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만주 벌판 개 장사는 중국 공산당 (3) 영화 '황해'를 보면 조선족 조폭은 청부살인을 하거나 개 장사를 하거나 개를 죽인다. 얼마전 주식 사기로 감옥에 간 이 모 씨의 부모를 잔인하게 죽인 범인들도 조선족 청부 살인자였다. 한국에서 개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 사람들도 조선족이니 어느 정도 실사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 할 수 있다. 영화에서 만주 개 장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조선족은 1945년 이후로는 중국인으로 중국 공산당의 관리를 받는다. 중국 공산당 2019.03.23
55. 만주족을 학살한 범인은...조선족? (2) 조선족이 본격적으로 개고기를 먹게 된 것은 공식적으로는 1945년 이후다. 조선족의 개고기 전통은 만주족이 학살된 후 만주에 새로 생긴 식문화다. 20. 1931년 일제가 만주를 중심으로 중국을 침략하자 내전을 하던 모택동의 중국공산당과 장개석의 국민당은 일시 휴전을 하고 손을 잡았다. 그들의 적은 일본군이었다. 여기에 조선의 독립운동가들도 합세해 가열차게 일제와 싸웠다. 만주를 중심으로 중국 공산당 + 중국 국민당 + 조선 독립운동가들의 연합체가 형성된 것이다. 일제는 만주족과 손을 잡았다. 친일과 반일로 나뉘어 만주인과 일본인이 한 편이었고 중국 공산당, 중국 국민당, 조선독립운동가들이 한 편이었다. 21. 국˙공 내전에서 중국공산당이 승리하면서 복잡한 조선 독립운동가 계파 중 중국 공산당 파가 만주.. 중국 공산당 2019.03.21
54. 왜 조선족은 개고기를 먹게 되었나?(1) 조선족은 현재 중국에서 개고기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집단이다. 그들이 언제부터 개고기를 먹게 되었는지, 조선족과 한국의 개고기 식용 문화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게 된다. 1. 청 왕조에는 개 도살 금지법이 있었다. 왜? 청 시조 누르하치의 생명의 은인이 개였다. 2. 중국 역사 상 가장 광활한 영토를 지배한 만주족은 채 백만 명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최소한의 인원만 만주에 남겨두고 중국 대륙으로 모두 이동해 중국을 다스렸다. 3. 청 왕조의 성지인 만주는 사람이 살지 않는 보호 구역이 되었다. 만주 출입 금지가 풀린 것은 1911년 청 왕조가 망한 후였다. 그전까지 만주는 허허벌판이었다. 4.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며 청나라가 조선의 지배력을 상실했다. 일부 조.. 중국 공산당 2019.03.19
53. 조선족 조직폭력배와 한국의 개고기 시장 병자호란 후 소현세자가 끌려간 심양은 청나라 만주족 땅이었다. 1945년 일본 패망 후 만주족은 중국 공산당에 의해 집단 학살당했고 만주족이 사라진 만주를 조선족이 차지했다. 영화 '마지막 황제'의 푸이가 정말 마지막으로 황제 노릇을 한 만주는 우리나라 삽살개 멸종과도 연관이 있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며 만주를 지배한 일제가 조선의 개를 죽여 개 가죽 옷을 만들어 군복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역사 상 식민지 토종 개를 멸종시킨 것은 일제가 처음이다. 내선일체 정책에 따라 조선 개도 일본 개와 같아야 했다. 일본 아키타 견과 가장 닮은 진도개가 순종으로 정해졌고 나머지 개들은 잡종이 되었다. 기마 유목 왕조에서 옥새와 같이 신성하게 여겨지던 삽살개도 잡종으로 분류되었다. 조선 개 학살을 위해 조선견.. 중국 공산당 2019.03.16
52. 개고기 먹인 조선, 마녀 사냥한 유럽 조선 지배층은 오랑캐 청나라의 신하 나라가 된 것이 수치라며 자살을 한다는 둥 난리를 쳤다. 그러나 청나라 사신이 오면 왕이 버선발로 달려가 맞은 것이 조선의 현실이었다. 이런 표리부동 한 짓을 한 이유는 단 하나다. 체제 유지. 공자의 중국을 이어 받았다며 고려 이전의 역사를 지워버린 조선은 중국이 없다면 존재 의미가 없었다 그러니 왕가끼리 통혼을 하자는 등 손을 내밀며 다가오는 청과 거리를 두며 명나라 황제 제사라도 몰래 지내야 했다. 잘못했다가는 애써 지워버린 고려 이전의 한민족의 역사가 되살아날 판이었다. 더 이상은 못 살겠다, 반항하는 백성들을 찍어 누르는 수단으로도 소중화주의는 쓸만했다. 명나라까지 망했으니 이제 순수한 중국은 조선 하나 남았다는 것이 송시열이 주장한 소중화주의다. 소중화주의로.. 조선 2019.03.14
