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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개를 가축에 포함시켰나?(2)

[20] 2000년 7월. 안용근 『한국인과 개고기』 발간. → 내용 : 개고기는 한국 전통 음식이다.※ 안용근 교수는 육견협회 고문. 이 책 내용은 2004년 "한국정책학회" 보고서에서 대부분 인용. "한국정책학회" 보고서는 농림부 개고기 합법화의 근거가 됨. ※ 안용근 개고기 쇼핑몰 창업에 관여. (2003년) [21] 2001년 5월 동물자유연대 창립. 대표 : 조희경 [22] 2001년12월 20일. 국회의원들과 각계 인사들이 '개고기 불간섭 선언'. → 효과 : 한국 개고기 반대하면 한국의 전통을 무시하는 다문화 반대론자가 된다. 서양 동물보호단체 사실 상 적극적 개입 포기. ※ 자, 이제 남은 건 국내 동물보호단체 !! [23] 2001년 12월 28일. '축산물가공처리법 중 개정 법률 안'(..

개고기 문제 2019.01.08

누가 개를 가축에 포함 시켰나? (1)

한국 내 식용견 수 약 6000만 마리.개 농장주는 농가지원금으로 개 농장 설립. 기업형 프랜차이즈 개농장 성행. 아무도 한국 개를 보호하지 않는다. 누가 책임질 것인가?누가 개를 가축에 포함 시켰나? [1] 한국에는 강력한 개고기 금기가 있었다. ※ 알타이 샤먼인 무교 영향. [2] 1907년 개고기는 한국에서 엄격히 금지된 식품이었다. [3] 1910년 일본 식민 지배. 천주교와 기독교 포교 허용. 한국 기독교는 전 세계 기독교 중 유일하게 개고기를 먹는다. ※ 천주교 개신교는 무교와 대립. [4] 1945년 8월. 미국에 의해 일본 식민지 해방. [5] 1948년. 이승만 대통령 취임. (종교 : 개신교)※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6] 1954년도 한국에는 개고기 금지법이 존재. [7] 북한의 김..

개고기 문제 2019.01.05

28. 개 전용 사원이 있던 당나라

삼국 중 유목 전통을 가장 충실히 지켰고 신라 왕족만 키울 수 있는 삽살개가 있던 것으로 보아 신라는 명백히 개숭(배하는)파였다. 성골이 끝나는 시점인 7세기까지는 개고기 먹을 일이 없었다. 통일신라의 국교는 불교였다. 10세기에 세워진 고려도 불교였다. 역시 개 먹을 일이 없다. 가끔 선승인 뭐니 하며 개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하는 땡중이 있다. 헛소리다. 부처님이 콕 찝어 개는 절대 먹지 말라고 하셨다. 적어도 14세기 건국된 조선 시대 전까지 우리 민족에게 개고기라는 단어는 불길한 단어였다. 그렇다면 신라는 왜 당나라와 일본에 굳이 개를 배에 실어 보냈을까? 신라 계림로 황금 보검처럼 국교 차원에서 두 나라 왕족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 정세 상 공식적으로..

27.신라가 일본에 개고기를 수출했다고?

2001년 개고기 불간섭 선언 이후 한겨레, 오마이뉴스, 중앙일보, MBC 등 온 언론이 하나가 되어 주장한 것처럼 우리 조상이 농경민이라면 신라 토우 인형에게는 고대 애니미즘적 의미밖에 부여할 수 없다. 다복을 기원하는 고대 토속 신앙의 상징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신라가 유목 왕조였다면 실제 신라의 성 문화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성 행위는 신성한 혈통을 계승하기 위한 신성한 의식이었다. 유목민의 성 도덕은 농경민과 달랐다. 유목민은 일상이 전쟁이었다. 약탈혼도 흔했다. 태어난 아이를 두고 “이 애가 내 애 맞아?”라고 따지는 건 불가능했다. 칭기즈칸 큰 아들 이름은 주치다. 손님이라는 뜻이다. 칭기즈칸 부인이 납치당한 기간에 생긴 아이였다. 조선 시대처럼 정절을 잃었다고 여자를 죽이고 열녀문을 세워..

26. 왜 왕소군 아들은 흉노 왕이 되지 못했나?

전쟁에서 져 죽을 뻔한 위기에서 흉노 왕비에게 거액의 뇌물을 주고 풀려난 한나라 유방은 막대한 조공과 함께 공주를 흉노 왕에게 시집보냈다. 이후 왕소군을 비롯한 한나라 공주들은 줄줄이 흉노 왕에게 시집가야 했다. 고조선을 멸망시킨 철천지 원수, 한 무제도 조카 딸을 흉노의 경쟁자인 오손 왕에게 시집보냈다. 줄줄이 시집을 간 한나라 공주들은 줄줄이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이 많은 아기들 중에 흉노 왕이 된 왕자는 한 아이도 없었다. 대신 전한(기원전 206년~기원 후 8년) 말기 흉노는 한나라 공주가 낳은 왕자를 앞세워 한나라를 공격했다. 한나라 공주의 아들이니 정당한 후계자라는 것이다. 왜 흉노에서는 후계자라 나서지 못하고 한나라에서는 왕위계승권을 주장했을까? 한나라는 부계 사회였다. 아버지가 왕이면 엄..

