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 14

119. 미국 노예제가 잔인? 조선 노비제는 더 끔찍

중국 사람들은 고구려 인구의 30%가 놀고먹는 한량이라고 욕했다. ‘대가’인 이들은 평소에는 사냥이나 다니며 놀았다. ‘대가’는 군인이었다. 사냥은 평화 시 군사훈련이었다. 조선 왕조의 지배층 10% 중 대부분은 나라도 지키지 않고 글만 읽었다. 그 와중에 이순신 장군 같은 무인은 또 차별했다. 차별에 차별을 거듭해 모든 국가의 부와 권력은 문인 양반들에게만 집중되었다. 그들은 성리학만 공부했다. 그래서 행복했을까? 진정한 학자라면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공부는 왜 하나? 무릇 학문하는 즐거움이란 학문적 호기심을 채우는데 있다. 공부를 하다 보면 생각이란 건 하게 된다. 생각을 하다 보면 이건 이거 같고 저건 저거 같다는 의문점이 생긴다. 의문점이 생기면? 다른 자료를 찾아서 그 논리가 맞는지 확인을 해..

조선 2019.08.31

118. 황후가 된 여자 노예와 이황의 노비 장사

중앙아시아와 유럽에서 활동한 모든 기마 유목부족은 끊임없는 전쟁을 하며 노예를 확보했다. 노예들은 주로 농사를 짓거나 다른 잡다한 일들을 했다. 지배층은 오직 전쟁과 교역만 했다. 몽골의 칭기즈칸은 1000만 명에 달하는 베이징인을 죽이는 대신 거의 노예 상태로 만들었다. 원 제국 시기 인구의 90%가 넘는 과거 송나라 인은 만쯔라고 불리는 노예였다. 지금의 터키인 오스만 제국에서는 노예무역이 성행했다. 터키의 노예 상인이 얼마나 악명 높았는지 19세기 영국 만국박람회에서는 터키 상인에 의해 팔려가는 그리스 여자 노예 조각상이 전시되기도 했다. 청나라 건륭제는 위그르 반란을 진압한 후 수많은 포로를 끌고 왔다. 전쟁에서 진 포로들은 대개 노예가 되었다. 로마-카톨릭은 유럽의 인종주의로 발전했고 피부 색이..

조선 2019.08.29

117. 인류 최악의 노예 제도, 조선의 노비제

국가라는 권력 구조가 생기기 이전인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에도 노예는 존재했다고 본다. 날개달린 개를 신으로 모신 고대 종교를 믿은 청동기 지배 세력도 노예제도를 이용했을 것이다.이 시기의 지배 관계는 지배층과 노예의 관계라기보다는 신과 신자 정도의 관계로 봐야 할 것이다. 고도로 정교한 청동기 세공술과 금 세공술을 가진 집단을 처음 본 고대인들은 너무 놀라 그들이 신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날개 달린 개를 모신 고대 청동기 세력(중 해양 무역 세력인 에트루리안)이 모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대 에트루리아 초기 왕조는 말과 함께 배를 타고 그리스, 로마 지역으로 건너왔으며 날개 달린 개를 신으로 믿었다. 에트루리안을 비롯한 고대 청동기 지배세력은 압도..

조선 2019.08.27

116. 18세기 고양이 대학살과 개소주 이황

조선 시대 양반은 개고기를 먹지 않고 일부 굶주린 노비는 개고기를 먹었다. 인공위성 파편에 맞아 죽을 확률로 말이다. 이 역사적 사실을 일부 한국인들이 왜곡하여 개고기 식용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복날, 가난한 농민, 개고기’는 선한 전통이고 ‘부자, 양반, 친일파, 독재자’는 악이라는 단순 무식한 대립 구도로 몬 것이다. 복날 개고기 식용을 통해 가난한 노비(노동자, 프롤레테리아)와 양반(부자, 부르주아)의 대립을 극대화시키는 그들의 해석에 의하면 조선 시대 개를 때려잡아 개고기를 먹은 것은 개를 조상신으로 여긴 양반에 대한 증오의 표출이다. 이는 개를 청 왕조의 상징으로 여겨 개를 때려잡아 먹는 고대 중국 식습관을 되살린 중국공산당과 같은 논리다. 또한 18세기 프랑스 방직공장에서 일어난 고양이 대학..

조선 2019.08.24

115. 개고기와 함께 시작된 한국의 민간 국제 외교

지금 이 순간에도 수 천 만 마리의 한국 개들이 조선족들에 의해 도살되고 있다. 조선족은 한국에서 개고기를 가장 많이 소비한다. 개고기 장사로 부를 축전한다. 개 농장에서 일한 경력으로 영주권을 받는다. 축적한 돈은 다시 중국으로 빼돌린다. 이 과정에서 우리 한국인이 얻는 이득은 무엇일까? 개고기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한다고? 남과 북이 개고기를 먹으면서 사이좋게 쎄쎄쎄? 여기서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이 지구에는 남과 북만 존재하지 않는다. 전 세계에는 개고기를 혐오하는 수많은 나라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나라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조선 왕조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말이다. 역사적으로 자유롭게 교역을 해야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안정적으로 교역을 하려면 군사력은 기본으로 ..

종교 2019.08.22

114.교황님, 신부님이 개고기 좀 그만 먹게 해주세요!

