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사

19. 몽골이 고구려를 늑대라 부른 이유

AnDant 2018. 12. 13. 12:00

메스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문명에는 개를 죽음과 관련된 신성한 존재라고 믿는 신앙이 있었고 그 신앙의 기저에는 알타이 샤먼이 있다고 했다. 수 만 년 전 아마도 늑대가 개로 순화되기 이전에는 그 신앙의 대상이 늑대였을 가능성이 높다.

 

세계 4대 문명 중 오직 황하 문명만 개고기를 식량으로 먹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중국 한족은 늑대를 증오하는 신화를 가졌다.  중국 한족은 푸른 늑대가 흉노라고 믿었다. 유목민의 특성 상 겨울만 되면 풀이 없어 양을 칠 수 없다. 약탈의 계절이다.

 

<여름에 빛나는 천랑성. 폴란드 궁정 화가. 17세기>

시리우스 별은 겨울이 되면 유난히 빛났고 중국 한족은 이 별을 ‘천랑성’ 즉 ‘늑대의 별’이라고 부르며 불길하게 여겼다. 천랑성이 유난히 반짝이면 흉노가 쳐들어오는 저주에 걸렸다는 것이다. 중국 한족은 흉노의 화신인 늑대를 발견하는 즉시 죽였다. 

늑대를 두려워하고 죽이는 건 북방기마 유목민도 마찬가지였지만 여기에도 차이는 있었다. 유목민은 늑대를 신으로 경외하는 한편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혹은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죽였다. 무차별적 살육이냐, 선택적 살육이냐의 차이는 컸다.

<늑대 암각화. 1만 년 전 추정. 알타이 지방. 출처 ekstrembilgi>

 

개고기와 마찬가지로 정체성이 다른 것이다. 고대부터 투르크와 몽골 (흉노), 알타이 문화권에서는 늑대 신앙을 믿었다. 알타이 문화권에서는 늑대 신은 지상의 모든 위험을 경고하고 세상 모든 늑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삿된 것을 쫓는 개의 원조가 늑대인 것이다. 

 

늑대 신은 또한 늑대의 세계, 즉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게 해준다. 다른 세상은 저 세상, 죽음의 세계이다. 늑대 신앙은 신성한 개 신앙으로 발전해 개를 지상의 수호자와 저승의 안내자로 여기는 믿음이 생겼다.

<늑대 조각. 나무. 알타이 지역. 기원전 3세기. 국립 에르미타시 미술관>


유목민 특정 왕족들은 마치 옥새와도 같이 특별한 개를 키울 자격이 있었다. 특별한 개는 사자개로 티베트탄 마스티프, 페르시안 마스티프, 몽골리안 마스티프, 삽살개, 페키니즈, 라사압소, 시추이다. 


앞서 늑대 신앙은 다시 수컷 늑대 신과 암컷 늑대 여신을 믿는 신앙으로 나뉘었다. 투르크와 흉노 간의 투쟁이다. 사실 흉노에서 투르크가 나왔으므로 구분은 무의미하지만 둘은 죽어라 싸웠다. 흉노는 끈질기게 투르크를 공격해 씨를 말리려 했다 

<스키타이, 개 모양 황금 장식, 기원전 4~3세기>

수컷 늑대 시조 신앙은 흉노에서 시작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최초의 흉노 왕의 딸이 천상에서 내려온 늙은 늑대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자손이 번성해 흉노 제국을 세웠다


수컷 늑대 설화는 모든 몽골 민족에게 적용된다. 흉노, 선비, 유연, 고구려, 백제, 몽골, 고구려, 발해는 그러므로 모두 친척이다. 흉노에서 나온 몽골은  다시 자신들만의 늑대 신앙을 믿었다


모든 몽골인은 푸른 늑대와 암사슴의 후손이다. 몽골의 왕은 흉노 아틸라와 마찬가지로 푸른 늑대였다. 왕의 사위는 늑대 사위였다. 몽골의 영웅 장가르가 황야에 버려졌을 늑대가 젖을 먹여주었다.

<늑대라고 불린 흉노 아틸라. 5세기>

 

그런 몽골인이 고구려를 '보르키'라고 불렀다. 늑대라는 뜻이다. 보르키는 신을 뜻하는 종교적 단어이기도 했다. 늑대가 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고구려는 몽골에게 특별했다. 고구려를 이은 고려를 지배한 몽골이 고려 왕을 황제의 사위로 삼은 이유이다. 

 

몽골은 고려를 친척이라 여긴 것이다. 늑대 여신 신앙은  6세기 경부터 본격적으로 패권을 잡은 돌궐과 위그르가 강력하게 믿었지만 그보다 훨씬 전인 기원 2세기 경부터  투르크 계인 오손과 로마 건국 신화에 등장한다. 오손의 곤막은 어려서 버려져 늑대 젖을 먹고 자라 제국을 이룬다.

<에트루리안 늑대 모양 테라코타 용기. 기원전 550–525>


로마의 늑대 시조 신화도 투르크에서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강가에 버려진 로물루스 형제 역시 암컷 늑대 젖을 먹고 자라 로마 제국을 세웠다. 로마의 늑대 여신 신앙은 투르크 민족으로 추정되는 에트루리아 인의 신화를 정복국 로마가 흡수한 듯 하다.  

<로마의 동전. 로마의 시조와 개 혹은 늑대. 기원전 137


기원전 2세기 로마의 건국 세력은 에트루리아의 문화와 종교를 거의 받아들였는데 중에 늑대 시조 설화도 포함된 하다. 기원전 6세기 에트루리안 테라코타 용기에는 늑대 여러 마리가 장식되어 있다. 늑대나 개를 사용한 에트루리안 유물은 이 밖에도 다수 발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