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이후 조선족 자치구 경제 실적은 중국 소주 민족 중 일등이었다. 당연히 1인당 소득도 제일 많았다. 왜? 외국 자본 유입이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외국 자본이 조선족 자치구를 콕 집어서 돈을 송금해 준 것이다.
돈을 보내준 외국이 어디냐? 한국이다. 남한. 한중 수교 후 한국 사회는 중국 열풍이 불었다. 너도 나도 10억 중국 소비 시장 운운하며 중국에 돈을 들고 달려갔다. 안경테만 중국에서 떼다 팔아도 떼돈을 번다고 믿었다.
<IMF 후 한국으로 대이동한 조선족은 불과 20년 만에 100만 유권자를 가진 거대한 정치세력이 되었다, 동북아신문, 2014년 4월 24일>
투자만 했냐? 갑자기 미국 교포사회와 한국에는 한국과 중국을 연결하는 단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이 단체들은 조선족 동포 사회를 걱정하며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중에는 한국과 중국 조선족 사회의 인적 교류도 포함되었다.
조선족에게 한국은 황금의 땅 엘도라도, 기회의 땅이었다. 단,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조선족은 한국이 미국에 의해 식민 지배된 상태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전향을 하지 않는 한 조선족은 중국 공산주의자다.
<IMF 당시 연변자치구 재정 수입이 한국에서 보내는 송금액과 비슷한 수준>
중국 공산주의는 반미국, 반일본을 기본으로 한다. 북한은 미국과 일본에게서 해방된 상태지만 남한은 아직 미국과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태로 본다.
그러니까 남한 사람들은 미국과 일본에 의해 지배되는 대신 경제적 발전을 택한 얍삽한 인간들이다. 미국과 일본에 의해 지배당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진정한 한민족의 역사와 전통은 조선족 사회만 간직하고 있다고 믿는다.
<중국 조선족과 싸운 한국전쟁 당시 생긴 국군의 날에 적국인 조선인민공화국 창건 70주년 현수막을 건 부산시, 메트로, 20190924>
그 중 하나가 중국 공산당에 의해 만들어진 개고기 식문화다. 조선족은 스스로 한민족 고유 민족성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민족 자산이라고 믿는다. 그들 생각에 조선족 자치구는 그 자체가 거대한 문화유산이다.
개고기 식문화를 잊은 한국은 미국과 일본에 의해 오염된 상태다. 조선족이 일제와 싸운 독립운동을 자랑하는 이유기도 하다. 주의할 것은 모든 조선족이 독립운동을 한 것은 아니며 독립운동가들 중 대부분이 중국식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이다.
<1940년대 생 조선족도 한글과 한국 역사에 대해 잘 모름>
어떻게 아냐고? 1956년 반우파운동, 1958년의 대약진 운동,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장장 10년 동안 자행한 문화대혁명을 거치는 동안 중국식 공산주의자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 살아남은 조선족 독립운동가나 그 후손은 모두 중국 공산주의자다. 독립운동을 한 애국자에 진짜 한민족이라는 자부심으로 인해 조선족은 잘 사는 한국에 대해 이중 감정을 가진다.
<한국 역사를 모르는 조선족은 개고기가 민족 전통이라고 믿으며 세계 만방에 알리고 있다>
“내가 진짜 주인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지금 일하는 식당의 한국인 건물주가 얼마나 부자든 간에 그는 미국과 일본의 식민지 노예다. 진정한 한국인은 조선족이다.
그러므로 한국이 이룩한 모든 부의 진짜 주인은 조선족이다. 조선족이 가지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한국인을 무시하는 태도는 이런 중국 공산주의적 우월감에서 비롯한다.
<항미원조는 중국에서 한국 전쟁을 지칭하는 단어. 독립운동과 한국인 학살을 동일선상에 두고 자랑하는 조선족>
자, 이런 식으로 정신무장을 한 조선족은 서부 개척 시대 미국인처럼 친척 방문, 기술연수, 유학 등 갖가지 명목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이도 저도 안 되면 노무 송출이라는 명목으로 조선족 조폭에게 사채를 쓰고 밀항을 했다.
일단 한국에 온 조선족들은 무조건 일을 했다. 방문비자나 연수 비자, 학업 비자로 일을 하는 건 불법이다. 그러나 식당에 불법 취업해 설거지라도 해도 연변에서 버는 것 보다는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1998년 돈만 벌면 중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호언장담한 조선족 대부분은 2018 현재 백 만 명 이상 한국에 눌러앉았다>
조선족은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겨두고 모두 연변으로 송금했다. 미국 교포 사회는 교포사회 대로 우리민족 서로 돕기라는 명목으로 조선족 자치구에 학교와 병원 등을 지어주었다.
미국 교포 사회는 교민을 중심으로 중국 조선족과 북한을 연결했다. 미국 교포나 조선족이나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우리는 한민족이니 서로 도우며 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공산주의 국가전복을 시도한 후 미국으로 간 서경석 목사는 1999년 돌연 조선족 교회를 설립해 조선족을 위해 애쓰고 있다,동북아신문, 20101114>
이런 식으로 중국과 북한, 한국, 미국 사이에서 조선족은 단지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앉아서 꿀을 빨 수 있었다. 그런 조선족 사회가 삐끗하기 시작한 게 1997년 이후다. 황금알을 낳은 거위인 한국에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조선족 사회에 대한 지원을 딱 끊어버린 것이다.
IMF가 터진 후 매일 대기업이 망했고 실직한 가장들은 수없이 자살했다. 당연히 중국 조선족 사회에 보내는 지원과 송금도 끊겼다. 한국인도 일을 못하는데 불법 취업한 조선족은 당연히 일자리를 잃었다.
<IMF 후 송금과 시민단체 지원이 끊기자 경제 파탄 위기에 빠진 조선족은 한국으로 민족의 대이동을 했다>
가만히 앉아서 한국에서 보내주는 송금으로 신나게 살던 조선족 사회는 엄청난 위기에 빠졌다. 1997년 당시 한국에서 조선족 자치구로 보내는 송금 액은 연변 자치구 전체 재정과 맞먹었다.
그 돈이 하루아침에 딱 끊긴 것이다. 돈이 끊긴 조선족들은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어와 돈을 벌기로 했다. 이를 조선족은 민족의 대이동이라 불렀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조선족 최초로 중국 부주석에 오른 조남기가 당시 중국 실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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