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황실 출신의 귀한 개라고 소개하며 인사를 하라고 한 것이다. '백일의 낭군님'이 퓨전 사극이긴 하지만 이건 명백한 고증 오류이다. 박선도 영감이 안고 있던 개는 페키니즈로 티베트 개이다. 중국 명 나라 개가 아니다.
<티베트가 고향인 페키니즈>
차이니즈 스패니얼로 잘못 알려진 이 개는 티베트탄 스패니얼로 티베트가 고향이다. 티베트탄 스페니얼, 패키니즈, 시추, 라사압소 모두 티벳 개이다. 사자개라고도 한다. 사자개는 티베트난 마스티프다. 크기는 다르지만 유전자가 같다.
티베트 개가 왜 중국 개가 되었을까? 중국 공산당이 티베트를 점령한 후 티베트 개도 중국 개가 되었기 때문이다. 티베트와 중국 공산당은 개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다른 민족임을 알 수 있다.
하다하다 청나라 황실 견까지 훔쳐간 중국
<티베트에서 개는 왕이나 수호신을 상징했다. 현 달라이 라마의 섭정 레팅 린포체와 티베트탄 테리어. 1936년. 출처 tibet.fr>
고대 티베트에서 개는 신이었다. 불교가 지배한 후에도 티베트에서 개는 신성했다. 삼예 수도원에서는 여전히 개를 신으로 모셨다. 티베트를 다스린 지배자들인 승려들은 개와 함께 사진을 찍어 세를 과시했다.
이에 반해 중국 한족 정부인 중국 공산당은 수 백만 티베트 인을 학살했고 개고기를 먹었다. 티베트 인은 중국 공산당을 가리켜 '개고기 먹는 인간'이라 욕했다 . 북방 기마 유목민족과 중국 한족의 차이다.
<티베트 소총 부대와 티베트탄 마스티프. 1914년>
중국 역사에서 티베트 개를 황실에서 키운 시기는 당과 청 뿐이었다. 송 왕조와 명 왕조 때에는 황실에서 티베트 개를 기른 기록이 없다. 그럴 수가 없었다.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티베트 산 개는 어떤 의미에서 옥새와도 같아서 드라마처럼 결코 황실 이외의 사람에게 분양하지 않았다. 페키니즈, 라사압소, 티베트탄 테리어, 티베트탄 스패니얼, 티베트탄 마스티프, 시추 등은 북방 기마 유목 왕족만 만지고 볼 수 있었다.
티베트 개는 왕의 상징
<티베트탄 테리어와 티베트 승려. 1938년>
황족과 개 전담 관리 외에 다른 사람이 황실 견을 보기만 해도 사형을 시켰다. 왜? 신성하니까.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 북한도 외부인이 김일성 황구(김일성 일가 전용 보신탕을 만들기 위해 품종개량 한 황구)를 보면 죽인다.
청 황실은 절대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1911년까지 중국에는 '개 도살금지법'이 존재했다. 그럼 누가 중국에서 고대 개고기 식용 문화를 되살렸나? 중국 공산당.
라사압소, 페키니즈, 시추, 티베트탄 스패니얼, 티베트탄 마스티프가 북방 기마 유목 왕족 이외의 인간들에게 유출된 것은 청 황실이 망한 후였다. 청 황실이 망하는 순간 황실 사람들은 대대로 금이야 옥이야 길러온 이 개들부터 죽였다.
<영국으로 납치된 티베트탄 스패니얼. 1899년>
미쳐서 그랬던 게 아니다. 신성한 혈통을 외부에 유출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개들은 소유활 수 있는 사람은 (북방기마 유목민 중) 황족 밖에 없었다. 신이 선택한 정당한 소유자가 사라졌으니 개도 죽어야 했다.
청 왕조가 망하자 영국으로 납치된 시추
선택받은 주인과 신성한 개는 죽어서도 살아서도 하나였다. 고구려 벽화에 주인 무덤을 지키는 반려견들 그림이 많은 이유이다. 그러나 대학살 속에서도 몇 마리가 살아남아 영국 군인들 손에 넘어갔고 영국 황실에 바쳐졌다.
<요나라 무덤 벽화 속 티베트탄 테리어. 907-1125년>
그 후 개들이 혈통 개량을 통해 현재의 페키니즈, 시추, 라사압소가 되었다. 이 정도로 신성시한 개를 선물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북방기마 유목민의) 황족으로 즉, 같은 지배자로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황금 보검을 선물해 지배권력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이 개들을 선물한 것이다.
페키니즈, 라사압소, 티베티탄 스패니얼은 당 황실과 청 황실 그림으로 남았다. 또 송 왕조 시기 중국 북부를 지배한 거란과 여진 무덤 벽화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거란과 여진 지배층도 (북방 기마 유목민의) 진정한 지배자였기 때문에 이 개들을 기를 자격이 있었던 것이다.
<비빈들과 함께 하는 도광제(1820~1850년) 페키니즈. 청, 19세기 후반>
명나라 왕자가 쓴 『활인심방』 을 이황이 쓱싹
'백일의 낭군님'은 조선 시대가 배경이다. 중국의 명 왕조 시기이다. 이 시기 명 황실에서 개를 신성하게 길렀다는 기록은 없다. 대신 명나라 황자 주권은 개고기 술을 연구했다.
권력 투쟁에서 밀려난 주권은 도교서에 심취했는데 당시 중국 대륙에서는 명맥이 사라진 고대 중국 한족 기록인 '개고기 술' 기록을 찾아내 책으로 남겼다. 그 책을 이 황이 저자 이름만 바꿔 표지갈이 출판을 했다. 이황의 후학들이 지금도 해마다 시연한다는 『활인심방』이다.
<당 황실 여인들과 노는 황실견 페키니즈. 당 왕조. 9세기>
『활인심방』이 한국 개소주의 시초이다. 원저자는 명나라 황자, 표절자는 이황이다. 한편, 모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신라에서 일본으로 개를 선물로 보냈다는 기록을 들어 개고기가 될 개를 신라에서 일본으로 보낸 증거라고 했다.
신라 황실 견 삽살개가 개고기 용?
지금 중국과 한국처럼 개고기 밀수선이 쉽게 왔다 갔다하는 줄 착각한 것이다. 해상왕국 신라였지만 고대의 배삯은 지금의 비행기 티켓 값보다 훨씬 비쌌다. 비싼 배삯을 치르며 거래하던 물건들은 금, 은, 인삼, 비단 등 초고가 제품들이었다.
<청 왕조의 서태후가 왕가의 징표로 루즈벨트 대통령 딸에게 선물한 페키니즈. 1905년>
거금을 주고 배에 태워 일본으로 보낸 개를 고작 개고기로 먹었을 거라는 추론은 신라인과 일본인이 개고기를 먹은 증거가 되었다. 신라에는 청 왕조와 마찬가지로 황실에서만 키울 수 있는 신성한 개가 있었다. 삽살개다.
북방기마유목 왕조끼리 마치 옥새와도 같이 신성한 개를 주고받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망각한채 정신마저 중국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티베트 개는 명나라 개가 되었으며 중국의 개고기는 한국인의 개고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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