미국, 영국(군사적으로 일본을 지원), 일본, 러시아가 피터지게 싸우는 제국주의의 전쟁터가 되어 있었다.

가쓰라-태프트 조약 이후 1910년 조선이 일본에 합병된 후로는 한반도는 일본이 접수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좀 복잡했다. 일본 뒤에는 미국의 간접 지배(미국식 개신교를 통한 선교, 의료, 교육 등)가 있었다. 


<1935년 미국 재외 교민 독립 운동 단체들이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의열단의 지도를 받는 민족혁명당으로 통합, 박경순 재판 기록, 1939년 7월,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여기에 천주교를 통한 로마 교황청, 중국 공산당, 러시아 공산당이 뒤엉켜 개싸움을 하던 곳이 한반도 조선이었다해방 후 우리는 어째서 하루아침에 한반도가 남가 북으로 나뉘게 되었는지 영문을 몰랐지만 국제 사회는 알았다

지정학적으로 딱 좋은 위치인 한반도에는 이미 고종 대부터 전 세계 온갖 잡놈들이 들어와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파나마 운하를 두고 각 제국주의 열강이 싸운 것처럼 말이다.


<김원봉은 좌우통합의 상징이자 한국 국군의 뿌리라고 한 문재인 대통령, 뉴데일리, 2019년 6월 11일>

잡놈들 중 중국 공산당은 개고기를 체제 유지의 선전 선동 전술로 써먹었다. 중국 공산당에게 개고기는 청 왕조였으며 일본 제국주의였으며 미국 제국주의였다개고기에 관한한 중국 국민당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중국 국민당의 적은 청 왕조와 일본 제국주의였다. "개고기를 반대하네? 더 열심히 때려잡아 먹어야지!" 이런 논리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처럼 조선에도 일본과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김구의 상해임시정부와 김원봉의 조선의열단을 동시에 지원한 중국 국민당,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김원봉, 김구와 같은 독립운동가들이었다.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모두 조선의 독립 운동가를 지원한 이유다. 장개석은 김구의 임시정부와 김원봉의 조선 의열단을 동시에 지원했다

1921년 중국 공산당 창당 후 김원봉은 공산당과 국민당 사이를 왔다 갔다 한 것처럼 보이는데 결과적으로 봤을 때 그는 중국 공당원이었다김일성과 더불어 북한 초대 정부를 세운 것만 봐도 그렇고 조선족 군대를 지휘해 한국 전쟁에 참전한 것만 봐도 그렇다.  


<김원봉은 공산주의 혁명가라고 찬양한 노동일보, 2019년 7월 9일>

당연히 김일성과 함께 개고기를 열심히 먹었을 그는 명백한 대한민국의 적이다. 1948년 월북한 그는 6·25전쟁 기간 동안 북한 측 전쟁지휘관이었다. "북한은 우리를 쳐들어왔어. 나쁜놈들이야. 김원봉은 북한 전쟁 지휘를 했어. 김원봉은 적이야." 이렇게 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남한이 북한을 침략했다는 헛소리는 말자. 아무리 좋게 봐줘도 당시 남한 군대는 부패와 무능의 끝판왕이었다. 그럴 능력이 없었다. 김원봉이 한국 국군의 뿌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찬사에 힘입었는지 보훈처에서는 그에게 훈장을 주고 싶어했다. 


<김원봉 서훈의 근거는 1200만 명의 암살 관람객이라는 보훈처, 중앙일보,  2019년 6월 11일>

서훈 근거는 영화 암살의 관객 수가 1200만 명이 넘었기 때문이다. 이해가 되는가? 영화가 엄청 히트를 했기 때문에 영화 속 인물에게 훈장을 수여해야 한다는 것이다영화 덕분에 추서된 김원봉에 대해 알면 조선족에 대해 알 수 있다고 했다

대한민국 외교부는 194910월 이전에 중국으로 간 한국인을 모두 재외 중국 동포(조선족)로 인정하고 있다. 김원봉처럼 해방 후 중국과 남한, 북한을 넘나들던 공산주의자들도 재외 동포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조선족 동포1세대는 1949년 10 월 이전 중국 이주자라고 규정한 법무부, 외국국적동포관리지침, 2015년>

김원봉은 한국 독립운동가들과 중국 공산당과의 연관 관계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에 공산정부가 들어선 후 조직된 조선의열단의 주요 활동은 암살과 테러였다

1200만 명이나 본 영화 암살에서는 반일 정신과 애국심에 불탄 주인공이 친일파를 암살한다. 요인 암살을 아름답게 묘사하면 낭만적인 독립운동이지만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살인청부다.


<영화 암살로 신분 세탁하는 전범 김원봉, 뉴데일리, 20150823>

1919년부터 1926년까지 김원봉은 암살, 파괴, 테러 등의 투쟁을 통해 민중(조선 백성)을 교화시키고자 노력했다. 의 목적은 소련 공산당과 중국 공산당, 중국 국민당과 중국공산당, 조선의열단과 상해임시정부, 남한과 북한을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노동자와 농민을 통한 체제 전복이었다체제 전복은 전 세계 제국주의로부터 독립하는 것이었다. 즉, 공산주의 혁명이었다. 조선의 경우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되어 체제를 전복하는 것은 곧 조선 독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