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20. 토머스 제퍼슨의 흑인 첩과 복날 개고기

AnDant 2019. 9. 3. 12:00

가장 가난하고 비천한 농촌 일꾼에게 복날 개고기를 먹도록 강요한 것은 결국 조선의 노비제도였다. 조선 노비 제도는 미국 노예제도보다 잔인하고 비인간적이었다. 그렇게 주장하는 첫 번째 이유는 미국 노예제는 남부에서만 적용되었다는 사실이다


조선의 노비 제도는 조선 전체에 적용되었다. 둘 째, 미국의 노예제도는 남북 전쟁 후 1863년 종료되었다. 조선의 노비제도는 장장 500을 이어갔으며 지금도 북한에서 이어지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끔찍한 노예 국가로 알려진 북한은 조선 사회를 모델로 하고 있다


<북한은 유교적인 나라라는 송영길 더물어민주당 의원>

조선 신분 사회의 근간은 노비제도였다. 북한 김 씨 일가와 평양 상류층을 제외한 대다수 북한 주민들은 조선 시대 노비처럼 살고 있다. 그러니까 김 씨 일가는 조선의 왕이다. 평양 상류층은 조선 시대 양반이다. 대다수 북한 주민은 노비들이다

그렇게 따지면 조선 시대보다 노비 비율은 증가한 셈이다. 어쨌든 이들 모두 조선은 중국이라고 떠들며 고대 중국인이 복날 먹은 개고기를 자신들의 전통이라며 신나게 먹고 있다. 물론, 식량과 약이 없으니 북한인은 개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다


<개고기는 전통적인 민족 요리라고 한 김정일, 자유아시아 방송, 2018년 7월 27일>

사회주의 독재의 변형인 주체 사상으로 인해 조선 시대 존재한 개고기 금기도 사라진 마당이니 북한에서 개고기를 막을 만한 근거는 전혀 없다. 노비 국가 북한은 개고기 천국이다.

셋째, 미국의 노예 제도는 조선의 노비제도에 비해 덜 폐쇄적이었고 관대했다. 미국 노예는 조선 노비에 비해 해방될 가능성이 높았다. 주인과 노예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도 조선보다는 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토마스 제퍼슨,John Trumbull, 미국, 1788년>

미국의 노예제도 하면 대표적으로 회자되는 인물이 미국의 토머스 제퍼슨이다. 한국의 노비제도 하면? 개고기 술을 조선에 퍼트린 이황이다. 토머스 제퍼슨과 이황은 각각 전통 있는 미국 상류층과 한국 상류층을 상징한다.

미국 독립선언문을 쓴 토머스 제퍼슨은 미국의 3대 대통령이기도 했다. 건국의 아버지이자 대통령인 그는 흑인 소녀를 첩으로 두고 자식까지 낳았다는 혐의를 받았다북한이었다면 최고 존엄의 정부인 흑인 소녀는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 죽었을 것이다


<조선 시대 지배층의 상징적 인물인 이황>

한국이었다면 핸드폰 문자로 유서를 남기고 조용히 자살했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토머스 제퍼슨의 흑인 첩은 자식도 일곱인가 다섯인가를 낳고 잘 먹고 잘 살다 늙어 죽었다. 자손들은 일가를 이루었다. 

토머스 제퍼슨과 딸이 모두를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었다기 때문이다. 이황은 죽기 직전 뭘 했을까? 자식들에게 노비는 양인과 결혼시키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렇게 해서 노비 수를 펑펑 늘려 재산을 불리라는 조언이었다


<해방된 흑인 노예가 수영을 즐기고 있다, Winslow Homer, 미국, 1899년>

이런 이황에게 노비와의 사이에서 낳은 혼외자식이 있었다면 해방시켜 주었을까? 이 황이 노비를 사들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해방시켜 주었다는 기록은 없다14살에 토머스 제퍼슨의 첩이 되었다는 샐리 헤밍스는 토머스 제퍼슨의 이복 처제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의 장인은 흑인 노예 여성을 유린해 아이들을 낳았고 그 중 한 명이 샐리 해밍스다. 사돈까지 집안이 아주 샹샹바다. 그래봤자 조선 시대 기생충 양반보다는 낫다. 샐리 해밍스와 형제들은 모두 집안 노예로 분류되었지만 농장에서 일을 하지도 않았고 교육도 받았다


<조선 시대 교육, 언론, 사상의 중심지인 이황의 도산 서원, 정선>

어린 샐리 해밍스는 집안 노예들과 함께 토머스 제퍼슨의 부인의 결혼 지참금이 되어 토마스 제퍼슨과 함께 살게 되었다. 부인이 죽고 나서 샐리 해밍스가 14살이 되던 해부터 토머스 제퍼슨은 샐리 해밍스을 첩으로 두었다. 

그는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전직 미국 대통령이었고 샐리 해밍스는 14살 흑인 혼혈 노예 소녀였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아무리 봐도 샹샹바다. 평생 결혼 한 적 없는 샐리 해밍스는 줄줄이 아이들을 낳았고 하필 다들 백인 혼혈이었다. 


<토머스 제퍼슨이 쓴 미국 독립선언서 낭독하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John Trumbull, 미국, 1817~1819년>

그리고 어쩐 일인지 토머스 재퍼슨은 샐리 해밍스의 아이들을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게 해주었다. 죽기 직전에는 엄마인 샐리 해밍스를 제외한 모두를 해방시켜 주었다그 샐리 해밍스조차 재산을 물려받은 토머스 제퍼슨의 딸이 바로 해방시켜 주었다

토머스 제퍼슨이나 딸이나 조선 시대 기생충 양반들보다는 인간적이었다. 조선 시대였으면 다른 기생충 양반들이 나서 제퍼슨 가문을 멸문시켰을 수도 있다하나라도 예외를 두었다가는 노비제도(양반제도)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양반이 여종과 낳은 아이는 노비였다, 건곤일회첩, 신윤복, 조선, 18~19세기 추정>

일가를 이룬 샐리 해밍스의 자손들은 끈질기게 자신들이 토머스 제퍼슨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며 DNA검사까지 받았다. DNA검사 결과 그들은 제퍼슨가 후손이 맞았다토머스 제퍼슨인지 토머스 제퍼슨의 남자의 친척 후손인지 몰라도 말이다

샐리 헤밍스의 후손이 일가를 이루었다는 점만 보아도 미국 노예제도는 조선 시대 노비제도보다 관대하다. 넷 째, 미국은 노예 제도를 지금도 반성한다. 그러나 한국은 노비제도를 찬양한다. 복날 개고기를 통해서 말이다. 조선 시대 개고기는 저주받은 음식이었으므로 복날 개고기를 먹은 행위는 자발적이지 않다자발적이지 않다면?


<확률적으로 이들 중 몇 명은 노비다, 풍속도첩, 김홍도, 조선, 19~20세기>

기생충 양반이 시킨 거다. 실제 모 교수님의 책에 의하면 복날 개고기를 먹게 된 것은 양반의 지시에 의해서였다고 한다복날 가난한 농촌 일꾼들을 찬양하며 개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자신들의 주장 중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깨닫기 바란다

노비제도에 대한 통렬한 반성 없이 양반이 강요한 개고기만을 찬양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미국 노예제도보다 끔찍한 노비제도를 500년이나 유지하며 고혈을 빤 기생충 양반들의 뜻을 따르는 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