25. 선덕여왕과 미실은 개고기를 먹었을까?

신라가 일본에 개를 수출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을 들어 신라와 일본이 개고기를 먹었다는 주장을 한 식품영양학과 교수가 있다. 먹는 용도 외에 개를 일본에 보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신라와 일본이 사이좋게 개고기를 먹었는지 알아보려면 신라 시대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는데 우리 고대사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일본이 없앴는지 조선 양반들이 없앴는지 알 길은 없다. 조선 시대 양반들이 보기에는 신라 역사는 경악, 그 자체였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문자로 남아 있는 기록도 거의 없고 유물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의견이 분분한 이유는 국내, 외적인 이유로 나눠볼 수 있다. 국외적인 이유로 세계 역사계에서 한국사 중 조선 이외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동양사를 주도하고 있는 중국계와 ..

24. [요약] 개숭파에서 개먹파로 한국인 뇌 수술

태초에 두 인간이 있었다. 개 먹는 인간과 개 숭배하는 인간. 개 먹(는 인간)파와 개 숭(배하는 인간)파는 단순한 식성 차이가 아니다. 수 천년 전 중앙아시아와 세계 4대 문명권에서 이는 아주 큰 차이였다. 개 먹는 인간과 개 숭배하는 인간은 절대 같을 수 없었다. 특히 중아아시아와 중국 역사는 개 먹는 인간과 개 숭배하는 인간들의 투쟁이었다. 그 투쟁에서 우리 조상이 어느 편에 섰느냐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뇌 수술을 당하기 전의 진짜 우리 역사이기 때문이다. 개 먹는 인간은 중국 한족이다. 늑대를 증오하는 민족이다. 개 숭배하는 인간은 중국 한족의 적이다. 천랑성이 뜨면 약탈을 하는 기마 유목 민족이다. 늑대를 숭배하는 민족이다. 스키타이,페르시아, 로마, 흉노, 단군 조선, 고구려(백제, ..

23. 유목 왕조 판 옥새, 신성한 개

선비족과 고구려는 형제라 해도 좋을 정도로 닮았다. 그렇기에 중국 선비족 왕조에서 고구려 인이 활약할 수 있던 것이다. 고구려는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 후 3세기까지 이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에 이르는 대제국을 세운 페르시아의 파르티안 제국과도 연관 깊다. 고구려 군이 사용한 기마법이 파르티안 기마법이다. 파르티안 기마법의 이름은 페르시아 제국 중 파르티안에서 나왔다. 파르티안에는 네르갈이라는 죽음의 신이 있었다. 네르갈은 죽음의 신이자 치유의 신이기도 했다. 네르갈은 개, 뱀과 함께 나타난다. 조로아스터교가 국교이던 파르티안 제국에서 바빌로니안 신앙인 굴라 여신 신앙이 남성화 된 것으로 보인다. 네르갈은 그리스로 전래되어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유목사 2018.12.22

22. 일본 반가사유상은 한반도 산?

선비족 무덤 벽화 속 무사와 고구려 무덤 벽화 속 무사가 쌍둥이처럼 닮은 이유를 찾지 못해 당황스럽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답은 간단하다. 선비족과 고구려 지배층은 같은 유목 문화를 공유했다. 유목 문화는 텡그리 신앙이며 늑대 신앙이다. 알타이 문화권에서는 고대부터 늑대를 신으로 믿었다. 기원 전부터 중국 한족은 늑대가 흉노의 상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중국인에게 늑대는 적이었고 고 북방 유목민에게는 신이었다. 늑대 신앙은 텡그리 신앙, 즉 알타이 샤먼이었다. 알타이 문화권과 페르시아 문화권의 공통 지역에는 칸 텡그리 산이 있다. 칸 텡그리 봉우리는 카자흐스탄, 신장 위그르, 몽골, 키르기스스탄에 걸쳐 있다. 칸 텡그리 산봉우리 인접 지역은 스키타이, 흉노, 선비, 고구려, 돌궐, 위구르, 거..

유목사 2018.12.20

21. 위구르의 늑대 머리 깃발과 개고기

투르크 족이 세운 제국인 돌궐과 위그르 군대는 늑대머리 깃발을 사용했다. 사나운 늑대가 입을 크게 벌리며 포효하는 머리에 술이 늘어져 있어 바람이 불면 마치 용이 하늘을 나는 것처럼 보이는 깃발이다. 왕들 역시 늑대 머리 깃발을 사용해 자신의 권위를 나타냈다. 유목민들의 거주지인 게르 앞에 늑대 머리 깃발이 꽂혀 있다면 그 게르 안에는 왕이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므로 늑대 머리 문양이 새겨진 유물은 투르크 계 지배층이 사용했던 것일 가능성이 크다. 늑대 머리 양식은 사자머리를 한 용으로 변형 되기도 한다. 이것이 동양에서는 하늘을 나는 용 문양으로 발전한 듯 하고 서양에서는 투르크 계인 에트루리안이 로마 제국에 지배된 후 사자 문양으로 발전된 듯 하다. 모든 투르크 계에게 늑대와 개는 특별했다. 시작은 ..

유목사 2018.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