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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복날 개고기 먹은 노비가 독립운동을?

모 명문가가 소유한 평창동 고택에는 사람 손으로 판 호수가 있었다고 한다. 연못이 아니라 진짜 배를 띄워 뱃놀이를 할 수 있는 아주 큰 호수였다고 했다. 그럼 혹시 일제 식 신식 건물이었냐고 물었더니 99간 전통 한옥이었다고 했다. 조선 시대부터 그 댁에서는 대대로 호수에 배를 띄우고 탁 트인 평창동 전망을 즐겼던 것이다. 말 그대로 신선놀음이다. 또 다른 명문가에서는 일제시대에 북해도에서 유제품만 공수해 오던 직원이 있었다고 한다. 북해도까지 배로 드나들던 그 직원의 유일한 업무는 우유와 치즈를 떨어뜨리지 않고 사 오는 일이었다. 대략 통학 열차에서 일본 학생과 한국 학생이 개고기를 두고 싸움을 하다 전국 동맹학생운동을 하던 시기였다. 일반 백성들은 꽁보리밥도 제대로 못 먹던 시절이었다. 가장 가난하고..

조선 2019.08.17

112. 개는 조상신이니 먹지 마! 조선 시대 양반

조선이 망하는 순간까지 한양 사대문 안에 사는 사람들은 특권층이었다. 한양 사람들은 계급, 직종 별로 정해진 구역 안에서 살았다. 경복궁과 창경궁 등 궁궐 주위 중 물 좋고 경치 좋은 구역은 잘 나가는 권문세가들이 살았다. 지금의 평창동은 조선 시대에도 특권층이 모여 살던 구역이었다. 배산임수 조건에 맞는 명당이었기 때문이다. 양반 중에서도 권력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사대문 밖 남산 등지에서 살았다. 남산골샌님이란 말이 생긴 이유도 지지리 가난한데 일은 안 하고 공자 왈 맹자 왈 꼬장꼬장 따지기나 하는 양반들이 남산골에 모여 살았기 때문이다. 양반은 아무리 가난해도 일을 할 수 없었다. 일을 하는 순간 양반이 아니었다. 다 쓰러져가는 초가삼간에 살아도 허름한 갓을 쓰고 책을 읽어야 했다. 양반이 돈을 벌 ..

조선 2019.08.15

111. 복날 보신탕 먹는 사람의 조상은 노비

해마다 복날이 되면 마음이 착잡하다. 조선족의 전리품이 되어 해마다 수 백 만 마리씩 잔인하게 살해되는 한국 개들 생각에 착잡하고 1997년 이후 중국 공산당의 논리대로 세뇌되어 복날은 개고기 먹는 날이라고 외치는 일부 얼빠진 한국 사람들의 행태에 착잡해진다. 조선족에게 도살되는 개가 바로 현재 우리 한국인들이 처한 처지다. 개 같은 처지라고 하면 너무 심한 비하 같은가? 고대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는 개는 귀한 존재였다. 모든 기마 유목 왕조, 중국의 당, 원, 청 왕조에서 개는 황실(신성한 피)의 상징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개 같다는 말은 칭찬이다. 개를 비천한 존재, 먹어야 할 식량, 약재로 취급하기 시작한 건 중국 고대 왕조, 조선 왕조, 중국 공산당 지배 시기 이후다. 한민족이 가난해진 것도 ..

개고기 문제 2019.08.13

110. 조선족이 개고기를 안 먹으면 티베트가 독립?

1911년 이후 본격적으로는 1921년 이후 중국 공산주의를 추종한 세력이 조선족(독립운동가 포함), 북한, 남한의 공산주의자들(민주화, 종교 세력)이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개고기다. 얘네들이 개고기에 목숨 거는 이유이기도 하다. 적어도 1921년 이후 중국 대륙과 한반도에서 개고기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중국 공산주의 혁명의 상징이다. 개고기로 하는 성찬식이자 이념 전쟁이다. 청 왕가 멸망 후 중국의 많은 지도자(군벌)들이 앞 다투어 세력을 키웠다. 그 중 대표가 국민당과 공산당이었다. 사실 공산당은 국민당에 비해 쩌리였다. 마오쩌둥은 소련과 일본의 팽창을 견제하고자 하는 미국 덕분에 쩌리에서 일약 국가 지도자급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마오쩌둥 식 공산주의 독재의 정점은 1966~1976년까지 불어 ..

중국 공산당 2019.08.10

109. 개 발을 닭발처럼 먹는 조선족과 동북공정

1990년대 초반 중국 공산당 초청으로 중국 대표 도시를 순회한 지인 말에 의하면 연변의 호텔 로비를 나선 순간 조선족 택시 운전기사끼리 다짜고짜 칼부터 꺼내 싸우는 걸 보고 놀랐다고 한다.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들이 호텔에서 나오는 지인 일행을 태우려다가 중간에 끼어든 택시 한 대로 인해 유혈이 낭자한 칼싸움이 난 것이다. 의전 차량을 탈 예정인 지인 일행이 놀라자 중국 공산당의 의전 담당자가 안심시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동북 3성은 저렇게 칼부터 휘둘러서 골치 덩어리”라고 말이다. 지금도 한국에서 여차하면 칼부터 휘둘러 사람을 해치는 걸 보면 칼부림은 조선족의 전통인 듯 하다. 비슷한 시기 연변을 방문한 또 다른 지인의 증언에 의하면 어디를 가든 개고기가 널려 있었다고 한다. 대로변에서 버젓이 ..

