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한국은 중국의 일부'라는 역사를 창조한 중국 빨갱이 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개고기 역사 독립 연구소

131. '한국은 중국의 일부'라는 역사를 창조한 중국 빨갱이

중국 공산당

농림부가 노무현 정부 하에서 부랴부랴 개 가축 고시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사람들은 중국 재외 동포, 즉 조선족이다. ‘개 가축 고시를 만든 농림부가 이 결과를 알았는지 몰랐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의 농림부가 개 가축 고시는 김대중 정부가 제정한 법무부의 재외동포법을 지원하기 위한 장치가 된다. 당연히 재외동포법 혜택도 조선족이 가장 많이 받았다


<노무현 정부의 '개 가축 고시'와 김대중 정부의 재외동포법의 가장 큰 수혜자는 조선족>

조선족은 중국인이다. 중국인을 위해 김대중 정부의 법무부는 재외동포법을 만들고 노무현 정부의 농림부는 개 가축 고시를 만든 것이다. 재외동포법과 조선족과의 관계를 설명하기 앞서 우리는 먼저 조선의 뿌리 깊은 친 중국 정서를 이해해야 한다

조선은 중국이라고 믿은 중화사상은 조선의 건국이념이었다고려 시대를 끝으로 한민족은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의미다. 조선에 대한 이런 비판은 지금까지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조선은 미약하나마 끈끈하고 선하게 우리 민족을 지켜왔다는 것이 지금까지 조선 왕조에 대한 정의였다


<개고기로 보는 조선 시대 양반과 백성의 민족 의식 차이>

정확하게 말해서 이 표현은 피지배층인 대다수 백성, 즉 민중을 가리키는 말이다. 조선 민중은 한국인의 민족의식을 굳게 지켰다. 그 대표적인 예가 개고기 금기. 한국 민중은 개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금기를 지켰다

조선 후기까지 개고기는 가장 비천한 신분이 먹도록 엄격히 규정되어 있었다. 이에 반해 글을 쓸 수 있는 권리와 돈, 권력을 쥔 조선 지배층은 공자를 신으로 섬기며 조선을 고대 중국으로 만들고자 했다. 1921년 중국 공산당을 만든 마오쩌둥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조선 민중의 상징인 동학 농민군 포로는 개고기를 먹는 고문을 당했다, 드라마 녹두꽃, SBS, 2019년>

고대 중국에서 공자는 개고기로 제사를 지내야 하던 신분이었다. 고대 중국 샤먼에서는 복날 개고기를 먹어야 했다. 고대 중국 의학에서는 개고기를 약으로 썼다. 이 모든 고대 중국 기록이 조선 시대에 책으로 발행되었다. 고대 중국 역사가 조선 역사가 된 것이다

어느 역사든 지배층과 피지배층은 충돌한다. 유독 조선 민중과 지배층은 철저하게 분리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도 개고기다. 자기들은 먹지도 않으면서 백성에게는 개고기를 먹여 조선을 고대 중국으로 만들려던 조선 지배층과 개고기 금기를 지키며 개고기를 거부한 조선 민중은 왕조 내내 대립했다


미국의 흑인 분리 정책보다 더 지독한 양반/비 양반 분리정책이 500년 동안 지속되었된 결과 우리는 지배층과 피배층의 공통점이 거의 없는 이상한 조선 문화를 보게 되었다. 조선 시대 한민족의 민족의식과 중화사상이 충돌한 것이다


<조선 지배층은 단군과 고구려를 부정했으며 수레를 없앴다, 수렵도, 고구려, 5세기>

조선 민중 봉기의 대표로 칭송되는 동학 농민군은 개고기를 거부하고 관군은 그런 동학농민군에게 개고기를 먹여 고문한 이유는 바로 여기 있다. 이미 조선 시대부터 개고기는 중국화를 의미했다.

개고기로 대표되는 조선 지배층과 백성의 대립 관계는 1910년 조선이 일제에 의해 병합된 후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이게 그거인지 저게 이건지 너도 나도 헷갈리게 된 것이다. 양반 문화, 비 양만 문화 할 것이 조선 후기와 일제 시대, 해방 후 혼란기를 겪으면서 요상한 조선 문화만 남게 되었다.


