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 초에서 8세기 사이 당나라 왕족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허리띠 장식은 호탄 산 옥으로 만들었다. 허리띠 문양을 자세히 보면 중앙아시아 유목민인 듯한 악사가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중앙아시아 타림 분지에 위치한 호탄은 지금의 위그르 자치구 허텐 지역에 있던 도시 왕국이다. 우리나라에도 그 명성이 자자할 정도로 호탄 산 옥은 아주 유명했다. 호탄 하면 옥이었다.
<투르크 호탄 산 옥으로 만든 옥 허리띠 장식, 당나라, 7세기초~8세기>
당시 당나라 전역에는 호탄 산 옥이 크게 유행했다. 여성들은 호탄 산 옥으로 빗을 만들었고 고위 관리들은 호탄 산 옥으로 허리띠 장식을 만들었다. 호탄, 쿠차, 고창 등 실크로드 길목에 있는 거점 도시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공교롭게도 세 도시 모두 현재 위그르 지역에 위치한다. 위그르 타림 분지를 중심으로 남쪽이 호탄, 북쪽이 쿠차와 고창이었다. 언뜻 굉장히 멀어보이지만 중앙아시아 대륙 전체 면적으로 따지고 보면 이 정도 거리는 이웃 사촌이다.
<7세기 초~10세기 초 중앙아시아와 중국의 국제 관계>
패권을 잡은 모든 기마 유목 왕조는 반드시 이 지역을 지배했다. 당 시기인 7세기 초에서 10세기 초, 이 지역을 지배한 왕조는 늑대 머리 깃발을 휘날리던 돌궐과 위그르였다.
호탄 산 옥으로 만든 허리띠가 당나라에서 유행하고 있었을 때도 호탄과 쿠차는 돌궐과 위그르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이 호탄 산 옥을 수입해 당나라 전역에 유통시킨 사람들이 소그드 상인이었다. 소그드 상인은 국제 문화 교류 전문가였다.
<위그르 고창 왕국에서 활동하던 소드드 상인, 9세기>
소그드 상인이 가는 곳마다 그들의 문화와 종교가 따라갔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개숭(배하는) 파였다. 5~6세기 이후 그들이 믿은 종교는 마즈다 교(조로아스터교), 마니교, 불교, 경교(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였다.
주르르 늘어 놓으니 뭔가 되게 많아 보이는데 결국 마니교 하나로 정리된다. 조로아스터교와 불교, 기독교를 섞어 놓은 것이 마니교이기 때문이다. 마니교는 시리아 교회 계통인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와 매우 밀접하다.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가 중국으로 전해진 것이 경교다. 중국 무협 소설에서는 선악 구분이 분명하다. 정파와 사파가 있다. 배화교(조로아스터교)와 경교는 언제나 사파의 대표 주자로 나온다. 그만큼 원한이 깊다는 얘기다.
<위그르 고창 왕국의빚 독촉 편지. 마니교 신자가 소그드 글자로 작성, 9~13세기>
어느 날 갑자기 종교도 다른 외국인들이 막 들어와서 상권 다 장악하고 돈놀이까지 한다면 미워할 수밖에 없다. 발견된 유물에 의하면 마니교 신자인 소그드 상인은 사채 놀이도 같이 한 것 같다.
한편, 경교는 기독교인지라 기독교 역사에 포함된다. 그런데 초기 기독교를 연구하는 종교학자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종교학적 교리가 아닌 역사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마니교와 경교는 같다.
<위그르 고창 왕국의 위그르 귀족, 8~9세기>
이름이 달라졌을 뿐이다. 아후라 마즈다가 조로아스터의 몽골 식 이름이듯 네스토리우스파와 경교, 마니교는 같다. 위그르 지역을 여행한 탐험가와 학자들은 14세기 경교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도 마니교와 경교의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마니교가 당나라에 전해질 때 경교라는 이름으로 정체를 숨긴 이유는 무시무시한 박해 때문으로 추정된다. 3세기 처음 마니라는 사람이 마니교를 만들었을 때 페르시아 제국 황제는 기꺼이 포교를 허락해 주었다.
<페르시아 파르티아 제국이던 파키스탄 지역에서 발견된 그릇. 파르티안 기법. 5세기>
마니의 어머니가 페르시아의 파르티아 제국에서 아주 높은 신분이었다는 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니 집안의 뒷배가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좀 무시한 느낌이다.
"뭐? 마니교? 그게 뭔데? 그냥 하게 둬." 하는 느낌. 마니교는 기존 종교인 조로아스터교, 초기 기독교, 불교를 모두 깠다. 마니가 이 종교들을 비판한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신의 계시를 받았는데 니들 다 틀렸대."
"종교 지도자들이 신과 인간 사이에 껴서 제 멋대로 이상한 종교로 만들어 버렸대. 이제 걔네 버리고 내가 전하는 진짜 신의 말씀을 듣고 나를 따라와.” 이거였다. 간단한 만큼 파격적이었다.
<위그르 고창 왕국의 마니 교회 터에서 발견된 마니교 신자, 10세기>
마니는 조로아스터와 기독교, 불교를 완전히 새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기존 종교가 발끈한 건 당연했다. 인류 이래 모든 종교는 권력과 결탁한다. 원시 샤먼조차 종교 지도자는 최고 권력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마니교가 커져도 너무 커졌다는 거였다. 마니가 죽은 후 마니교는 어마어마한 기세로 로마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을 휩쓸었다. 로마 카톨릭 교리의 기초를 만든 아우구스티누스 조차도 원래는 마니교 신자였다.
<위그르 고창 왕국에서 발견된 마니교 신자, 10세기>
페르시아 제국 황제 중에도 마니교 신자가 있었다. 마니교가 너무 커지자 페르시아 제국은 당연히히 위기를 느꼈다. 포교 허용에서 금지로 정책이 바뀌었고 마니교 신자는 무조건 죽였다.
로마 제국에서는 콜롯세움에서 던져 사자 먹이로 주는 처형 방식을 택했을 것이다. 마니교 신자라고 하면 죽으니 마니교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똑같은 종교로 위장할 수 밖에 없다.
<당나라 황실에서 키우던 페키니즈, 9세기>
그 쌍둥이 종교가 시리아 안티오크 파 기독교인 것 같다. 313년 로마 제국 황제가 기독교를 인정해 주기 전까지 로마 제국 내에서 기독교는 마니교와 마찬가지로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페르시아 제국에서는 무사했다.
초기 기독교 중 유독 페르시아 제국과 가까운 시리아 안티오크 파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파가 발전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시리아 안티오크 파 기독교가 4세기 이후 네스토리우스 파가 된다. 네스토리우스 기독교가 중국 당나라에 전해진 경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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