중국 공산당 2019.08.08

108. '하나의 중국', 개고기 먹는 장기털이범 조선족

해외 동포들이 가장 많이 사는 나라는 미국, 중국, 일본, 소련(현재 러시아 및 구 러시아 연방 일부)이다. 이중 공산권인 중국과 소련 동포 중 다수는 자신들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고 한다. 독립운동가라는 마법의 단어는 그들 가문의 역사를 아름답게 치장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적어도 한국 외교부와 법무부의 재외동포 정책 상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단어는 훈장 그 자체다.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의 후손 중 북한과 남한으로 간 나머지를 제외하고는 조선족 자치구에 그대로 살고 있다. 중국 조선족 자치구에 사는 조선족은 자신들이 중국인이라고 믿는다. ‘하나의 중국’은 중국이 티베트와 위그르 포함 55개 소수민족을 지배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정책이다. 하나의 중국은 중국 판 미국의 ‘용광로’ 인종 정책이다. 5..

중국 공산당 2019.08.06

107 중국 따라 조선도 개고기 공산화? 만주의 독립운동

19세기와 20세기 초반 인종론으로 무장한 서구 열강은 식민지를 신나게 늘려갔고 아주 잔인하게 지배했다. 식민지 고혈을 착취한 결과 미국, 유럽, 일본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경제 공황으로 확대되었다. 경제 공황이 오면? 전쟁이 터진다. 17세기 소빙하기 때 전 세계의 왕조가 많이 바뀐 건 백성들이 배고팠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굶으면 왕조가 바뀔 위험이 높다.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고 싶은 왕조는 전쟁을 일으킨다. 만주 벌판 독립 운동가들이 신나게 일본과 싸우고 있을 때 세계는 경제 공황과 1,2차 세계대전으로 대 격변을 맞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마르크스, 레닌 등 공산주의 혁명가들이 소련과 중국으로 세력을 확장한 것이다. 로마노프 왕가가 몰살된 사건은 아나스타샤 공주가 진짜냐, 가짜냐가 ..

중국 공산당 2019.08.03

106 공산주의자 김원봉은 개고기를 먹었을까?

엄청난 제작비에 비해 처참한 시청률로 끝난 드라마 ‘이몽’의 주인공은 김원봉이다. 김원봉은 영화 암살에서 독립군의 막후 실세로 나온 조선의열단의단장이기도 하다. 원봉, 원봉, 김 원봉은 과연 누구인가? 대관절 누구기에 영화며 드라마며 줄줄이 그를 찬양하는가? 김원봉을 알면 조선족의 뿌리와 해외 동포들이 어째서 친북, 친 중국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는지, 어째서 독립운동가들이 공산주의 운동을 했는지에 대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친일파와 민족주의자들이 해방 후 어째서 극단적인 친미주의자가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은 개를 잡아 먹었다. 중국 공산당과 연결된 북한, 조선족, 재외 동포들이 개고기를 민족의 정체성으로 믿는 이유다. 모든 건 공산주의 혁명과 관련 있다. 개고기 식용은 공산..

중국 공산당 2019.08.01

105. 태프트 대통령을 무덤에 데리고 간 고종

베트남과 중국, 그리고 한국은 개고기를 먹는 대표적인 나라다. 베트남과 중국은 모두 중국과 관련 깊다. 베트남은 중국의 천 년 식민지였다. 한국은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중국의 속국을 자처했다. 1921년 중국이 공산화되었다는 사실은 베트남과 한국도 중국화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지난 100년 간 한반도에서 변화한 개고기 식용에 대한 인식 변화에 대한 원인도 거기 있을 수 있다. 개고기 식용은 곧 중국화다. 1911년 이후 중국화는 곧 중국 공산화를 의미한다. 1905년 미국 25대 부통령(1901), 26대(1901-1909)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딸 앨리스는 필리핀, 일본, 청, 조선을 차례로 방문했다. 이 때부터 이미 세계 열강은 중국, 일본, 한반도의 역학관계를 주시하고 있었던 ..

국제 2019.07.30

104. 샐러드 볼 이민 정책과 친중파의 개고기 왜곡

이민자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을 금지한 미국의 용광로 이민 정책을 뒤집은 것이 샐러드 볼(Salad Bawl) 이론이었다. 샐러드 그릇에 들어있는 야채와 과일처럼 각자의 개성을 유지한 채 하나의 근사한 요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미국의 샐러드 볼 이론이 현재 한국에서 만연하고 있는 다문화주의의 이론적 근거다. 1972년 이후 미국의 이민 정책은 완전히 달라졌다. 남미 이민자들도 종교 의식 때 마약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빠는 것은 마약이 아니라 ‘문화’와 ‘전통’이었기 때문이다. 다문화주의에 의해 일부 마약은 합법이었다. 같은 논리로 다문화주의에 의해 개고기도 합법이었다.미국에 한해 1970년대까지 개고기 문제는 없었다. 학살에서 겨우 살아남은 인디언들은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멸종보호 종으..

중국 공산당 2019.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