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 12

14. 주인의 영혼을 지키는 개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정체성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텡그리(하늘)'라고 할 수 있다. 텡그리는 하늘이자 신이자 자연의 섭리이며 왕이며 늑대이다. 이 텡그리 신앙은 신성한 개 신앙과도 연결된다. 하늘의 아들 자격으로 지상을 다스리는 지배자는 신성한 품종의 개를 키울 자격이 있었다. 그 개가 티베트탄 마스티프, 바빌로니안 마스티프, 페르시안 마스티프, 몽골리안 마스티프, 파사구, 삽살개이다. 이 개들은 이름은 다르지만 유전자는 일치한다. 티베트탄 마스티프는 사자개란 의미이다. 티베트의 라사압소, 페키니즈, 티베트탄 테리어, 시추와 역시 티베트 산 개로 사자개라는 의미이다. 신라 시대 왕족만이 삽살개를 키울 수 있던 이유이다. 신성한 개와 신성한 유목 왕조의 혈통이 만난 것이다. 신성한 품종의 개를 키울 수 ..

유목사 2018.11.29

13 레드 썬, 깨어나라! 중국 좀비

만들어진 개고기 전통론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진짜 우리 전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진짜 우리 전통은 북방기마 유목민의 전통이다. 늑대 신앙과 신성한 개 신앙을 믿었고 창세기에 등장하는 은인인 개를 먹는 유목민은 없다. 무엇보다 유목민은 고기가 주식이었다. 굳이 개를 잡아먹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북방기마 유목민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농경민인 신농 씨의 관점에서 보면 국경과 거리는 매우 중요하다. 평생 집에서 십 리 이상 나가보지 않았다는 것이 농경민족적 관점이다. 중국 한족의 사고방식이다. 논 몇 마지기, 밭 몇 뙈기에서 벗어나 상상을 해보자. 유목민은 끝도 없이 펼쳐진 초원에서 살았다. 철 따라 계절따라 이동을 했는데 범위가 좀 넓었다. 텐산 산맥에서 몽골 고원, 만주 초원까지 중앙아시아 전체가..

유목사 2018.11.27

11. 개고기 만병통치설의 시조, 신농 씨

원래는 불법이나 사실 상 합법이 된 개소주는 개고기를 푹 고아 만든다. 퇴계 이황이 발명했다고 하는데 사실 신농 씨가 원조이다. 신농 씨가 누구냐고? 이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분이 안되는 존재가 바로 신농 씨다. 질겅질겅 씹고 있는 건 약초다. 신농 씨가 입으로 약초를 씹어 사람을 치료한 기록이 중국 한의서인 『신농본초』, 혹은 『본초』이다. 중국과 조선에 존재한 모든 개고기 약효 역시 이 『본초』에서 나왔다. 북한 김일성과 김정일이 먹은 황구도 이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신석기 시대 신농씨 조언에 따라 만들었다. 신농 씨가 산 중국 황하 문명권에서는 개고기를 약으로 사용했다. 물론 신석기 시대 개고기를 약으로 사용한 건 황화 문명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황하 문명을 제외한 모든 문명에서 개를 약으로 먹는 ..

조선 2018.11.22

10. 여신의 개를 약으로 먹은 바빌로니아

티베트탄 마스티프는 페르시안 마스티프와 같은 종이다. 중앙아시아에서 활동한 북방기마 유목 왕조끼리 서로의 정통성을 인정하며 신성한 개를 주고 받은 범위가 페르시아까지 미쳤다는 의미이다. 페르시안 마스티프 곧 티베트탄 마스티프는 중국에서 '파사구' 즉 페르시아 개라고 불린다. '사자개'는 '파사구'라고 불리기도 했다. '파사구'는 '페르시안 개'라는 의미로 중국 식 한자 표현이다. 즉, '파사구'는 '페르시안 개'이다. 중국 역사에서 이 '파사구'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시점부터 중국에서 개고기 먹는 현상이 급격히 사라진다. 파사구, 즉 페르시아 개를 키운 사람들이 중국 대륙의 지배층이었기 때문이다. 잔인하기로 유명하던 선비족 지배자들은 중국 여인과 아기를 개 먹이로 던져주기도 했다. 이 정도로 개에 미쳐있는..

유목사 2018.11.20

9. 개 숭배 신앙을 가진 세계 3대 문명

고대 중국인에게 개는 가축이었다. 황하 문명을 제외한 나머지 문명에서 개는 특별하고 신성한 존재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 문명, 이집트 문명은 공통점이 있었다. 개를 신성하게 여기는 믿음 혹은 신앙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생긴 페르시아 제국은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믿었다. 메소포타미아 마스티프는 페르시아 제국의 궁전을 지켰다. 사실 마스티프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세워진 왕국의 궁궐을 지킨 건 페르시아 제국이 세워지기 훨씬 이전부터였다. 기원전 1894-1866년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발견된 마스티프 석상이다. 이건 같은 지역인 북부 메소포타미아 왕궁 터에서 발견된 기원전 645년 경 마스티프 석상들이다. 이 개들은 악마와 악귀로부터 주인의 재산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 중국 공산당 지배 이후..