우리나라 개고기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계층이 1960년대 농촌 일꾼이다. 1960년 대 복날에 개고기를 먹은 주요 계층은 일부 천주교, 개신교 신자와 가난한 농촌 노동자들이었다. 이들 주역은 1960년대 농촌에서 만났다. 1980년대까지 우리 사회에는 개고기 금기가 남아있었다. 개고기 금기는 산업화 이전인 1960년 대에는 더욱 강했다. 특히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이 정한 개고기 금지법이 강하게 남아 있던 시기였다. 1920~1940년대 생 어르신 중에 복날 개고기를 먹었다고 한 분은 1960년대 시골 농촌에서 머슴을 살았다는 분이 유일했다. 2000년대 이후 쏟아진 복날 개고기를 먹는 전통에 대한 기사를 봐도 1960~1970년대 힘든 농촌 노동자들이 삼복더위에 영양보충을 위해 개고기를 먹었다는 내용..

종교 2019.08.20

113. 복날 개고기 먹은 노비가 독립운동을?

모 명문가가 소유한 평창동 고택에는 사람 손으로 판 호수가 있었다고 한다. 연못이 아니라 진짜 배를 띄워 뱃놀이를 할 수 있는 아주 큰 호수였다고 했다. 그럼 혹시 일제 식 신식 건물이었냐고 물었더니 99간 전통 한옥이었다고 했다. 조선 시대부터 그 댁에서는 대대로 호수에 배를 띄우고 탁 트인 평창동 전망을 즐겼던 것이다. 말 그대로 신선놀음이다. 또 다른 명문가에서는 일제시대에 북해도에서 유제품만 공수해 오던 직원이 있었다고 한다. 북해도까지 배로 드나들던 그 직원의 유일한 업무는 우유와 치즈를 떨어뜨리지 않고 사 오는 일이었다. 대략 통학 열차에서 일본 학생과 한국 학생이 개고기를 두고 싸움을 하다 전국 동맹학생운동을 하던 시기였다. 일반 백성들은 꽁보리밥도 제대로 못 먹던 시절이었다. 가장 가난하고..

조선 2019.08.17

112. 개는 조상신이니 먹지 마! 조선 시대 양반

조선이 망하는 순간까지 한양 사대문 안에 사는 사람들은 특권층이었다. 한양 사람들은 계급, 직종 별로 정해진 구역 안에서 살았다. 경복궁과 창경궁 등 궁궐 주위 중 물 좋고 경치 좋은 구역은 잘 나가는 권문세가들이 살았다. 지금의 평창동은 조선 시대에도 특권층이 모여 살던 구역이었다. 배산임수 조건에 맞는 명당이었기 때문이다. 양반 중에서도 권력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사대문 밖 남산 등지에서 살았다. 남산골샌님이란 말이 생긴 이유도 지지리 가난한데 일은 안 하고 공자 왈 맹자 왈 꼬장꼬장 따지기나 하는 양반들이 남산골에 모여 살았기 때문이다. 양반은 아무리 가난해도 일을 할 수 없었다. 일을 하는 순간 양반이 아니었다. 다 쓰러져가는 초가삼간에 살아도 허름한 갓을 쓰고 책을 읽어야 했다. 양반이 돈을 벌 ..

조선 2019.08.15

111. 복날 보신탕 먹는 사람의 조상은 노비

해마다 복날이 되면 마음이 착잡하다. 조선족의 전리품이 되어 해마다 수 백 만 마리씩 잔인하게 살해되는 한국 개들 생각에 착잡하고 1997년 이후 중국 공산당의 논리대로 세뇌되어 복날은 개고기 먹는 날이라고 외치는 일부 얼빠진 한국 사람들의 행태에 착잡해진다. 조선족에게 도살되는 개가 바로 현재 우리 한국인들이 처한 처지다. 개 같은 처지라고 하면 너무 심한 비하 같은가? 고대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는 개는 귀한 존재였다. 모든 기마 유목 왕조, 중국의 당, 원, 청 왕조에서 개는 황실(신성한 피)의 상징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개 같다는 말은 칭찬이다. 개를 비천한 존재, 먹어야 할 식량, 약재로 취급하기 시작한 건 중국 고대 왕조, 조선 왕조, 중국 공산당 지배 시기 이후다. 한민족이 가난해진 것도 ..

개고기 문제 2019.08.13

110. 조선족이 개고기를 안 먹으면 티베트가 독립?

1911년 이후 본격적으로는 1921년 이후 중국 공산주의를 추종한 세력이 조선족(독립운동가 포함), 북한, 남한의 공산주의자들(민주화, 종교 세력)이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개고기다. 얘네들이 개고기에 목숨 거는 이유이기도 하다. 적어도 1921년 이후 중국 대륙과 한반도에서 개고기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중국 공산주의 혁명의 상징이다. 개고기로 하는 성찬식이자 이념 전쟁이다. 청 왕가 멸망 후 중국의 많은 지도자(군벌)들이 앞 다투어 세력을 키웠다. 그 중 대표가 국민당과 공산당이었다. 사실 공산당은 국민당에 비해 쩌리였다. 마오쩌둥은 소련과 일본의 팽창을 견제하고자 하는 미국 덕분에 쩌리에서 일약 국가 지도자급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마오쩌둥 식 공산주의 독재의 정점은 1966~1976년까지 불어 ..

중국 공산당 2019.08.10