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유목사 8

58. 백제는 일본을 지배했나? 만주는?

임나일본부설, 한반도 일본 지배설은 별 의미 없다고 본다. 아마 당시 한반도와 일본을 지배한 계층은 기마 유목 왕조인 제 3의 세력이었을 것이다. 기마 유목 왕조의 국제 커넥션이 6~7세기 중국 선비족 왕조와 백제, 신라, 일본을 반가사유상으로 연결해주었을 수 있다. 특유의 기마 유목 문화를 상징하는 것이 신성한 개를 믿는 관념이다. 신성한 개는 고대 중앙아시아 유목민이 믿은 알타이 샤먼 즉 텡그리 신앙에서 시작되었다. 텡그리 신앙은 빛을 믿는 신앙이다. 빛의 종교에서 개는 신의 사자이거나 신 그 자체, 혹은 지상의 왕을 상징한다. 하늘에 있는 신이므로 개에게는 날개가 있다. 날개 달린 개는 곧 신이다. 날개 달린 신성한 개를 믿은 지역을 보자. 중앙아시아 대륙으로 국한해서 봤을 때 고대 중국을 제외한 ..

57. 임나일본부? 그래서 만주는 누구 땅?

이름도 생소한 전방후원분이라는 무덤으로 인해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 전쟁이 치열하다. 전방 후원분은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 3~6세기 일본과 한반도 남부에서 유행한 독특한 무덤 양식이다. 이 무덤이 4~5세기 일본에서 떼로 건설되면서 임나일본부 설의 근거가 되었다. 왜냐? 전라도 광주 등지에서도 전방후원분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어째 크기나 숫자, 상태로 봤을 때 일본 무덤보다 못한 거 같았다. 이게 고대 한반도를 일본이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 중 하나이다. 흠, 과연 그럴까? 일본 역사교과사에도 실릴 정도로 유명한 역사학자가 유물을 미리 심어놓고 발굴했다고 뻥친 사건은 유명하다. 일본은 그 전방후원분을 거의 발굴하지 않는다. 추측은 난무하지만 이유는 대충 하나로 모아진다. 유물이..

47. 한 큐에 신선이 될 수 있던 한국 도교

고려 유물을 보면 유독 청동 거울이 많다. 잘 닦으면 또렷이 보이는 은제 거울도 아니고 청동 거울이다. 청동기 시대부터 거울은 왕을 상징하거나 제사에 사용했다. 교역을 많이 한 고려 시대 청동 거울도 제사에 사용했다. 배를 타기 전 무사 항해를 기원하기 위해 반드시 청동 거울을 바다에 던졌다. 청동 거울을 던지던 고려의 제사는 조선 시대 제사와는 다르다. 유교가 한반도에 들어오기 이전 고대부터 존재한 한민족 고유의 도교와 무교, 불교가 합쳐진 형태의 제사라고 본다. 조선 지배층은 전통 도교 뿐 아니라 1392년 조선 건국 이전의 역사를 통째로 날려버렸다. 조선 지배층에게 반만 년 역사 중에 단군은 중국에게 가르침을 받은 기자 조선부터 시작된다. 고구려·백제·신라·통일신라는 존재조차 하지 않은 역사이고 고..

28. 개 전용 사원이 있던 당나라

삼국 중 유목 전통을 가장 충실히 지켰고 신라 왕족만 키울 수 있는 삽살개가 있던 것으로 보아 신라는 명백히 개숭(배하는)파였다. 성골이 끝나는 시점인 7세기까지는 개고기 먹을 일이 없었다. 통일신라의 국교는 불교였다. 10세기에 세워진 고려도 불교였다. 역시 개 먹을 일이 없다. 가끔 선승인 뭐니 하며 개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하는 땡중이 있다. 헛소리다. 부처님이 콕 찝어 개는 절대 먹지 말라고 하셨다. 적어도 14세기 건국된 조선 시대 전까지 우리 민족에게 개고기라는 단어는 불길한 단어였다. 그렇다면 신라는 왜 당나라와 일본에 굳이 개를 배에 실어 보냈을까? 신라 계림로 황금 보검처럼 국교 차원에서 두 나라 왕족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 정세 상 공식적으로..