유목사 2018.11.17

8. 황하 문명은 개고기 문명

개고기는 중국 문화이다. 『동국세시기』 저자 말처럼 복날 개장국을 먹는 것은 중국 한족 전통이다. 복날 보신탕의 출처는 『사기』이다. 개고기가 우리 전통문화라고 말하는 사람은 중국인이다. 우리나라에 개고기 먹는 문화는 없었다. 조선 시기부터 일제시대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에 이르기까지 남한에서 개고기를 먹은 집단은 조선 후기 굶어 죽기 직전의 일부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 천주교 지도자들과 신자들, 일부 개신교 세력, 해방 후 일부 운동권 세력 뿐이다. 그 외는 정말 가난한고 굶주린 사람들이 굶어죽기 전에야 몰래 먹었다. 조선은 중국이며 개고기는 우리 음식이라고 백성들을 선동한 지배층조차 개고기는 먹지 않았다. 개고기를 먹었다고 역사에 남은 지배층에 관한 기록은 극히 소수였다. 오 천 년 한민족 역사 속..

중국 공산당 2018.11.15

7. 그들은 누구인가? '개고기 불간섭 선언' 동참자

2001년 개고기 불간섭 선언에는 12개 단체와 개인 167명이 참여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이들이 진짜 우리 조상을 모른다고 생각한다. 개고기가 민족의 전통 음식인 나라 중 현재 실존하는 나라는 중국 공산당과 북한 뿐이다. 개고기 불간섭 선언에 참여한 이들이 그 사실을 알고 행동을 했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이들 자체가 이미 대한민국 정치계, 언론계, 사법계, 문화계, 출판계, 영화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고 영향력은 막강했다. 그래서인지 이후 대한민국은 개고기 문화권(중국, 북한)으로 빠르게 오염되게 된다. 동참 단체 (총 12개 단체)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회장 김인섭), 국제팬클럽한국본부(회장 성기조), 대한약사회(회장 한석원), 대한치과의사협회(회장 이기택), 대한한의..

개고기 문제 2018.11.13

6. 개고기 불간섭 선언? 개고기 중국 속국 선언!

누구를 위한 개고기 독립 선언인가? 2001년 12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떼로 몰려 나와 엄숙한 선언을 했다. 개고기 식용은 우리 민족의 전통이니 서양은 비난하지 말고 존중하라는 선언이었다. 대한민국 독립 선언도 아니고 미국 독립 선언도 아닌 고작 개고기 독립 선언이었다. 선언의 목적은 '축산물가공처리법' 중 개를 사육 가능한 동물로 개정하자는 것이었다. 개를 가축으로 만들어야 개고기를 합법화 할 수 있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개정한 그 '개 가축 고시'와 동일한 내용이다. 2001년에는 실패했지만 2007년 성공한 것이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이 법으로 금지한 개고기 금지법은 반 세기가 흐르는 동안 사라졌다. 개를 보호하던 동물보호법도 축산법, 식품위생법, 환경법 등등으로 갈기갈기 찢겨져 유..

개고기 문제 2018.11.10

5. 개장국 금지 이승만Vs 단고기 먹은 김일성

개고기 중독 김일성 교가 퍼진 북한 해방 후 북한은 개고기 금지한 천도교에서 개고기 먹는 김일성 교로 바뀌었다. 주체사상이라는 김일성 교에서 김일성의 일말과 행동은 신의 계시와 같다. 까라면 까고 먹으라면 먹는다. 1960년대까지 북한에서 개고기가 대중적이지 않았다.그러던 것이 하루 두 끼 개고기를 먹던 김일성이 한 마디 하자 즉시 단고기가 되었다. 남한은 어땠을까? 역시 남한 내 세력이 없던 이승만이 깜짝 등장해 건국 대통령이 되었다. 이승만과 김일성은 대 중국 정책과 개고기 식용 정책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친미 반중 정책을 폈다. 김일성은? 친중 친소 정책을 폈다. 이승만 대통령은 강력한 개고기 금지 정책을 썼다. 김일성은 개고기 보급 정책을 썼다. 71%의 인구가 개고기를 금..

정치 2018.11.08

4. 천도교 제끼고 개고기 왕국 건설한 김일성

김일성 이전 북한을 지배한 천도교 1894년 동학의 농민봉기는 북한의 김일성과 김일성이 좋아한 개고기와도 연관이 깊다. 일제 식민지 지배 후 동학은 진짜와 가짜가 뒤섞여 여러 갈래로 분열되었다. 먼저, 일진회는 친일을 했다. 1907년 일본 황태자가 조선을 방문하자 이를 기념해 천황을 찬양하는 글귀와 문양이 새겨 아치를 세우기도 했다. 또 다른 동학의 후계자인 천도교는 북한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그런 천도교 신자가 약 800만 명이었다. 이 중 신자 약 640만 명과 간부 대부분은 북한에 살았다. 해방 직후 남한 인구가 약 1600만 명, 북한 인구가 약 900만 명이었다. 북한 인구의 약 71%가 천도교 신자였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막강할 수밖에 없었다. 김일성이 북한을 접수하려면 반드..

북한 2018.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