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103. 미국 이민 정책 Vs 개 먹는 조선족 우대 정책

AnDant 2019. 7. 25. 12:04

조선족은 추석에도 개고기를 먹는다. 추석이나 설날에 먹는 음식은 차례를 지내는 음식이다. 차례 상에 개고기를 올린다는 말이 된다. 차례 상에 객고기를 올리니 제사상에는 당연히 올릴 수 있다. 

그렇다면 김대중 대통령은 제사에 개고기를 올리는 조선족 문화를 우리 민족 전체의 문화로 해석해 외신기자들에게 말한 것이 된다. 설마 김대중 대통령 본인이 조선족 출신은 아닐 테고...

<추석에도 개 잡아 먹는 조선족,  애니멀피플 뉴스 2017년 10월 16일>

아마 1997년 IMF 이후 흉흉해진 한국 사회 분위기 속에 마치 세계화의 전제 조건이라도 양 도입된 미국의 샐러드 볼 이민 정책에 근거한 섣부른 결론이 아닐까 싶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한국인 중에 개고기를 제사 상에 올리는 사람은 없다. 개고기를 먹은 인간은 제사에 참석할 수 없을 정도로 개고기는 한국에서 저주받은 음식이었다. 


<개고기는 버려야 할 악습이자 퇴행, 월간조선, 2002년 3월 호>

이 보편타당한 사실을 왜곡하고 세뇌한 세력의 중심에는 조선족이 있었다. 정확히는 한국의 조선족 우대 정책이 있었다. 한국의 조선족 정책은 미국 이민 정책 중 하나인 샐러드 볼 정책을 기반으로 했다. 

그러므로 한국의 조선족 정책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의 이민 정책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을 건국한 이들이 채택한 이민 정책은 용광로 정책(Melting pot)이었다. 


<미국인이 학살한 버팔로와 인디언, 바이슨, 1844년>

미국의 원래 주인은 인디언이다. 이들 원주민을 학살하고 미국을 건설한 것이 청교도 유럽인들이다. 미국인이 된 유럽인들은 인종주의에 입각해 아프리카 흑인을 노예로 부렸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인종주의는 기독교- 로마 제국 성립 이후 유럽을 지탱한 상식이었다.(https://yangsunne.tistory.com/80) 이 세상은 백인이 지배하게 되어 있고 백인 아래 유색인종과 동물, 식물 등이 순차적으로 지배를 당한다. 


<미국의 인종분리 정책 포스터, 1866년>

여기에서 미국의 문제가 생겼다. 미국은 유럽과 달리 인디언, 흑인의 인구 비율이 높았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인류 역사 상 가장 강한 국가가 된 미국은 다인종 국가였다. 

먼저 아메리카 인디언을 보자. 1970년대 유명한 학자 말에 의하면 미국은 약 수천 만 명의 인디언을 학살했다. 아즈텍-마야 제국을 정복한 스페인 정복자과 같은 원주민 학살 정책이었다. 


<아파치 인디언, 미국, 1910년>

스페인 정복자는 아즈텍-마야 인의 약 90%를 학살했다. 아즈텍- 마야 인은 인육과 개고기가 식량이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중 일부도 개고기를 먹은 것으로 추정된다. 

개고기 먹는 원주민이 학살당했으므로 남아메리카나 북아메리카 모두 개고기 식용은 사라지게 된다. 2018년 미국 하원에서는 개, 고양이 식용 금지 및 한국 포함 전 세계 개고기 유통 금지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미국에서 개고기나 고양이 고기를 먹는 인간들은 주로 한국인이나 중국인, 베트남인이다. 대표적인 개고기 식용 국가이자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나라들)이다. 

미국의 아프리카 흑인을 보자. 유럽 노예 상인은 아프리카 흑인을 신대륙인 미국에도 수출했다. 미국 건국과 동시에 아프리카 흑인도 미국에서 살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들도 미국의 주인이다. 


<한국 포함 개, 고양이 식용 금지 법안을 통과시킨 미국 하원, 2018년 9월 15일>

인디언을 학살하고 광활한 미국 대륙을 차지한 유럽인은 턱없이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 위해 계속해서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했다. 남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전해진 후 돼지나 먹는 음식으로 여겨진 감자를 주식으로 먹은 아일랜드에서는 전염병으로 감자 흉년이 들자 대기근을 겪었다. 

감자조차 먹지 못한 아일랜드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배를 타고 미국으로 갔다. 독일 사람도 가고 러시아 사람도 가고 멕시코 사람도 갔다. 홍차를 영국에 강탈당하던 청나라 사람들도 갔다.

<미국의 청나라 노동자의 실상을 배경으로 한 영화, 상하이의 눈, 2000년>

성룡이 주연한 영화 ‘상하이 눈’은 미국 네바다 주 광산을 배경으로 한다. 청나라 사람들은 주로 미국 광산에서 일하거나 철도 노동자로 거의 노예처럼 일을 했다. 이들은 영국과 중국(아마도 삼합회의 전신)의 합작으로 미국까지 갈 수 있었을 것이다.(https://yangsunne.tistory.com/115광산과 철도 건설현상에서 박봉을 받으며 노예처럼 일한 청나라 사람들은 일 인 당 3달러씩 인두세까지 내야 했다. 


<인종분리정책에 의해 흑인은 따로 음수대를 사용하던 미국 남부, 1938년>

1882년에 생긴 청나라 인 차별법은 청나라 인이 중국인이 된 1943년까지 지속되었다. 전 세계에서 온 미국 이민자들은 용광로처럼 하나로 녹아 미국인으로 다시 태어나야 했다. 

이것을 다문화에 대한 용광로(Melting pot) 이민 정책이라고 한다. “니가 영국인이든 아프리카 인이든 청나라 인이든 간에 미국에 왔으면 미국 법을 따라!”, 이거다. 용광로 이론에 의하면 모든 미국 이민자는 미국의 건국정신을 따라야 했다. 

<흑인 전용 급수대. 오클라마호, 미국, 1939년>

그러므로 미국 건국 정부가 정한 흑인 차별, 유색인종 차별도 정당했다. 미국에서는 1930년대까지 흑인은 백인과 같은 수돗물을 마실 수 없었다. 광산과 철도 노동자로 이민을 온 청나라 인은 청나라의 문화와 전통, 언어를 사용할 수 없었다. 

아프리카 흑인 노예도 마찬가지였다. 멕시코나 페루인은 자신들의 종교 의식 때 신과 만나는 매개체인 마약과 담배(대마초)를 사용할 수 없었다. 물론 개고기도 먹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