51. 조선 공주, 청 황실의 정비가 되다 효종이 송시열의 바지사장이 된 이유는 조카 대신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약점이 많았다. 그래서 효종이 죽고 대비가 상복입는 기간을 두고 피터지며 싸워야 했다. 광해군이 쫓겨나지 않았다면? 소현세자가 죽지 않았다면? 조선 역사는 달라졌을 테지만 청 왕조 3대 황제가 될 뻔한 섭정 왕 도르곤이 돌연사 하지만 않았다면 조선 역사는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다. 17세기 망하는 대신 운 좋게 살아난 조선 왕조에게 가장 거슬리는 상대는 역시 청나라였다. 이 시기 청나라와 조선의 가장 큰 차이는 개고기로 대변되는 정체성이었다. 청 태조 누르하치는 죽을 뻔한 위기에서 개가 목숨을 살려줘 훗날 청 왕조를 세울 수 있었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과 같은 이야기 구조다. 신성한 개가 하늘이 정한 새 지도자.. 조선 2019.03.12
50. 소현세자는 왜 아버지에게 살해되었나? 청나라는 인조를 생포해 머리를 찧게 하는 항복을 받는 선에서 병자호란을 끝냈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포로로 끌고 가기는 했지만 청나라가 다른 전쟁에서 한 짓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은 초원의 패권을 다툴 당시 몽골족 남자는 설령 아기일지라도 죽였다. 죽일 때도 그냥 안 죽였다. 나무 말에 앉힌 후 정수리부터 정을 박아 죽였다. 적에게 공포심을 주는 사형 퍼포먼스다. 반역을 꾀한 위그르를 응징하고 끌고 온 포로들 행진을 보면 당시 청 왕조가 포로취급을 어떻게 했는지 보인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포로들을 동물원 구경거리로 삼았다. 인조는 전쟁 중 포로로 잡혔다. 원래대로라면 인조도 청나라로 끌려가 저 꼴을 당했어야 했다. 심지어 위그르는 저 굴욕을 당하고 2년 뒤, 건륭제에.. 조선 2019.03.09
49. 조선의 중국 사대주의와 만주 벌판 개장사 선조와 조선 지배층은 임진왜란이 터지자 명나라 국경으로 튀었다. 당연히 명나라가 망명을 허락할 거라고 여겼지만 끝내 입국이 허락되지 않았다. 부모 나라로 섬긴다고 설레발을 떨더니 실제로는 총독부 관리 취급도 못 받은 것이다. 조선 백성들은 각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싸웠다. (소년과 개, 신광현, 19세기, 조선> 이순신 장군을 제외하고도 전쟁사에서 임진왜란과 같은 예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성을 버리고 성주가 도망을 친 상황에서 농민과 노예들이 곡괭이 들고 적과 싸운 격이다. 그 난리 통에 선조는 또 다 늙은 나이에 어린 정비를 맞아 낳은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다. 의병들과 함께 싸워 백성들의 신망을 얻은 광해군을 중국 조선 총독부는 견제했다.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광해군은 서자라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2019.03.07
48. 중국 조선 총독부 조선 왕조, 개고기는 전통? 고구려는 고조선을 이어받았다고 했다. 고려는 고구려를 이어받았다고 했다. 사실 고구려 국가체제가 그대로 이어진 건 발해다. 어쨌든 이 주장대로라면 한민족의 역사적 정통성은 고조선→고구려→고려로 이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고려를 멸망시킨 조선은 중국을 이어받았다고 했다. 이해가 가는가? 왜 뜬금없이 고려 다음에 중국인이 한반도를 지배하게 됐는지? 중국인이라고 자처한 자들이 세운 것이 조선 왕조다. 중국의 조선 식민지 총독부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명나라가 부모 나라이며 공자가 신이고 개고기가 전통 음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선 지배층인 양반과 백성을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조선 지배층은 예를 행하는 곳이 바로 중국이며 조선 땅은 중국인에게 가르침을 받아 예를 아는 곳이라고 했다. 즉, 자기들은 .. 조선 2019.03.05
47. 한 큐에 신선이 될 수 있던 한국 도교 고려 유물을 보면 유독 청동 거울이 많다. 잘 닦으면 또렷이 보이는 은제 거울도 아니고 청동 거울이다. 청동기 시대부터 거울은 왕을 상징하거나 제사에 사용했다. 교역을 많이 한 고려 시대 청동 거울도 제사에 사용했다. 배를 타기 전 무사 항해를 기원하기 위해 반드시 청동 거울을 바다에 던졌다. 청동 거울을 던지던 고려의 제사는 조선 시대 제사와는 다르다. 유교가 한반도에 들어오기 이전 고대부터 존재한 한민족 고유의 도교와 무교, 불교가 합쳐진 형태의 제사라고 본다. 조선 지배층은 전통 도교 뿐 아니라 1392년 조선 건국 이전의 역사를 통째로 날려버렸다. 조선 지배층에게 반만 년 역사 중에 단군은 중국에게 가르침을 받은 기자 조선부터 시작된다. 고구려·백제·신라·통일신라는 존재조차 하지 않은 역사이고 고.. 한국 속 유목사 2019.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