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알타이 어족의 언어를 사용한다. 시베리아-알타이 샤먼을 받아들였다. 알타이와 연관이 깊다. 알타이 샤먼은 텡그리 신앙으로 정의할 수 있다. 알타이 산맥 자락인 텐산 산맥의 신성한 봉우리 이름도 '칸 텡그리'이다.
칸 텡그리 봉우리 바로 옆이 알타이 산맥이다. 아래가 티베트다. 텡그리 신앙은 산악 숭배 신앙이자 하늘 신앙이다.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불교, 이슬람교 등 온갖 종교를 받아들인 돌궐과 위구르에서도 언제나 최고신은 ‘하늘’이었다.
<텐산 산맥의 칸 텡그리 봉우리 1931년>
텡그리는 하늘의 아들이기도 했다. 하늘의 뜻을 받아 정권을 잡은 자가 곧 텡그리이다. 흉노 왕은 텡그리이자 텡그리의 아들, 혹은 늑대였다. 몽골 왕도 텡그리이자 늑대였다. 알타이 샤먼과 텡그리를 각각 우리 식으로 표현한 것이 하늘 사상과 단군이다.
흉노의 왕 아틸라, 몽골 제국의 칭기즈칸 모두 자신들이 텡그리의 대리자였다. 그들은 텡그리의 이름으로 지배했다. 모든 북방기마유목 왕조는 텡그리의 이름 아래 단합하여 부족을 이루고 제국을 이루었다. 단군은 왕이자 한국 샤먼의 기원이다.
<17세기 시베리아의 샤먼과 개>
중앙아시아에서 샤먼은 지배계급이었다. 흉노, 돌궐, 몽골과 같은 양식의 금제 허리띠를 사용한 고대 신라 왕은 무당이었다. 고대 알타이 샤머니즘의 무당은 존중받았다. 무당은 중요 정책 결정에 참여했으며 전쟁터에도 따라가 승리를 기원했다.
유럽을 공포에 몰아넣은 흉노 왕인 아틸라는 하나부터 열까지 시시콜콜 무당에게 물어 보고 결정했다. 돌궐을 방문한 비잔틴 사절단이 본 미래를 예언하는 사제들은 무당이었다. 칭기즈칸도 항상 무당을 끼고 다니며 모든 사안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19세기, 20세기, 현대의 알타이 샤먼>
거란과 여진과 청 왕조까지 모든 유목 왕조에서 무당은 하늘의 대리인이자 왕의 조언자 역할을 했다. 칭기즈칸 후손은 황금씨족이었다. 텡그리의 대리자인 칭기즈칸 일족의 명령은 텡그리의 명령이었다.
칭기즈칸 시대 명령 불복종은 사형이었다. 하늘(텡그리)의 명을 어겼기 때문이다. 초원의 지배자(칸)들은 텡그리 신앙 외에도 꽤 여러가지 장치를 이용해 자신들을 신격화시켰다. 주로 이야기를 만들어 퍼트렸는데 신격화 시키는 이야기 구조 안에 늑대와 개가 등장한다.
<유럽을 공포에 몰아넣은 흉노 왕 아틸라. 5세기>
암늑대, 혹은 수컷 늑대와 결혼한 인간의 자식이 시조인가 하면 푸른 늑대, 하얀 늑대와 결혼한 인간의 자식이 시조이다. 이런 식으로 흉노와 투르크(돌궐, 위그르 등)의 지배자, 칭기즈칸 일족은 늑대의 후손이었다.
시조 할아버지가 늑대이므로 후손(칸)도 늑대였다. 흉노의 아틸라는 용맹하고 지혜로운 늑대였다. 몽골제국에서 칸의 사위는 늑대의 사위로 불렸다. 칸이 늑대였기 때문이다. 늑대는 영웅을 전쟁에서 승리도록 인도한다. 개가 구해준 영웅이 시조가 되기도 한다.
<고구려 고분 벽화 속 단군과 삽살개>
왜? 늑대와 개가 신성하기 때문이다. 알타이 샤먼을 믿는 지역에서는 죽어서도 현생과 같은 삶을 산다고 믿었다. 그 중요한 저승으로 가는 길을 개가 안내했다. 혹은 천당으로 갈지 결정하는 역할을 했다.
고구려 무덤 벽화 예불도에는 단군과 함께 삽살개가 그려져 있다. 단군도 초원의 왕족이었으니 신성한 개를 키울 자격이 있던 것이었다. 티베트탄 마스티프, 페르시안 마스티프, 몽골리안 마스티프, 삽살개, 파사구, 페키니즈, 라사압소, 시추 등 조상이 동일한 신성한 개를 신성한 초원의 왕족이 키운 이유이다.
<아즈텍-마야 문명의 죽음의 신인 개. 15세기>
이 신성한 개들은 마치 옥새와도 같았기에 청 황실에서 황족 이외의 인간이 보았다간 죽였다. 청 왕조가 망했을 때는 죽여서도라도 적의 손에 넘길 수 없었다.
하지만 알타이와 중앙아시아의 샤먼이 아닌 경우 개고기가 금기가 아닐 수도 있었다. 다른 지역의 샤먼일 경우 별 부담 없이 개고기를 먹을 수 있다.
나이지리아 일부 지방의 샤먼에서는 개 잡아먹는 걸 전통으로 여긴다. 아즈텍-마야 문명의 샤먼에서도 개는 죽음의 신과 관련된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와와의 동족인 테치치를 전용 개 농장에서 키워 잡아먹었다. 베트남과 미얀마 샤먼에서도 불교의 영향을 받기 전까지는 개를 먹었다.
<멕시코의 테치치. 기원전 3세기~2세기>
태평양 폴리네시아 섬의 샤먼에서도 개고기를 먹었다. 개고기 문명을 발달시킨 중국 한족의 샤먼에서도 물론 개를 먹었다. 중국 샤먼이 복날 개피를 문에 발라두면 악귀가 도망간다고 믿었다. 개피로 부적을 쓴다고 한 내용은 한 왕조 대 사마천이 쓴 『사기』에 기록되었다.
<필리핀 원주민의 개 도살 장면. 1904년>
중국 한족이 쓴 『사기』는 단군의 후손인 조선인을 통해 우리 역사가 되었고 현재 우리 조상이 복날 개고기를 먹은 근거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동국세시기」처럼 말이다. 그런데 고조선은 한나라 무제에 의해 멸망 당했다.
우리 조상은 단군인가? 한 무제인가? 사마천은 또한 『사기』에 흉노의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나라 유방이 공주를 오랑캐에게 바치는 내용을 기록했다. 이것이 중국과 오랑캐의 관계였다. 모든 중국 왕조는 화친을 이유로 중국 공주를 흉노, 오손, 돌궐, 위그르, 티벳에 시집보냈다.
<기원전 2세기 경 흉노 왕에게 시집가는 왕소군. 남송 시대 작품>
막대한 지참금은 덤이었다. 4대 미인 왕소군 역시 흉노 선우에게 보내졌다. 모든 투르크, 몽골 계 사람은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단군 시대부터 이어온 우리 무교에서도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이 개고기다.
약 1600년 전 전해진 불교에서도 개는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동물이다. 금기와 금기가 만났다. 이승만 시대까지 가장 비천한 사람들이 숨어서 개고기를 먹을 수 밖에 없던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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