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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조선족의, 조선족에 의한, 조선족을 위한 한국 개고기

개고기를 반대하는 외국인이나 한국인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불쌍하다는 것이다. 이런 감정적인 호소는 감정을 가진 상대에게나 통한다. 감정이 없는 상대에게 감정을 호소하는 건 시간 낭비다. 1997년 이후 한국에는 우리 집 강아지와 시골 집 마당에 묶인 개는 별개의 존재라고 믿어야 했다. 우리 강아지는 사랑스럽지만 시골 개는 묶여 살다 복날 개 장사에게 팔려가 도살되는 것이 숙명이라는 개념이다. 모란시장으로 팔리는 개들에게 동정심을 가진다면 어디 모자란 사람 취급을 받았다. 역사와 전통을 모르거나 매국노거나 천지 분간 못하는 바보 취급을 받았다. 왜? 이 나라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 천 만 마리의 개들이 개 농장과 개 도살장에서 온갖 고문 속에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개도 개고 이 개도 개인데 같..

개고기 문제 2019.09.10

122. ' 개고기 전통론'이 조선족에게 주는 면죄부

고구려와 고려의 역사와 문화가 농경문화에 기반을 두었으며 농경민족답게 개고기를 식량으로 먹었다는 주장은 심각한 역사 왜곡이다. 개고기에 대한 이런 역사 왜곡은 개를 가축으로 만든 일명 ‘개 가축 고시’를 만드는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근거 없는 왜곡된 주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수 천 만 마리의 한국 개들을 지옥 같은 고통에 몰아넣고 있다. 정 많은 한국인이지만 특이하게도 오직 ‘개’ 문제에 대해서만은 감정을 차단해야 한다. 우리 집 강아지는 침대에서 같이 뒹굴며 막내 동생 대하듯 사랑하지만 우리 동네 어귀에 있는 개 농장 개들은 추위와 더위, 고통과 공포 속에서 도살되어도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집 개는 ‘생명’이고 개 농장 개는 감정이 없는 ‘물건’이라고 믿어야 한다. 개 농장 개가 ‘생명’이라고..

개고기 문제 2019.09.07

121. 한민족 파괴자 조선, 고려가 개를 먹어?

조선 왕조를 비판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친일파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역사를 사랑한다. 한국인임이 자랑스럽다. 한국인은 흥의 민족이다. 흥이 나면 불같이 확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물론 불같이 훅 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실망할 건 없다. 또 어디선가 불같이 훅 일어날 것이고 같은 한국인으로서 뭉치면 되기 때문이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중요한 이유다. 우리가 뭉칠 수 있는 힘이기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라는 의미는 혈연적인 정의로 국한할 수 없다. 알타이-시베리아 지역의 기마 유목 왕조는 인종과 언어는 달랐지만 하나로 연결되었다. 초기 에트루리안 왕조의 지배층 중에는 아프리카 흑인도 있었다, 역사와 문화(종교 포함)를 공유한다면 같은 민족이다. 한국인의 정체성만 가지고..

조선 2019.09.05

120. 토머스 제퍼슨의 흑인 첩과 복날 개고기

가장 가난하고 비천한 농촌 일꾼에게 복날 개고기를 먹도록 강요한 것은 결국 조선의 노비제도였다. 조선 노비 제도는 미국 노예제도보다 잔인하고 비인간적이었다. 그렇게 주장하는 첫 번째 이유는 미국 노예제는 남부에서만 적용되었다는 사실이다. 조선의 노비 제도는 조선 전체에 적용되었다. 둘 째, 미국의 노예제도는 남북 전쟁 후 1863년 종료되었다. 조선의 노비제도는 장장 500년을 이어갔으며 지금도 북한에서 이어지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끔찍한 노예 국가로 알려진 북한은 조선 사회를 모델로 하고 있다. 조선 신분 사회의 근간은 노비제도였다. 북한 김 씨 일가와 평양 상류층을 제외한 대다수 북한 주민들은 조선 시대 노비처럼 살고 있다. 그러니까 김 씨 일가는 조선의 왕이다. 평양 상류층은 조선 시대 양반..

조선 2019.09.03

119. 미국 노예제가 잔인? 조선 노비제는 더 끔찍

중국 사람들은 고구려 인구의 30%가 놀고먹는 한량이라고 욕했다. ‘대가’인 이들은 평소에는 사냥이나 다니며 놀았다. ‘대가’는 군인이었다. 사냥은 평화 시 군사훈련이었다. 조선 왕조의 지배층 10% 중 대부분은 나라도 지키지 않고 글만 읽었다. 그 와중에 이순신 장군 같은 무인은 또 차별했다. 차별에 차별을 거듭해 모든 국가의 부와 권력은 문인 양반들에게만 집중되었다. 그들은 성리학만 공부했다. 그래서 행복했을까? 진정한 학자라면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공부는 왜 하나? 무릇 학문하는 즐거움이란 학문적 호기심을 채우는데 있다. 공부를 하다 보면 생각이란 건 하게 된다. 생각을 하다 보면 이건 이거 같고 저건 저거 같다는 의문점이 생긴다. 의문점이 생기면? 다른 자료를 찾아서 그 논리가 맞는지 확인을 해..