27.신라가 일본에 개고기를 수출했다고?

2001년 개고기 불간섭 선언 이후 한겨레, 오마이뉴스, 중앙일보, MBC 등 온 언론이 하나가 되어 주장한 것처럼 우리 조상이 농경민이라면 신라 토우 인형에게는 고대 애니미즘적 의미밖에 부여할 수 없다. 다복을 기원하는 고대 토속 신앙의 상징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신라가 유목 왕조였다면 실제 신라의 성 문화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성 행위는 신성한 혈통을 계승하기 위한 신성한 의식이었다. 유목민의 성 도덕은 농경민과 달랐다. 유목민은 일상이 전쟁이었다. 약탈혼도 흔했다. 태어난 아이를 두고 “이 애가 내 애 맞아?”라고 따지는 건 불가능했다. 칭기즈칸 큰 아들 이름은 주치다. 손님이라는 뜻이다. 칭기즈칸 부인이 납치당한 기간에 생긴 아이였다. 조선 시대처럼 정절을 잃었다고 여자를 죽이고 열녀문을 세워..

26. 왜 왕소군 아들은 흉노 왕이 되지 못했나?

전쟁에서 져 죽을 뻔한 위기에서 흉노 왕비에게 거액의 뇌물을 주고 풀려난 한나라 유방은 막대한 조공과 함께 공주를 흉노 왕에게 시집보냈다. 이후 왕소군을 비롯한 한나라 공주들은 줄줄이 흉노 왕에게 시집가야 했다. 고조선을 멸망시킨 철천지 원수, 한 무제도 조카 딸을 흉노의 경쟁자인 오손 왕에게 시집보냈다. 줄줄이 시집을 간 한나라 공주들은 줄줄이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이 많은 아기들 중에 흉노 왕이 된 왕자는 한 아이도 없었다. 대신 전한(기원전 206년~기원 후 8년) 말기 흉노는 한나라 공주가 낳은 왕자를 앞세워 한나라를 공격했다. 한나라 공주의 아들이니 정당한 후계자라는 것이다. 왜 흉노에서는 후계자라 나서지 못하고 한나라에서는 왕위계승권을 주장했을까? 한나라는 부계 사회였다. 아버지가 왕이면 엄..

25. 선덕여왕과 미실은 개고기를 먹었을까?

신라가 일본에 개를 수출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을 들어 신라와 일본이 개고기를 먹었다는 주장을 한 식품영양학과 교수가 있다. 먹는 용도 외에 개를 일본에 보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신라와 일본이 사이좋게 개고기를 먹었는지 알아보려면 신라 시대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는데 우리 고대사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일본이 없앴는지 조선 양반들이 없앴는지 알 길은 없다. 조선 시대 양반들이 보기에는 신라 역사는 경악, 그 자체였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문자로 남아 있는 기록도 거의 없고 유물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의견이 분분한 이유는 국내, 외적인 이유로 나눠볼 수 있다. 국외적인 이유로 세계 역사계에서 한국사 중 조선 이외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동양사를 주도하고 있는 중국계와 ..

24. [요약] 개숭파에서 개먹파로 한국인 뇌 수술

태초에 두 인간이 있었다. 개 먹는 인간과 개 숭배하는 인간. 개 먹(는 인간)파와 개 숭(배하는 인간)파는 단순한 식성 차이가 아니다. 수 천년 전 중앙아시아와 세계 4대 문명권에서 이는 아주 큰 차이였다. 개 먹는 인간과 개 숭배하는 인간은 절대 같을 수 없었다. 특히 중아아시아와 중국 역사는 개 먹는 인간과 개 숭배하는 인간들의 투쟁이었다. 그 투쟁에서 우리 조상이 어느 편에 섰느냐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뇌 수술을 당하기 전의 진짜 우리 역사이기 때문이다. 개 먹는 인간은 중국 한족이다. 늑대를 증오하는 민족이다. 개 숭배하는 인간은 중국 한족의 적이다. 천랑성이 뜨면 약탈을 하는 기마 유목 민족이다. 늑대를 숭배하는 민족이다. 스키타이,페르시아, 로마, 흉노, 단군 조선, 고구려(백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