<중국 공산당의 개고기 역사 공정은 한국을 중국 일부로 만들고 있다>

한민족의 고유의 민족의식, 조선으로의 전통 회귀 사상(중화사상), 일제에 반대하는 독립운동이 쉐킷쉐킷 섞여 버린 것이다. 칵테일처럼 말이다. 민족의식, 중화사상, 독립운동을 마구 섞은 새 칵테일 이름은 한국은 중국 일부이다

한국은 중국이 되는 과정에서 진짜가 가짜가 되고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게 되었다. 이 칵테일을 누가 만들었나? 이게 중요하다. 중국에 동화된 한국인이 만들었다다시 중국(의 속국인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어한 그들이 한국은 중국 일부라는 이름의 칵테일을 만든 바텐더다


<중국 공산당 창당 4년 후인 1925년 조선에도 조선공산당이 창당, 오마이뉴스, 2019년 2월 16일>

칵테일을 주문한 손님은? 한반도 지배권을 잃고 싶지 않은 중국이다. 처음에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새 칵테일을 주문한 손님도 여럿이고 바텐더도 여럿이었다. ‘한국을 일본 제국의 일부로라는 칵테일을 일본 손님도 있었고 한국을 러시아의 부동항으로라는 칵테일을 주문한 러시아 손님도 있었다

일본 손님과 러시아 손님 뒤에는 또 이들을 응원하거나 조종하는 쩐주들도 있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피 튀기는 국제 정세 속에서 미국 시어도어 루즈벨트 딸과 태프트 대통령 일행은 일본, 조선, 청나라를 방문했다


<청나라 서태후에게 왕족의 상징인 사자개를 선물 받은 앨리스 루즈벨트,  1905년 >

이 중요한 시기 고종은 러시아 공사로 피난을 가거나 미국 사찰단을 명성황후 묘지로 데려가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만다. 설상가상 1921년 이후 중국 공산당이 창건되었다. 조선의 중국은 명나라에서 1921년 이후에는 중국 공산당이 되었다


이 상황을 칵테일과 바텐더, 손님 관계로 대입해 보면 ‘한국은 중국 일부라는 이름의 칵테일을 주문한 손님이 1921년 이후 중국 공산당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바텐더도 중국에 동화된 한국인에서 중국 공산주의에 동화된 한국인이 된다


<서태후를 만나러 청나라로 떠나는 앨리스 루즈벨트를 배웅하는 일본 정부, 1905년>

중국에 동화된 한국인에게 한민족의 민족의식은 중화사상이다. 중국 공산주의에 동화된 한국인에게 있어 독립운동은 중국의 일부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된다. 중국의 일부인 조선 시대로 돌아가자는 민족 운동은 일제의 식민 지배에 반대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일제 식민지배에 반대하는 운동은? 독립운동이다. 이렇게 해서 1921년 중국 공산당 창건 후 조선의 민족운동, 독립운동은 모두 중국 공산주의 운동의 일부가 되었다. 여기에 일제가 만주국을 건설하며 이주한 만주의 조선인들까지 가세하자 중국 공산당, 만주, 한반도는 빠르게 중국 공산화되게 된다


<조선을 방문한 태프트 대통령과 앨리스 루즈벨트 일행을 명성황후 무덤에 데리고 간 고종황제, 1905년>

1917년 러시아의 공산화, 특히 1921년 중국의 공산화 이후 조선의 독립운동은 공산화 운동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중국 공산당은 청 왕조를 증오했다. 자신들의 적인 일본도 증오했다. 1945년 이후에는 미국도 증오했다

청 왕조, 일본, 미국은 중국 공산당의 적이었다. 중국 공산주의자가 된 조선인도 청 왕조와 일본, 미국을 증오했다. 한반도를 일본으로부터 독립시켜준 미국을 한국인이 증오하는 것은 중국 공산당에 빙의했기 때문이다라고 본다


<1921년 이후 중국 공산당의 개고기 역사 공정 개념도>

중국공산당의 적은 한국의 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한반도 개고기 역사에서 중요한 사실은 중국 공산당이 청 왕조를 증오했다는 사실이다. 만주의 원래 주인은 청 왕조는 개를 사랑했다

1911년까지 중국 대륙에서 개를 죽이는 건 불법이었다. 개고기 식용도 불법이었다. 청 왕조를 증오한 중국 공산당은 개고기를 청 왕조의 상징으로 보며 닥치는 대로 개를 죽였다. 중국 공산당에게 개는 청 왕조와 일본, 미국 제국주의의 상징이었다


<중국공산당의 개고기 식용에대한 개념은 조선족과 한국인 중국 공산주의자에게도 적용된다>

중국 공산주의자는 물론 그 영향을 받은 조선의 공산주의자들도 개를 증오했다독재자 마오쩌둥은 공산화를 통해 고대 중국을 재연하고 싶어했다. 고대 중국에서 개는? 가축이다

마오쩌둥은 솔선수범 개고기를 먹으며 개고기 먹기를 강요했다. 결국 개고기는 중국 공산당의 상징이 되었다. 모든 중국 공산주의자에게 개고기가 퍼졌다. 모든 중국 공산주의자가 개를 증오하고 개고기를 먹는 단계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