조선 2019.08.31

118. 황후가 된 여자 노예와 이황의 노비 장사

중앙아시아와 유럽에서 활동한 모든 기마 유목부족은 끊임없는 전쟁을 하며 노예를 확보했다. 노예들은 주로 농사를 짓거나 다른 잡다한 일들을 했다. 지배층은 오직 전쟁과 교역만 했다. 몽골의 칭기즈칸은 1000만 명에 달하는 베이징인을 죽이는 대신 거의 노예 상태로 만들었다. 원 제국 시기 인구의 90%가 넘는 과거 송나라 인은 만쯔라고 불리는 노예였다. 지금의 터키인 오스만 제국에서는 노예무역이 성행했다. 터키의 노예 상인이 얼마나 악명 높았는지 19세기 영국 만국박람회에서는 터키 상인에 의해 팔려가는 그리스 여자 노예 조각상이 전시되기도 했다. 청나라 건륭제는 위그르 반란을 진압한 후 수많은 포로를 끌고 왔다. 전쟁에서 진 포로들은 대개 노예가 되었다. 로마-카톨릭은 유럽의 인종주의로 발전했고 피부 색이..

조선 2019.08.29

117. 인류 최악의 노예 제도, 조선의 노비제

국가라는 권력 구조가 생기기 이전인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에도 노예는 존재했다고 본다. 날개달린 개를 신으로 모신 고대 종교를 믿은 청동기 지배 세력도 노예제도를 이용했을 것이다.이 시기의 지배 관계는 지배층과 노예의 관계라기보다는 신과 신자 정도의 관계로 봐야 할 것이다. 고도로 정교한 청동기 세공술과 금 세공술을 가진 집단을 처음 본 고대인들은 너무 놀라 그들이 신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날개 달린 개를 모신 고대 청동기 세력(중 해양 무역 세력인 에트루리안)이 모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대 에트루리아 초기 왕조는 말과 함께 배를 타고 그리스, 로마 지역으로 건너왔으며 날개 달린 개를 신으로 믿었다. 에트루리안을 비롯한 고대 청동기 지배세력은 압도..

조선 2019.08.27

116. 18세기 고양이 대학살과 개소주 이황

조선 시대 양반은 개고기를 먹지 않고 일부 굶주린 노비는 개고기를 먹었다. 인공위성 파편에 맞아 죽을 확률로 말이다. 이 역사적 사실을 일부 한국인들이 왜곡하여 개고기 식용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복날, 가난한 농민, 개고기’는 선한 전통이고 ‘부자, 양반, 친일파, 독재자’는 악이라는 단순 무식한 대립 구도로 몬 것이다. 복날 개고기 식용을 통해 가난한 노비(노동자, 프롤레테리아)와 양반(부자, 부르주아)의 대립을 극대화시키는 그들의 해석에 의하면 조선 시대 개를 때려잡아 개고기를 먹은 것은 개를 조상신으로 여긴 양반에 대한 증오의 표출이다. 이는 개를 청 왕조의 상징으로 여겨 개를 때려잡아 먹는 고대 중국 식습관을 되살린 중국공산당과 같은 논리다. 또한 18세기 프랑스 방직공장에서 일어난 고양이 대학..

조선 2019.08.24

115. 개고기와 함께 시작된 한국의 민간 국제 외교

지금 이 순간에도 수 천 만 마리의 한국 개들이 조선족들에 의해 도살되고 있다. 조선족은 한국에서 개고기를 가장 많이 소비한다. 개고기 장사로 부를 축전한다. 개 농장에서 일한 경력으로 영주권을 받는다. 축적한 돈은 다시 중국으로 빼돌린다. 이 과정에서 우리 한국인이 얻는 이득은 무엇일까? 개고기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한다고? 남과 북이 개고기를 먹으면서 사이좋게 쎄쎄쎄? 여기서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이 지구에는 남과 북만 존재하지 않는다. 전 세계에는 개고기를 혐오하는 수많은 나라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나라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조선 왕조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말이다. 역사적으로 자유롭게 교역을 해야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안정적으로 교역을 하려면 군사력은 기본으로 ..

종교 2019.08.22

114.교황님, 신부님이 개고기 좀 그만 먹게 해주세요!

우리나라 개고기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계층이 1960년대 농촌 일꾼이다. 1960년 대 복날에 개고기를 먹은 주요 계층은 일부 천주교, 개신교 신자와 가난한 농촌 노동자들이었다. 이들 주역은 1960년대 농촌에서 만났다. 1980년대까지 우리 사회에는 개고기 금기가 남아있었다. 개고기 금기는 산업화 이전인 1960년 대에는 더욱 강했다. 특히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이 정한 개고기 금지법이 강하게 남아 있던 시기였다. 1920~1940년대 생 어르신 중에 복날 개고기를 먹었다고 한 분은 1960년대 시골 농촌에서 머슴을 살았다는 분이 유일했다. 2000년대 이후 쏟아진 복날 개고기를 먹는 전통에 대한 기사를 봐도 1960~1970년대 힘든 농촌 노동자들이 삼복더위에 영양보충을 위해 개고기를 먹었다는 내용..

종교 2019.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