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사

17. 로마 개 시조 신화와 금제 허리띠

AnDant 2018. 12. 6. 12:00

우리 역사인 고구려, 백제, 신라가 북방기마 유목민이 세운 왕조라는 증거는 있다. 5세기 신라의 금제허리띠 유물과 우리 국화인 무궁화다. 흉노는 신라와 밀접했다흉노는 로마, 시리아(페르시아) 연결되어 있었다


페르시아에서 흉노, 흉노에서 신라로 지배층이 이동한 것이다교역을 것인지 약탈을 것인지 모르겠지만 흉노가 그리스-로마와 교류가 있던 확실해 보인다. 몽골에서 출토된 흉노 유적에서는 그리스 신을 조각한 은제 장식물이 나왔다


<흉노 그리스 신 은제 장식. 기원전 1세기~ 기원 후 1세기>


기원전 2세기부터 그리스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로마의 시조는 (혹은 늑대) 젖을 먹고 자랐다. 투르크의 특징인 암컷 늑대 시조 신화가 어떻게 로마에 전해졌을까로마가 멸망시킨 에트루리아가 투르크 계로 추정된다


로마는 동물 창자 에트루리아의 전통과 문화를 많이 받아들였는데 늑대 시조 신화도 포함된 하다로마는 비단교역을 둘러싸고 페르시아의 파르티안 제국과 오랜 전쟁을 했다파르티안 제국은 파르티안 기마법의 이름이 유래된 페르시아 왕조다


<스키타이의 동물 모양 허리띠 고리. 기원전 5~4세기


파르티안 기법은 스키타이 이래 모든 유목 왕조의 특징이다페르시아 제국을 세운 키루스 대제는 개가 목숨을 구해줘 살아남을 있었다혹은 늑대가 목숨을 구해준 시조는 키루스가 처음이 아니다몽골족의 영웅 장가르도 황야에 버려졌을 늑대가 젖을 먹여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청의 시조도 죽을 위기에서 개가 구해준다. 돌궐의 시조도 암늑대가 구해줘 젖을 먹여 키웠다. 키르기스 족에게도 늑대 신화가 있다사지가 마비된 아이를 부모가 황야에 버렸는데 암늑대가 데려다 젖을 먹여 키웠고 나중에 늑대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삼한 혹은 낙랑의 금제 허리띠 고리. 1세기~2 세기 추정.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아이의 후손들이 키르키스다뭔가 복잡해보이지만 내용을 알고 보면 간단하다. 스키타이, 페르시아, 흉노, 선비, 고구려, 돌궐, 위그르, 몽골, 거란, 여진, 모든 기마유목민은 인종과 언어를 제외한 모든 면에서 동일했다. 이어달리기에서 바통 터치하며 달리는 것과 비슷하다


결국 팀이다.  정착을 유목 왕조를 세운 경우가 페르시아, 고구려(백제, 신라), 선비   중국 왕조(북위, 서위, 북주, 동위, 북제 등), , , 유목 중국 왕조이다. 유목 생활을 고집한 경우가 스키타이, 흉노, 돌궐, 위그르, 거란, 여진, 몽골, 만주 유목 제국이다. 


<낙랑 유물과 동일 양식의 흉노 금장 허리띠 장식, 1~2세기>


지배층의 뿌리는 결국 동일 했다는 의미이다. 흉노, 선비, 돌궐, 몽골, 그리고 고구려, 신라 지배층은 비슷한 문화를 공유했다페르시아와 투르크 계인 카자흐와 키르키스는 창세기 신화가 같았다. 


스키타이, 우리 고대 왕조인 삼한과 낙랑, 흉노, 신라, 티베트, 돌궐, 아바르, 몽골의 지배층이 사용한 허리띠 양식만 봐도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큰 틀에서 보면 중앙아시아의 유목 왕조는 모두 하나였다. 그러므로 흉노, 돌궐, 몽골의 주요 유물 발굴지는 동일하다.


<신라의 금제 허리띠와 고리. 5세기.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위대한 지도자의 탄생지나 제사를 지내는 터는 모두 현재의 몽골 헹티 주에 위치한다. 기원전 3세기 평양 근처에서 활동한 삼한과 낙랑의 허리띠 고리는 기원전 5 세기 경 스키타이가 사용한 허리띠 고리와 일치한다. 


또 1세기에서 2세기 경 흉노로 추정되는 세력이 사용한 허리띠 고리와 완전히 같다. 역시 비슷한 구조의 허리띠 고리는 5세기 경 신라 왕조가 사용한 금제 허리띠와 같다. 신라의 지배층은 천으로 허리띠 위에 금제 허리띠 장식을 달아 묶는 방법을 썼다


<티베트 황금 허리띠. 7~9세기>


신라의 경우 이상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지 않게 되어 단단하게 허리띠를 고정할 필요가 없어진 탓이 아닌가 싶다. 신라의 허리띠는 8세기 돌궐의 지배층이 사용한 허리띠와 같다. 


마찬가지로 돌궐 지배층이 사용한 허리띠 고리는 역시 투르크 유목 왕조인 아바르가 사용한 양식과 일치한다아바르는 유라시아 스텝 지역에서 활동한 기마 유목 왕조이다돌궐의 금제 허리띠는 현재 몽골의 국보이다. 


<돌궐 금제 허리띠 장식. 8세기. 국보. 몽골 국립박물관 소장>


돌궐의 금제 허리띠는 13세기 몽골의 지배자가 사용한 허리띠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런 식으로 따라가다 보면 스키타이, 삼한 및 낙랑, 흉노, 신라, 돌궐, 티베트, 아바르, 몽골이 같은 문화를 가진 사실을 알 수 있다.   


돌궐의 금제 허리띠가 발견된 곳은 오논 강이 있는 지역으로 칭기즈칸이 태어난 곳이다 키우기 최적의 장소인 헹티 주의 오논 강변은 흉노, 선비, 돌궐, 위그르, 몽골, 거란, 모든 유목민의 발원지와 동일하다. 


<투르크 아바르가 사용한 황금 허리띠 고리. 8~9세기>


근원지가 동일한 외에 흉노, 돌궐, 몽골은 텡그리 신앙을 믿었다. 같은 늑대 조상 설화를 공유했다. 늑대는 텡그리의 화신이거나 텡그리의 대리자였다. 흉노, 돌궐, 위그르, 몽골의 지배층은 모두 늑대의 후손이었다중앙아시아에 널리 퍼진 늑대 시조 신화, 견조 설화이다늑대 시조 신화가 널리 퍼진 지역에서는 역시 신성했다


< 금동 허리띠 장식, 몽골, 13~14세기>


개는 죽음과 관련된 신성한 존재인 동시에 창세기 신화에 등장하는 인간의 은인이다모든 인간은 밥을 먹을 반드시 개에게도 먹이를 줘야 한다. 이런 문화에서 개를 잡아먹는 것은 신성 모독이었다. 알타이 문화권에서  개고기 금기가 생긴 이유이다조선 시대 이전 우리 민족에게 개를 먹는 개념 자체가 없던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