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38. 개 (머리를 한) 새와 진시황 개 자식 설

AnDant 2019. 2. 7. 12:00

중국 도교는 신선이 되어 도원경에 사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승과 저승 말고 제 3세계인 선계가 있고 그 곳이 무릉도원이다.

고구려 도교과 중국 도교의 영향을 받았느니 고구려 고유의 도교라느니 설이 분분하지만 죽음에 대한 관념으로 본다면 중국 도교와 고구려 도교는 분명히 달랐다. 

<고구려 벽화 중 사신도, 6세기~7세기 초반>

고구려인은 선계에 갈 필요가 없다. 저승에 가서도 현세와 똑같은 삶을 산다고 믿었다. 현재 32평 아파트에 산다면 별 일 없는 한 저승에 가서도 32층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다.

부귀영화를 누렸을 고구려 지배층의 경우 저승이 곧 천국이었다. 고구려 고분 벽화는 저승가서 살 집 계약서였다. "이렇게 이렇게 해주세요"라는 요구사항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안악 3호분 벽화 속 부엌을 서성이는 개 두 마리, 고구려, 357년>

고구려 고분 벽화 속에 개를 그린 건 이사갈 때 키우던 개도 데려가는 것과 같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승 가서 먹을 개고기 도시락이 아니다.  

한편, 고구려 고분 벽화 속 사신도가 우리 도교의 시초라는 설도 있다. 천지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을 지키는 신이 존재한다는 개념은 기원전 3세기 전한 시기에도 이미 존재했다.

<주작과 백호가 그려진 기와, 전한, 기원전 206~서기 9년>

이 시기 기와를 보면 청룡과 백호가 아주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적어도 기원전 3세기 중국에는 사신도 개념이 존재했다.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중국 도교나 고구려 도교나 마찬가지로 흑해 연안의 고대 토속 종교에서 온 것 같다. 텡그리 샤먼이다. 그 증거를 사신도 중 주작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핀 인장, 히타이트, 키푸로스 출토, 기원전 1550-1125년>

공작 혹은 봉황이라고도 해석하는 이 새는 고대 이란과 아라비아 지역에서는 피닉스 혹은 불새로 불렸다. 날개를 한 번 펴면 천지가 진동하고 코끼리 한 마리쯤은 번쩍 움켜쥐었다는 이 새는 원래 머리가 개다.

그러니까 “이런, 개 새...” 다. 머리는 강아지에 몸은 새인 이 요상한 새는 시시때때로 변신을 해 사람을 더 헷갈리게 한다.

<불새가 그려진 토기, 히타이트, 키푸로스 출토, 기원전 1300~1200년>

그냥 새(공작 같은), 날개 달린 머리만 남자인 새, 날개만 달린 남자의 얼굴과 몸, 코뿔소 머리에 용의 발톱을 가진 날개 달린 새, 사자 몸통에 날개 달린 새, 개 머리에 날개 달린 새 등등 종류도 많다.

이 모든 ‘새’는 조로아스터교에서 믿는 빛의 신을 상징하거나 신의 대리인 혹은 지상의 왕을 상징한다. 고대 바빌로니아나 히타이트, 앗시리아 유물을 보면 수염달린 왕 곁에는 반드시 새가 있다.

<게임 상자에 조각된 그리핀,히타이트, 키푸로스 출토, 기원전 1250~1050년>

‘개 새’로 상징되는 빛의 종교 속 신의 말씀을 조로아스터가 찰떡같이 알아듣고 글자로 적은 시점부터 조로아스터교라는이름이 된 것이다. 딱 이 시기 개가 목숨을 구해준 키루스 대왕이 세운 아케메네스 페르시아가 세워졌다.

 

쿠테타를 일으켜 새 왕조를 세우면서  기존 ‘빛의 종교’를 조로아스터교라는 종교로 만들어 통치한 것이다. 즉 조로로아스터라는 사람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개 머리 새’를 믿는 빛의 종교는 이미 존재했었다.

<바퀴달린 청동 용기 속 날개 달린 남자, 히타이트, 기원전 1250~1100년>

그 증거로 아케메네스 페르시아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빛의 종교 ‘개 새’ 상징은 흑해 연안과 이란, 터키, 키프로스, 아라비아, 이집트 지역에서 넓게 나타난다.

이 ‘개 머리를 한 새’가 고구려에서 표현된 것이 고구려 벽화 속 주작이고 중국 대륙에 전해진 것이 기와에 새겨진 주작이다.  ‘개 머리를 한 새’ 종교를 믿은 지역에서 개고기는 절대 먹지 않는다.

<무릎 혹은 팔 보호대 속 피닉스, 기원전 664~525년>

그런데 중국의 경우는 다른 지역과 달랐다. 원인은 중국이 가진 근본적인 비극에 있었다. 당 왕조 이전 중국은 저주 받은 땅이었다. 중국은 끊임없이 외적(북방기마 유목민)의 침입을 받았다.

기병과 보병의 차이는 군사력의 차이를 만들었다. 수·당 왕조가 돌궐 위그르 연합왕조라고 하는 설이 있는데 사실 중국 역사에 순수 중국 한족 왕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피닉스가 새겨진 금 조각들, 아케메니아 페르시아, 기원전 5~4세기>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은 아버지가 불분명하다. 진시황의 스폰서인 여불위가 아버지라는 설이 파다하다. 초나라 출신 여불위는 장사에 능해 천금을 쥔 부자였다.


장사와 교역은 북방기마 유목민족의 특징이었다. 물건을 교역하려면 반드시 호탄과 쿠차가 있는 비단길을 통과해야 한다. 비단길은 당시 흉노가 장악하고 있었다.

<날개 달린 개, 이란 쿠샨 왕조, 1~2세기>

진시황과 여불위가 살던 초나라 지역 자체가 고대부터 흉노와 관련 있다. 초나라는 중국 전설인 삼황오제 시절 고양 씨가 세운 나라다.

고양 씨는 또 고신 씨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고양 씨, 고신 씨 모두 치우 천황과 관련 있다. 미친 선비족 왕조 고 씨 패밀리처럼 고구려 고(高) 자를 쓴다.

<묘족의 신 치우 천황과 닮은 금 조각, 아케메니아 페르시아, 기원전 5세기>

이 중 고신 씨의 사위가 개였다. 반호라는 이름을 가진 고신 씨의 반려견은 적을 죽인 공으로 공주와 결혼해 일가를 이루었다. 그게 초나라 묘죡이다. 그러므로 묘족은 모두 강아지 자식들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스토리다. 흉노의 공주가 늑대와 결혼해 그 후손이 나라를 이루었다는 이야기 구조와 같다. 묘족이 흉노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